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짧은 4박 5일의 여행에서 돌아왔다. 비우리라 다짐했는데, 마음이 더 무겁다. 고경희 시인에 의하면,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고, 또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떠난다고 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작거나 큰,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머뭄'과 '떠남'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것이 만드는 공간 속에서 인간에게 제약된 세계 안에서의 실존과 이상 세계로의 일탈과 모험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유한한 삶의 단조로움과 권태를 이겨 나가는 성숙을 향한 처방이라고 본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인처럼 짧지만 먼 여행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다. 아직은 머뭇거리면서 "숫기 적은 청년처럼 후박나무 아래에서/ 돌멩이를 차다가/ 비가 내리는 공원에서 /물방울이 간질이는 흙을 /바라다보"았다.
연해주(沿海州)는 고조선에서 고구려, 발해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역사와 긴밀했던 곳이다. 조선후기인 1863년, 함경도 농민 13 가구가 이주하면서 고려인의 이주 역사가 시작되었던 곳이란다. 지금은 러시아 영토로, 대표적인 도시가 블라디보스토크('동방을 지배하라'는 의미)이다. 이 곳은 러시아의 남하 정책의 결과 찾아낸 부동항(얼지 않는 항구)이다. 이 곳은 1914년 대한 광복군(1919년 대한 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영향을 끼친 단체)가 활동했던 지역이다.
여행에서 돌아 오는 날 아침이 2019년 8월 15일었다.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들이 두 개나 있었는데, 함께 하지 못했다. 오늘 아침 시에서 처럼, 여러 번 반복되는 "돌아온다"의 의미는 "돌아와야 한다"는 것 같다. 나는 "저 혼자 걸어갈 수 없는/의자"가 되어 비에 젖게 하는 일상과 "지친 넋을 떼어 바다에 보탠 뒤/곤한 안경을 깨워/멀고 먼 길을 다시 돌아" "오른손"의 세계로 왔다.
그러나 혼란스럽다. 배 안에서도, 고향 친구들과 생각의 차이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극렬하게 대립되는 주장만을 펼치며, 새로운 합의가 이루어기기 전에 다투다가 말았다. 불편했다. 아침에 펴든 신문들도 다 그렇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세워가자"고 강조한 대통령의 경축사를 두고 보수 야권은 "말의 성찬에 불과하다"고 깎아 내리고 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속이 터지는 말들이다. 함께 극복하고, 평화로 나아가자고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는 논평들은 안 보인다. 마음이 무겁다. 정치가 무엇인가?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실제로 정치는 아무나 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는 사람들이 정치는 아무나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문제이다. 정치는 우리의 삶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정치는 우리들에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해준다. 신체를 구속할 수도 있으며, 돈도 걷어가며, 군대로 데려가기도 한다. 정치는 우리들의 '정신 세계'도 지배한다. 정치에 아무리 냉소적일지라도 정치는 우리들의 삶으로부터 단 1cm도 떨어지지 않는다. 원하지 않더라도 정치는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사회에 대한 철학, 의지, 전문성이 없으면 해서는 안된다. 정치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의 영역이다. 우리 정치의 불행은 정치가 갖는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그 엄청난 힘을 아마추어들이 다룬다는 사실이다. 선거에 나가 당선되었다고 저절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너무나 위험하고 중요한 일을 다루기 때문에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난 잘 모르겠다. 이념에 사로잡히면, 외톨이가 된다는데... "아픈 휴식"이었다. 짧은 논평에 눈길을 짧게 주기보다, 긴 경축사를 우선 차분하게 읽고, 미래로 함께 나아가는 '새로운 한반도'를 꿈꾸는 일에 우리 모두 함께 했으면 한다. 우리 겨레의 "방랑"은 이젠 마무리 되었으면 한다. 연해주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우스리스크에서 마음이 아팠다.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박주택
여행자처럼 돌아온다
저 여린 가슴
세상의 고단함과 외로움의 휘황한
고적을 깨달은 뒤
시간의 기둥 뒤를 돌아 조용히 돌아온다
어떤 결심으로 꼼지락거리는 그를 바라다본다
숫기 적은 청년처럼 후박나무 아래에서
돌멩이를 차다가
비가 내리는 공원에서
물방울이 간질이는 흙을
바라다보고 있다
물에 젖은 돌에서는 모래가 부풀어 빛나고
저 혼자 걸어갈 수 없는
의자들만 비에 젖는다
기억의 끝을 이파리가 흔들어 놓은 듯
가방을 오른손으로 바꾸어 들고
느릿한 걸음으로 돌아온다
저 오랜 투병의 가슴
집으로 돌아온다
지친 넋을 떼어 바다에 보탠 뒤
곤한 안경을 깨워
멀고 먼 길을 다시 돌아온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박주택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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