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8월 13일)
노자 <<도덕경>> 제37장은 전반부의 마지막 장이다. 여기서 노자는 도의 특성과 운행원리를 다시 한 번 압축해서 보여준다. 도는 결코 억지로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다고 세상에 안 된 일이 하나도 없다. 사실 억지로 하는 행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런 억지로 하는 행위가 없기 '때문에'에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풀이하여야 한다. '무위이불무위(無爲而不無爲)'를 "무위하면 되지 않는 법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부족하다는 말이다.
세상사에서 어떤 욕망도 품지 않고,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을 '무위'로 보면 그 의미가 부족하다. 노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위'보다도 '되지 않는 일'이 없는 '무불위(無不爲)의 결과였다고 본다. '무위'라는 지침은 '무불위'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도덕경>> 제22장을 보면 안다. "구부리면 온전해지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덜면 꽉 찬다. 헐리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노자를 구부리고, 덜어내는, 헐리는, 적은" 것만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사실 노자는 온전하고 꽉 채워지는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다. 나에게는 "道常無爲而無不爲(도상무위이무불위)"를 "도는 늘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아니함이 없다"고 풀이한 도올의 해석이 좋다.
최진석 교수는 무위(無爲)를 '정교한 인위(人爲)'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어제 <인문 일지>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 차원에서, '무위'는 오랜 연습과 훈련, 시행착오와 수정, 혹독한 자기점검과 자기변화를 거쳐 도달하게 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일 수도 있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운 좋은 발견, 재수 좋게 우연히 찾아낸 것'이다. 세렌디피티는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 나선 사람에게 우연히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 보물을 찾기 위해 애쓰지 않는 사람에겐 그런 행운이 찾아 올 리가 없다. 그런 행운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자신의 그릇이 마련되지 않아, 금방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불행이다. 이어지는 제37장>의 정밀 독해는 블로그로 옮긴다.
매주 금요일은 노자 <도덕경>을 함께 읽는데, 이 번주는 모두 바쁜 일정으로 그냥 넘어갔다. 나 혼자 <<도덕경>> 중 <도경("길의 성경"> 마지막 두 장을 읽으며 휴가기간을 고요하게 보냈다. "不欲以靜(불욕이정)하니, 天下將自定(천하장자정)"이 되었다. 무욕(無慾), 욕심이 없고 고요하게 되니, 천하는 저절로 제 자리를 잡는다는 말처럼, 마음이 평화롭다. 아침마다 딸과 집 옆 운동장에서 맨발 걷기를 하니, 몸도 새 기운을 얻어 힘이 솟는다.
오늘 아침 사진은 아침 운동 길에서 만난 나팔꽃이다. 이 꽃만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안도현 시인은 "메꽃과 나팔꽃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팔꽃은 외국에서 들여온 꽃이지만, 메꽃은 우리나라 산천 어디에서나 스스로 자란다. 나팔꽃 잎사귀는 둥근 하트 모양이지만, 메꽃 잎사귀는 길쭉한 쟁기처럼 생겼다. 들길에서 나팔꽃과 비슷한 연분홍 꽃을 만났다면 메꽃이라고 보면 된다. 시집살이로 고생하는 며느리를 “기름진 밭에 메꽃 같은 며느리”로 위로하는 조선시대 시조도 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메꽃과 호박꽃을 들기도 했다. 키 큰 명아주 줄기를 타고 메꽃이 한 송이 불을 밝혔다. 그 존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한, 참으로 아득한 것이다. 무욕 무취의 세계는 메꽃을 닮았다. 있는 듯 없는 듯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 이 메꽃과 나팔꽃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나팔꽃/정호승
한쪽 시력 잃은 아버지
내가 무심코 식탁 위에 놓아둔
까만 나팔꽃 씨를
환약인 줄 알고 드셨다
아침마다 창가에
나팔꽃으로 피어나
자꾸 웃으시는 아버지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쓴다. 길게 이어지는 사유는 나의 다음 블로그를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사진하나_시하나 #정호승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 #무위이무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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