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 약속한 것처럼 "위대하고 위태로운" 우리의 "86세대" 이야기는 두 번에 나누어 공유한다. 여기서 86세대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생물학적 세대보다는 대체로 현 민주당에 '젊은 피로'로 수혈되어 정치 활동을 시작한 정치적 세대를 말한다. 그들은 80년대의 학생 운동 경력을 바탕으로 이미 30대에 중요한 정치적 지위를 얻었고, 지금은 50대로 집권 여당에서 중요한 정치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집단이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나는 지난 1월의 글쓰기에서 이 세대의 문제를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의 주장을 듣고 이렇게 공유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 386(지금은 586) 엘리트들은 1987년 체제를 쟁취한 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었기에 민주화 운동으로 얻은 상징 자본을 밑천으로 곧장 엘리트 코스로 진입했다. 그리고 각자 조직 내 경쟁에서 이기고 대한민국 1%가 된 엘리트들은 이때부터 조직 밖으로 눈을 돌리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동맹을 강화한다. 사회 각 분야의 엘리트가 촘촘하게 끈끈하게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이익 동맹'을 구축한다. 그후 10년이 다시 흘러 50대 중후반이 되자 마침내 대한민국 0,1%의 최후 승자가 되었다.
실망스럽게도 그들은 20년 동안 지적으로는 게을러졌고 도덕적으로는 해이해졌다. 기득권 '꼰대'가 되었다. 세상의 변화를 읽는 통찰이 20년 전보다 못하다. 공적 마인드는 약해지고 사적 욕망은 커졌다. 사적 네트워크로 얽히고설키다 보니 '아는 사람'의 부패와 비리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위선적이고 이중적인데 부끄러움도 없다. 이미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는데도 개혁의 주체인 양 착각하고 있다. "자신을 향한 성찰도 20년 전보다 못하다." "통찰은 부족하고 성찰도 없으니 현찰만 좇는 게 586 엘리트가 세상을 사는 방식이 되었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 한다. 지금 이념이 아니라 대한민국 0,1%의 엘리트가 사는 방식이 문제의 핵심이다." 박성민의 주장에 동의하며, 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엘리트주의를 없애야 한다고 본다.
김누리 교수의 지적은 86세대가 과잉 대표되고 있으며, 그에 반해 젊은 세대들은 과소 대표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 21대 국회가 그렇다. 현 국회에서 40세 이하, 즉 20-30대 국회의원이 300명 중 단 2명이다. 직능 대표성도 마찬가지이다. 법률가, 언론인, 교수가 과잉 대표되어 있다. 그리고 교사는 1명이고, 거의 다 교수이다. 이런 대의의 왜곡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의회 내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자꾸 의회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좀 분명히 할 것은 86세대라고 할 때 단순한 생물학적 집단이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 집단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68세대라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적 문화적 의식을 공유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꾼 세대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특히 1980년 군사 독재에 용감하게 맞선 것은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를 좌절하게 하는 자들은 모두 군사독재에 대항하여 시위를 할 때 몰래 빠져 나가 도서관 외진 곳에 앉아 사법고시 공부를 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86세대라고 하지 않는다.
어제는 휴가 철인데, 오랜만에 옛 친구들이 찾아와 '주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지겹던 장맛비가 오늘은 소강 상태이다. 오늘도 특별한 일정 없이 김누리 교수의 책을 읽을 예정이다. 당분간 그이 주장을 공유할 생각이다. 오늘도 류시화 시인의 시를 공유한다. 오늘 사진은 긴 장맛비 속에서도 자기 할 일을 잊지 않고 있는 남천나무의 열매이다. 곧 붉어질 거다. 우리 동네 공원에서 찍은 것이다.
새와 나무/류시화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 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있었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86세대가 이룩한 '민주화'는 부인할 수 없다. 그 세대가 세계적으로 칭송 받는 오늘의 한국 사회를 만든 주역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 민주화는 이루었으나, 사회, 경제 그리고 문화 민주화는 사실상 전혀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들의 성취와 한계를 균형 있게 보아야 한다. 그 한계를 이해하려면, 김누리 교수가 소개하는, 독일 극작가인 브레히트가 한 말,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다"라는 언술은 대단한 통찰이다. 혹독하게 시어머니로부터 시련을 당한 며느리가 다시 자신의 며느리를 다시 괴롭히는 현상과 같다.
그것으로 86세대의 한계를 다 설명할 수 없다. 우리의 86세대가 야만적인 폭력이 지배하던 군사독재 시대를 살아내면서 독일의 '68세대'처럼 이상적인 세계를 꿈꿀 수가 당시에 아주 어려웠고, 실제로 꿈능 꾸지도 안했다. 그래 군사독재 체제의 붕괴와 함께 우리의 86세대의 정치적 전망도 붕괴된 셈이다. 문제는 이 때문에 한국 사회의 기득권 구조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독재 체제의 붕괴가 곧 새로운 사회의 등장을 뜻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냥 '군사독재 하의 비정상 사회'가 '민주정부하의 비정상 사회'로 이행했을 뿐이다. 단지 지배의 주체만 바뀌었다. 그래 우리 사회의 비정상은 아직도 여전하다.
오늘의 우리 정치 상황을 잘 설명한 글을 지난 4월 총선 직후에 공유했던 글을 오늘 아침 다시 공유한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에 의하면, 현재 여당인 민주당의 기록적 대승이지만, 나는 '웃프다.' 웃음이 나오지만 슬프기도 하다. 오만하지 말고, 국가 어젠다를 가지고 좋은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냥 통합당과의 비교우위에 만족하고 유지하는 것만으로 집권이 가능하다는 오만은 '네메시스(정의의 복수 신)'가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과거의 정권과 비교하지 말고, 앞으로의 우리 사회를 새롭게 만들 초석을 다져야 한다. 물론 더 골이 깊이 파인 양당 정치의 구조화는 더 격렬한 갈등이 예상된다. 특히 정치적 다양성이 실종되어, 국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도 없고, 더 나아가 실질적인 문제해결 능력도 상실한 채 거대 양당의 담합 정치로 나아갈 수도 있다. 자꾸 과거 정권과 비교하면서 안주하면 안 된다.
물론 '탄핵정부 2인자'가 이끈 예정된 참패이기도 하다. 대선과 지방선거 연패에도 불구하고, 미래통합당은 상황인식, 태도, 인물, 메시지 모두에서 패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종부세밖에 관심 없는 이기적인 지역의 '민 낯'이 드러났고, 지역성이 종교가 되어버린 지역의 모습도 그대로 드러났다. 아직도 낙후된 농촌 지역에서는 공산주의라는 말을 믿는다. 전자의 지역은 이해하겠다. 그런데, 가난하고, 힘 없는 자들이 사는 지역민들이 왜 수구 보수를 지지하는가 나는 늘 의문이다. 큰일 났다. "빨갱이들이 압승하면 북한과 서민들에게 나랏돈 마구 퍼줘서 이 나라 거덜난다고 하던디."
왜 가난한 이들이 보수에 투표를 하는가? 내 생각은 당면한 일상에서의 생존만으로도 힘겨운 빈곤층은 변화를 위한 정치적 행동을 해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 본다. 현실이 힘겹지만 변화가 품고 있는 '알 수 없는 고통'보다, '아는 지금의 고통'을 차라리 견디고 말겠다는 가슴 아픈 체념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소득 불균형이 더욱 더 심화되고, 중산층 마저 몰락 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고 본다. 원래 우리 각자는 계급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계급을 철저히 인식하여고, 자신의 삶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도 왜 가난한 사람들은 기득권-보수를 선거에서 선택할까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힘의 실체를 살피지 못해서 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모든 생명과 연결되어 보살핌을 받는 존재이다. 내 존재만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건 좀 생각만 하면 그렇다. 이성의 동물이라는 우리가 그 이성을 하루에 몇 분이나 써가며 사는가? 다 기분과 감정에 따라, 선택하고, 습관처럼 밀려드는 일상에 휩쓸려 하루를 보낸다. 그 휩쓸리는 마음의 작동 원리를 그래도 살펴, 사려 깊은(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선택을 하여야 내가 살고 있는 집단의 미래도 달라지리라 믿는다. 이어지는 우리의 86세대 이야기는 내일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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