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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이상한 나라"가 된 것일까?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는 어제 아침에 쓴 글로 불편했다. 행복이야기들로 가득 채우면서, 행복은 다 개인의 문제로 다루었던 것 같아 불편했다. 특히 중앙대 김누리 교수의 Youtube 강의를 듣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이 글을 쓴다. 동시에 바로 그의 책을 e-book으로 구입하여 읽고 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가 제목이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들어가는 말의 시작이 "우린 지금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로 시작된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위험하고 비인간적인 노동에 내몰려 목숨을 잃은 김용균 씨의 어머니가 이 비정한 세상을 향해 토해낸 말이다.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이상한 나라"가 된 것일까?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르디는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짚었다고 한다.
* 끝없는 경쟁
* 극단적인 개인 주의
* 일상의 사막화
*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
여기에다 살인적인 경쟁 후에 승자가 독식하는 정글 사회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너무도 병든 사회에서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정상'으로 사는 사람들이 내 주변 출연연 연구원들이다.

이 책의 제1장은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이다. 이 말은 우리에게는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 괴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우리 사회가 아직도 군사문화의 전면적인 지배하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직도 대학에서 군대식으로 학생들 군기를 잡고, 운동 선수들이 정기적으로 해병대 훈련장 같은 곳에 '정신 교육'을 받고,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군 생활하는 것을 방영하고 우리는 그걸 시청한다. 이런 것들을 저자는 '일상의 파시즘'으로 우리 내면에 아직도 '파쇼적 심성 구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더 설득력 있는 예는 아시아나 항공사의 직원들이 오너의 갑 질을 비판하기 위해 시위하면서 가면을 쓰고 나온 사건이다. 이 걸 보면 우리는 아직도 정치의 광장에서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 자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지만, 일상의 공간에서는 공개적으로 불의(不義)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왜 그런가? 정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일상의 민주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들의 연합체이다.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의 문제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며,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와 이러한 심성을 내면화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언제라도 독재의 야만으로 추락할 수 있다." 좋은 설명이다.

이어지는 저자의 분석은 민주주의를 네 영역으로 나누어서 이루어진다. 정치 민주화, 사회 민주화, 경제 민주화 그리고 문화 민주화. 민주주의란 한 사회 구성체의 작동원리 전체를 포괄하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층위로 세분해서 살펴보는 것은 좋은 분석이라고 본다.
* 사회 민주화는 사회 각 영역에서 개별 조직내의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까지 자치적인 운영을 하고, 자율적인 결정을 하느냐 하는 정도를 뜻한다.
* 경제민주화는 기본적으로 경제 기구, 특히 기업 안에서 과연 어느 정도 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가를 뜻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주화가 안 된 곳이 기업이다. 한국에서는 노조 조직률이 10% 밖에 안 된다. 한국의 많은 기업에서 소유자가 그야말로 전제 군주처럼 행동한다. 언젠가 읽은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주인공 이수인 과장이 독일과 프랑스의 노동권 교육에 대해 강의하던 노동운동가 구고신 소장에게 묻는다. “저기… 프랑스 사회는 노조에 우호적인 것 같은데,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이고 지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 구고신 소장이 명쾌하게 답한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여기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데 어느 성인군자가 굳이 안 지켜도 될 법을 지켜가며 손해를 보겠소? 사람은 대부분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는 거요. 노동운동 10년 해도 사장 되면 노조 깰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게 인간이란 말이오.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우리나라에서 갑 질은 그 개개인의 인성이 잘못돼서 그런 면도 물론 있겠으나, 제도적으로 그걸 허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래도 되는 사회"에서 "그러면 안 되는 사회"로 바꾸어야 한다.
* 문화라는 건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들의 총합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 민주주의는 바로 이 관계들의 민주적 변화를 뜻한다. 남성과 여성,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이런 관계들이 수평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나는 우리 동네에 <우리마을대학>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는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우리 자식들을 위한 사회를 위하여. 오로지 우리는 내 자식만, 나만, 이런 집단적 또는 개인적인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인생이 돈만 벌고, 직장에서 승진하고, 권력을 얻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자신의 영적 성숙을 보며, 자신의 영토가 여러가지 측면에서 확장 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 공동체 운동을 프랑스에서는 '꼬뮈니즘 또는 꼬뮌주의(communisme)' 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공산주의'로 알고, 잘 못 번역을 한것이다. 코뮌주의는 '꼬뮌(commune)', 즉 자치 공동체의 삶을 중시하는 생활방식,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결사체, 연합 이런 것들을 뜻한다. 계속되는 이 이야기는 내일로 미룬다.

약속대로 오늘 아침도 류시화 시인의 시를 공유한다. 사진은 어제 오후에 비가 그친 틈을 타고 산책하다가 찍은 것이다. 하늘의 구름이 우리에게 계속 경고하는 듯하다. 아프다고. 정말 이젠 우리 모두 적극적으로 생태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사랑이란/류시화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 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 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장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나는 5년 전 류시화 시인이 쓴 글을 포스팅했었다. 지금 읽으니, 한 문장 한 문장 이해하는 문해력이 강해졌다. 그 때도 그랬던 것인가? 지난 주에는 '길'에 관한 시 낭송을 듣게 되었다. 윤동주의 <길>, 김기림 시인의 <길>, 윤석구 시인의 <늙어가는 길> 그리고 도종환 시인의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등등이다. 다음 주에 공유할 생각이다. 그러다 오늘 아침 페북에서 내가 5년 전 오늘 아침 류시화 시인의 글을 공유했다고 알려 주었다. 류시화 시인처럼, 내 길을 굳건하게 가겠다고 다짐한다. "방황한다고 해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모든 여행에는 자신도 모르는 비밀스런 목적지가 있다'고 마르틴 부버는 말했다. 그 많은 우회로와 막다른 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 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계속해서 류시화 시인의 글의 일부를 공유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길을 가는 사람'이다. 공간의 이동만이 아니라 현재에서 미래로의 이동,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과정도 길이다.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라고 하는데 '떠도는 사람', '길 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방황하며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찾는 존재를 가리킨다. 호모 비아토르는 길 위에 있을 때 아름답다. 꿈을 포기하고 한곳에 안주하는 사람은 비루하다. 집을 떠나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진 사람만이 성장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항상 선택 앞에 놓인다. 한 가지 길의 선택은 가지 않은 많은 길의 포기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좋은 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약초를 연구하기 위해 찾아온 UCLA 인류학과 학생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에게 멕시코의 야키족 인디언 돈 후앙은 말한다.

"그 어떤 길도 수많은 길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너는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하나의 길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을 걷다가 그것을 따를 수 없다고 느끼면 어떤 상황이든 그 길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그 길을 버리는 것은 너 자신에게나 다른 이에게나 전혀 무례한 일이 아니다. 너 자신에게 이 한 가지를 물어보라.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가?'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무의미한 길이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은 즐거운 여행길이 되어 너는 그 길과 하나가 될 것이다.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은 너로 하여금 삶을 저주하게 만들 것이다. 한 길은 너를 강하게 만들고, 다른 한 길은 너를 약하게 만든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나란히 걷는다. 행복의 뒤를 좇는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담긴 길을 걷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담겨 있다면 자신이 걷는 길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자신에게는 유일한 길이며, 다른 길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중요하다. 아침에 이런 문장을 만났다. "몸만 안으면 포옹이지만, 마음까지 안으면 포용이다." 마음을 담고 그냥 내 길을 가려니, 지금 나는 행복하다.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일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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