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8월 9일)
<<주역>>을 잘 이해하려면, 아니 사물의 핵심에 다가서는 길은 '8괘'를 잘 익혀두는 거다. 8괘를 소개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 1건천, 2태택, 3리화, 4진뢰, 5손풍, 6감수, 7간산, 8곤지.
주희가 그 모습을 노래로 만들었다. 그것을 '8괘취상가(八卦取象歌)'라 한다.
- 건삼련(乾三連-건괘는 3개가 이어진 모습)
- 태상결(兌上缺-제일 위에 구멍이 있는 모습): 태상절
- 리중허(離中虛-가운데가 비어 있는 모습): 이허중
- 진앙우(震仰盂-하늘을 바라보는 그릇 모양): 진하련
- 손하단(巽下斷-제일 아래가 잘려진 모습): 손하절
- 감중만(坎中滿-가운데가 차 있는 모습):감중련
- 간복완(艮覆盌-엎어진 사발 모습): 간상련
- 곤육단(곤육단-6개로 끊어진 모습): 곤삼철
64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이 기본적인 8괘가 다시 64괘를 이룬다. 그리고 이 8 가지 자연물이 지니는 추상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늘 연못 불 우레 바람 물 산 땅
굳셈 기쁨 밝음과 붙음 움직임 들어 감 험난함과 빠짐 멈춤 유순함
이 8 가지 자연물 또한 어떤 것이 일방적으로 길하거나 흉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하늘(건)은 굳셈이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굳세게 돌파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길하지만 부드럽게 대처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돌적으로만 나오면 흉할 수 있다. 물(감)의 경우, 험난함에도 길흉이 함께 있다. 내가 가는 길이 험난한 물로 가로막혀 있다면 흉하지만, 적군이 쳐들어왔을 때 험난한 물이 그들을 가로막아준다면 길한 상황이다. 연못(澤)의 기쁨 경우도, 마땅히 즐거워할 일에 기뻐한다면 그것은 길한 일이다. 그러나 기쁘게 즐길 상황이 아닌데 분수와 예의를 모르고 멋대로 즐기거나 자신의 기쁨을 너무 뽐낸다면 흉한 일이 될 수 있다.
<8괘>는 음효와 양효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고, 이 것들을 세 번 겹치도록 해서 8 가지 자연물을 만들어낸다. 동물 세계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자연계에 있는 모든 동물들을 서로 닮은 것끼리 분류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동물들을 분류하고 그 특성을 조사함으로써 동물 전체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가 깊어진다. 식물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분류와 차별은 다르다.
바보와 멍청이가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데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것 같다. 이들이 겪게 될 삶의 어려움은 무엇을 근거로 삼기 때문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가짜와 진짜를 분간하기 어려운 것, 남들이 아는 것을 몰라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 등등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뿌리를 찾아가 보면, 분별력이다. 그건 이것과 저것이 어떻게 다른 지를 아는 힘을 말한다. 물론 분별하는 과정에 에너지가 소비되겠지만, 분별된 결과 또한 에너지가 된다. 분별하는 에너지를 최소화 하는 방법으로 터득한 것이 '범주화'이지만, 스스로 범주화 하는 틀을 자유롭게 깨지 못하면, 오히려 분별력이 고착화되며 새로운 에너지 생성에 한계로 작용될 수도 있다. 인문학에서는 이런 분별하는 힘은 ‘지적 게으름'에서 벗어 날 수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게으름에서 벗어난다고 곧바로 부지런 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이치다. 부지런했을 때 경험하는 즐거움의 반복을 통하여 즐거움에 향수를 느끼는 무조건반사의 근육이 필요하다. 이것이 교육의 필요성이자 교육이 지향해야 할 일이다.
어쨌든 우리가 처음에 할 일은 분류이고, 그 다음은 분류된 것들이 어떤 특성을 갖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사물들의 핵심에 다가서게 된다. 이 것이 사물들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세상의 원리, 우주의 원칙을 간파하게 되는 길이 된다. 이런 차원에서 '8괘'를 하나씩 나누어 분류하고, 그 속성들을 정리해 본다. 이때 주역의 효(암호)들을 사용하면 사물들을 이해하는 데 편리하다.
(1) '☱'는 태상결(兌上缺-제일 위에 구멍이 있는 모습)로 '이태택(二兌澤)'이라 부른다. 연못을 표현하는데 쓰인다. 연못과 닮은 것으로 그릇이 있다. 연못이든, 그릇이든 기능이 담는데 있다. 이게 연못의 성질이다. 자루, 상자, 지갑, 주머니도 다 담는데 쓰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방,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품 그리고 고향 땅도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단골집, 조국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인간은 천부적으로 비슷한 것을 간파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인식의 본질이 패턴이다. 인간은 사물을 족집게처럼 간파하는 것이 아니라 두루뭉술하게 닮은 꼴부터 인식한다.
'☱(이태택)'은 우리들의 마음일 수도 있다. 그 구조가 어떻든 마음은 경험과 느낌을 담아놓는 그릇인 것이다. 더 나아가 덤벙대는 사람과 침착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연못과 닮아 있는가? 연못은 물을 담아놓고 밖으로 범람하지 낳게 한다. 침착한 사람도 이와 같다. 비록 혼란 속에 있다 하더라도 정신이 무너지지 않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평정은 바로 마음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침착하고 평정한 사람은 좀처럼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자세를 유지한다. 우리가 물그릇을 옮긴다고 해보자. 침착하지 않으면 물을 출렁이게 하고 마침내 넘치게 만든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덜렁대는 사람은 침착하지 못하기에, 그 마음이 밖으로 노출되고 요동치게 된다. 요동을 감싸는 능력이 ☱(이태택)이다. 침착, 평정은 오랜 수련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인간의 위대한 덕목 중 하나이다. 요즈음 양궁 대표 선수들을 보면, 기술을 익히고 그것을 잘 펼치려면 무엇보다도 참착해야 한다. 기술만 있고 침착이 없다면 마음이 떨릴 것이고, 그로서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은 뻔한 이치이다.
어린아이는 엄마의 품속에 담겨 있을 때 그 마음도 평안 해진다. 포란(抱卵)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정의는 '부화하기 위하여 조류의 암컷이 알을 품어 따뜻하게 하는 일'이다. 알을 낳은 후 부화될 때까지 자신의 몸체를 이용하여 알을 따뜻하게 하거나 보호하는 행위이다. 사람을 또 사람끼리 품에 껴안는 포옹(抱擁)도 일종의 포란 행위가 아닐까? 포란의 두 번째 의미는 '타인을 아량으로 너그럽게 품어 주는 것'이다. 포란처럼, 누군가를 품어준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 누군가에게 매일 전화를 넣는다는 것처럼, 사소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태택)의 연못처럼 '담겨 있다는 것'의 작용은 매우 놀랍다.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 들떠서 살고 있는데, 이것이 심하면 병을 초래하고 나쁜 운명을 끌어들이게 된다. 넘치지 않는 법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도인들은 벽을 바라보며 명상을 한다. 바로 넘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평정이 없다면 생각도 얕아지는 법이다. 도인은 수련함으로써 세상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갖게 된다.
고양이와 호랑이가 '☱(이태택)'의 연못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고양이와 호랑이는 태평한 모습을 보이며 유연하고 침착하다. 당황하는 법이 없다. 언제나 태평하고 행동을 하는 데는 정밀하고 침착하다. 나는 어떠한 가?나는 곤란한 일을 당했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침착한 자세를 유지하는 가? 참 어려운 일이다. 뛰어난 싸움꾼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침착하지 못한 사람은 적을 마주했을 때 마음이 흔들려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한다.
<<장자>>의 목계(木鷄) 우화가 소환된다. 닭싸움을 위해 닭을 훈련시키는 사람이 있었는데 주나라 선왕의 부탁으로 닭을 한 마리 훈련시키게 되었다. 열흘쯤 지나 왕은 그 닭이 싸움을 할 만큼 훈련이 되었는가 물었다. 훈련사는 쓸데없이 허세를 부리고 자기 힘만 믿는다며 조금 더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다시 한 열흘이 지나 왕이 또 물었는데 훈련사는 다른 닭의 소리나 모습만 보아도 덤벼든다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또 묻자 훈련사는 상대방을 노려보고, 혈기가 지나치게 왕성하다며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 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묻자, 훈련사는 그제 서야 이렇게 대답한다. “이제 됐습니다. 상대가 울음소리를 내어도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닭[목계(木鷄)] 같습니다. 그 덕이 온전해진 것입니다. 다른 닭이 감히 상대하지 못하고 돌아서 달아나 버립니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집무실에 늘 목계(木鷄) 그림을 걸어 두고 교훈으로 삼았다 한다. 삼성은 창립 이 후 6.25와 5.16 등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많은 부침을 겪었다. 삼성이 오랜 세월동안 세파를 견디고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대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공을 자랑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먼저 나서서 대적하지 않는 "목계 경영"이 있었다.
나는 내가 나의 호를 목계(木鷄, 나무로 만든 닭)라 졌다. '목계'처럼 완전한 마음의 평화와 균형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완전한 평정심을 이룬 모습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어깨의 힘을 빼는 것이다. 최고의 싸움 닭은 뽐내지 않는다. 'I am who I am'이다. 나는 나일 뿐이다. 평상심으로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 아침 하려던 말은 ''☱'는 주역의 팔괘 중 하나로, 이것으로 세상을 분류하는 방법을 배우자는 것이었다. 주역의 팔괘는 온 세상을 8가지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 '☱'만 알아도 인간에 대해 평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한 것이다. '☱'는 담겨 있다는 의미인데, 담겨 있고 담겨 있지 않은가를 통해 인간의 됨됨이를 다음과 같이 논할 수 있다.
- 행동의 단정함 정도에 따라 '☱'이냐 아니 냐를 평가할 수 있다.
- '☱'의 덕성, 평정이 없는 사람은 범죄인이 되기 쉽다.
- 침착하지 못한 것은 일종의 신경성 질환처럼 보이기도 한다.
- 교양 있는 사람, 절제 력이 있는 사람을 '☱'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기 통제력이 미약한 사람으로, 소위 막간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들은 '☱'와 거리가 멀다.
- 연못 같은 사람, 즉 '☱'인 사람은 생명력을 안에다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기운의 낭비가 심하다. 일찍 죽는 사람도 '☱'의 기운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사고를 잘 치는 사람도 그와 같은 상황이다.
사람을 볼 때 '☱(연못)'의 요소를 보면,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의 노출이 심한 사람은 믿기 힘든데, 이런 사람은 쉽게 의리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즉 담아 놓는 능력이 약한 사람인 것이다.
<<주역>>은 세상을 이런 방식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가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사람의 핵심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해준다. 이것이 <<주역>>의 가장 기본적인 힘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는 <등>이다. 가끔 만원 지하철을 타면, 등이 서로의 버팀목이 되며 담아준다. 등도 더 많이 서로를 품어줄 때가 있다. '☱'의 연못처럼.
등/박일만
기대오는 온기가 넓다
인파에 쏠려 밀착돼 오는
편편한 뼈에서 피돌기가 살아난다
등도 맞대면 포옹보다 뜨겁다는
마주보며 찔러대는 삿대질보다 미쁘다는
이 어색한 풍경의 간격
치장으로 얼룩진 앞면보다야
뒷모습이 오히려 큰사람을 품고 있다
피를 잘 버무려 골고루 온기를 건네는 등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두 다리를 대신해
필사적으로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사람과 사람의 등
비틀거리는 전철이 따뜻한 언덕을 만드는
낯설게 기대지만 의자보다 편안한
그대, 사람의 등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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