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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공정을 말한다.

1682.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2021년 7월 8일)

오늘은 장자가 말하는 오만에 대해 사유를 해본다. <장자>는 내편 7개, 외편 15개, 잡편 11개, 이렇게 하여 33개로 구성되었다. 그중 오늘은 외편 <서무귀>에 나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착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악의 그릇입니다." 원문은 "범성미(凡成美), 악기야(惡器也)"이다. 무릇 아름다움을 이루는 것은 악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이다. 아름다움이 앞에서 이루어지면 거짓이 나중에 생긴다. 그 때문에 아름다움을 이루는 것은 악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이다.

어설프게 국민 사랑한다는 분들이 꼭 사고 친다. 국민 핑계대지 말고 얌전히 있는 게 국민 도와주는 거다.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게 좋은 일이고 옳은 일이다. 인위적인 정치는 모두를 괴롭힌다. 사람들은 뭔가를 하지 못해 안달이다. 왜 그런 가? 나는 중요한 사람이고, 나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만물은 각자 알아서 스스로 살아"(<장자> 在宥, 재유)가는 데 말이다. 이를 "물고자생(物故自生)'이라 한다.

이런 식의 '나 아니면 안 돼'를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국민들은 사랑받기를 원하지 않는데 저 혼자 국민을 사랑한다며, 국민이 자신을 원한다며 선거 때만 되면 가만있질 못하고 선거판에 나온다. 사실 저 한 몸도 못 다스리면서 세상 고치겠다고 날뛰는 꼬락서니야말로 잘난 척의 끝판이다. 주변 사람도 행복하게 못해주면서 세상을 행복하겠노라는 것은 커다란 오만이다.

<장자> 잡편 "우언(寓言)"에 "흰 것은 도리어 더러운 것처럼 보인다. 큰 덕은 도리어 모자라는 것처럼 보인다(大白若辱, 盛德若不足)"는 말이 나온다. "청바지에는 김치국물이 한 방울 묻어도 그냥 쓱 닦아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새하얀 면바지는 김치국물 한 방울 튀면 온통 다 더러워졌다는 평가를 듣기 마련이다. 김치국물 한 방울에 좌우되지 않을 넉넉함, 그 힘은 겸손합니다."(강상구, <나는 그 때 장자를 만났다.>)

사실 우리는 자기 멋대로 살 수 없다. 그것은 삶이 관계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타인은 기쁨의 샘일 때도 있지만 우리 삶을 제한하는 질곡일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을 조종하려는 충동이 우리 자신 속에서 스멀스멀 자리 잡을 때가 있다. 자기 의사를 타인에게 부과해 그가 내 뜻을 수행하는 것을 볼 때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걸 우리는 권력에의 의지라 한다. 그 권력에의 의지는 분수를 모르기에 언제나 한계를 넘는다. 성경은 이러한 과도함 혹은 오만함이 죄라 말한다. 죄는 남을 해칠 뿐 아니라 자기도 파괴한다. 여기서 서슴없음과 당당함은 자신을 강자로 여기는 이들의 한결같은 태도이다. 이기심과 결합되면 몰염치함으로 변질된다. 몰염치는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겸손의 반대인 오만은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아니 착각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만을 그리스어로는 '휴브리스(Hubris)'라고 한다. 휴브리스의 정의는 자신의 처음 먹은 마음을 잃고 난 뒤, 반드시 뒤따라오는 극도의 자만심이자 과도한 확신이다. 사람은 오만에 빠지면 눈이 먼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직시해야 할 현실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오만을 경계하고 겸손해야 한다.

오늘은 계룡산 갑사 가는 길에 <유라 극장, Art Theater> 오픈 기념 '영성 축제 인 계룡산' 공연에 다녀왔다. 사진이 강만홍 교수의 <숨춤> 한 장면이다. 코로나로 많은 관객을 초대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인원으로 마스크를 쓰고 몰입하여 관람했다. 나도 한달에 한 번씩 <인문운동가 박한표와 함께 하는 인문학 여행> 강의를 하며 영성 지수를 높이려 한다. 거기서 고향 공주 선배이신 신현보(전 한일고 교장과 전 충남문화재단 대표이사) 시인님이 시집을 한 권 주셨다. <소금꽃>이란 동인지였다. 시인님이 추천했던 시를 오늘 공유한다.


서로를 향한 祈禱/신현보


그대를 생각하면
한없이 소중한 사람

곁에 있어 더욱 고마운 사람

몸 아프지 말고
마음 다치지 말고
벙그는 꽃잎처럼
활짝 웃고 사소서.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가 공정이다. 누구도 같은 조건일 수 없는 찬문학적 변수의 집합체인 인간 사회에서 진정한 공정은 가능할까?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10대 말까지의 학업 능력은 환경이 우선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지적,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정착되기도 전에 수많은 이들의 삶의 기회와 방향이 바뀐다. 그러다 보니 드러나는 불공정 이외도 무의식적 기회 박탈과 배제가 더욱 공공연한 삶에서 공정을 논하는 것은 유토피아를 논하는 만큼 허무맹랑하다.

도나 개나 공정을 말한다. 잘 구분해야 한다. 이준석 식의 공정은 '능력'에 따른 공정이다. '시험(성적)'을 잣대로 삼는 공정이다. 능력을 시험하는 과정과 절차가 공정하면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도 정당한 기회를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식으로 고민하지 않는 공정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을 더 혼돈스럽게 한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공정한 시험을 거쳐 정규직을 획득하면, 그렇지 않은 이들을 정당하게 차별할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노력은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다. 부모의 경제력과 지위, 자라온 환경에 따라 노력에 시간과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달라진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이 없는 사람은 노력조차 할 수 없다.

더욱 문제는 '정당한 차별'을 행하는 저들이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경쟁에 노출돼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왜 최근 들어 문제가 더 불거져 보일까? 기회의 평등을 발하던 정부에 그래도 기대를 걸었지만, 이 정부의 상징적 인물들이 스펙 품앗이로 자본을 세습하는 걸 보고 불평등한 세상이 더는 정치로 보정되지 않겠구나 체념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변화보다 지금 가진 것을 부여잡고 어떻게 든 놓치않으려 애쓰는 것이다. '정당한 차별'이라는 지옥이다. 내가 좋아하는 박선화 교수는 발달 격차로 인한 기회의 부공정을 자신의 칼럼에서 제기했다. 운 좋게 조금 일찍 태어난 아이들은 자신감과 리더십, 상대적 실력으로 엘리트가 되어 연쇄적으로 더 좋은 기회를 누린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누적적 이득'이라고 부른다. 기회의 불균형으로 인한 불공정은 무수하다.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더 누리는 것이 공정한 사회인가? 공정한 사회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1) 더 나은 시스템을 위해 우리는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2) 그 전에 다음과 같은 인식을 가져야 한다. 불완전한 세계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온전한 공정은, 모든 성취는 남들이 차려 놓은 밥상과 희생 위에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적절한 재 분배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공정은 기회균등에서 출발해 합리적 분배로 완성된다.
(3) 우리는 모든 것이 빚을 지고 산다. 사소한 행운들의 누적을 통해 거머쥔 성취에 대해 진정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갖는 것이다. 나누고 살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과정은 다 무엇인가에 빚을 지고 산다. 그러니 다름이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시대 정신은 불평등 해소,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 그리고 문화와 예술 향유를 통한 경쟁이 아닌 여유로운 삶이다. 그래 오늘 오픈한 <유라 극장>은 의미가 있다. 예술 향유이기도 하지만,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 유라시아 예술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키우려고 뜻있는 사람끼리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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