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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장자>를 만나다.

1550.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2021년 2월 26일)

 

 

사진 캡처: 구글

 

아침 글쓰기의 주제를 요일별로 나누어 볼 생각이다. 토요일은 와인과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개별적인 와인 한 병을 영화 읽기처럼 해 볼 생각이다. 일요일은 동, 서양과 고전을 통한 묵상 내용을, 월요일은 이야기의 힘이라는 주제로 이솝우화 같은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화요일과 목요일은 읽고 있는 책의 리-라이팅을 하고, 수요일은 인문운동가가 바라보는 시대 정신을, 목요일에는 동양 고전을 읽으며 얻은 삶의 지혜를 공유해 볼 생각이다.

 

오늘은 최근에 막 끝낸 <장자>의 "제5편 "덕충부(德充符)" 에서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공유한다. 덕충부(덕의 가득함의 표시)에서 부자는 符로, 부호 '부'자이다. 표시, 증거라는 뜻으로 쓰인다. 덕충부란 '덕이 가득해서 저절로 밖으로 그러하다'란 뜻이다.

 

이 편에는 육체가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을 등장시켜, 그 사람들이 비록 육체적으로 온전하지 않지만, 그들은 자신의 속에 있는 천부적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 진실로 의연하고 풍성한 삶을 살고, 또 살 수 있음을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특히 이렇게 자랑스런 삶을 살면서도 그것을 일부러 드러내려 하지 않을 때 저절로 밖으로 드러남을 강조한다.

 

오늘은 음력으로 1월 15일로 정월 대보름이다. 이 말은 동제(洞祭), 달 집 태우기, 줄다리기, 쥐불놀이, 지신밟기, 부럼 깨기 등 기복행사와 오곡밥과 오색나물을 먹고, 귀밝이 술을 마시고 땅콩이나 호두 등의 부럼을 깨는 풍습이 있는 날이다. 그 의미는 이렇다.

  • 조상들은 농사를 시작하면서 함께 하는 놀이를 통해 풍년을 빌며 이웃 화합을 다진다.
  • 오곡밥은 말 그대로 5가지 곡식으로 지은 밥인데, 평소 자주 먹지 못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 동안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는 것이다.
  • 말린 나물은 겨울에 삶아서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 날밤, 호두, 은행, 잣 등을 깨물면서 1년 동안 아무 탈 없이 평안하고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며, 또한 이를 튼튼히 하려는 방법이다.

 

나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왜 그런 놀이를 하는지 모르고, 쥐불놀이를 했었다. 나중에 커서 불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불은 죽음과 부활이다. 불은 일년 동안 모든 슬픔과 아픔을 태워준다. 그리고 그 재는 거름이 되어 농사에 보탬이 된다. 그래 큰 행사마다 불꽃(아니 더 정확히는 꽃불)놀이를 한다. 정월대보름에 '달 집 태우기'를 하며, 조상들은 모든 부정과 악을 불태워 버리며,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을 정화하고 싶어 했다.

 

 

정월대보름/손병흥

 

아홉 가지의 나물에다 찰진 오곡밥을 먹고서

올 한해 이루고 싶은 일을 계획하고 기원하며

새로운 소원을 조심스레 점쳐보는 정월대보름

 

풍요로운 생산기원 마을의 평안 축원하는 동제

부족했던 비타민 무기질을 보충해주는 슬기로움

무사태평과 종기 부스럼 잡귀 물리는 부럼 깨기

귀 밝아지고 좋은 소리를 듣고자 먹는 귀밝이 술

 

논두렁 밭두렁의 해충 세균 없애기 위한 쥐불놀이

지신밟기 후 보름달 떠오를 때 행하는 달 집 태우기

연날리기 윷놀이 소원풍등 날리기 하는 상원 명절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풍요의 상징적 의미로 자리매김한 전래 풍습 축제

 

 

<장자>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물론 반드시 글자 그대로 몸이 불구가 되어야만 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 필요는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닥친 어떤 외부 조건에도 구애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음을 말했다고 보는 것이 좋다. 덕충부에 나오는 불구자들은 인간으로 서의 실존적 한계성과 결함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를 상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불구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이 사람들이 발휘하는 '비보통적' 능력은 모든 인간이 발현할 수 있는 인간 승리의 증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덕을 발휘하는 데에는 장애자나 불구자가 있을 수 없다. 가난하거나, 외부적 조건이 좋지 못해도 덕을 펼치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노자의 <도덕경>은 도를 어머니로 표현하는 등 여성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뜻에서 현대 "여성 운동가들의 바이블'이라고 한다면, <장자>는 불구자가 도를 실현하고 덕을 발휘하는 데 아무 장애가 없다는 것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실증했다는 점에서 "장애인들의 성서"가 될 수 있다고 <장자>를 풀이한 오강남은 주장한다. 매주 금요일마다 당분간 <장자>를 공유할 생각이다.

 

오늘은 <장자> 제5편 '덕이 가득함의 표시인' "덕충부"의 1장에서 5장까지인 "왕태와 공자" 이야기를 한다. 맨 먼저 형벌로 발 하나가 잘린 왕태(장자에 나오는 불구자 제1호)는 물론 가공의 인물이다. 공자의 제자 상계의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왕태가 어찌하여 공자가 본고장인 노나라에서마저 공자와 맞먹을 정도로 명성이 높고, 특별히 말로 가르치지도 않는데 찾아간 사람들이 모두 많이 배웠다니, 불언지교(不言之敎)라는 것이 정말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 다음은 몸이 불구이나 마음이 온전하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라틴 속담처럼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것이 정석인데, 이 사람은 오히려 '불건전한 육체에 초건전한 정신'인 셈이니, 이게 어찌 된 것이냐는 문제이다.

 

공자의 대답은 한마디로 "그는 성인(聖人)"이라는 것이다. 상계가 사람을 외모로 판가름하는 데 반해, 공자는 사람의 속을 본 것이다. 왕태야말로 자기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따라야 할 위대한 성인이라 못박는다.

 

공자는 왕태를 성인의 경지에 있다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열거 한다.

  • 그는 생사에 초연한 사람이다.
  • 사물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아 설령 천지개벽같은 상황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꿈쩍하지 않는 의연하고 의젓한 사람이다.
  • 운명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간디가 말한 진리파지(眞理把持)를 실현한 사람, 궁극적으로 여실(如實), 진여(眞如), 실상(實相), 살재(實在), 타타타(Tathata)를 실현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의 입장에서 보아 만물에 경계가 사라지므로,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본문의 표현을 쓰면 "마음을 노닐게 하는", "유심(遊心)"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마음이 제1편 소요유의 주제이다. "노닌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발 하나 떨어져 나간 것쯤은 흙덩어리 하나 떨어져 나간 것"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

 

마음의 문제라면 그런 마음이란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다고 공자는 말한다. 남의 눈치나 칭찬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실현만을 위해(爲己, 자기 자신이기 위해)', 차분하고 조용히 정진했을 뿐인 데도, 사람이 모여드는 것은 이런 거울같이 맑은 마음에 자기들의 참모습을 비추어 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아니면, 이렇게 훌륭한 성인이라면 승천이라도 할 수 있을 터이니, 그러기 전에 한 번이라도 만나야 겠다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찌 그가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는 것 같은 일에 괘념하겠느냐?"하는 것을 볼 때 자기를 따르는 신도의 머릿수나 지지하는 사람의 투표 수에 따라 일회일비(一喜一悲)하면서 오로지 자기나 자기 집단의 종교적, 정치적 세(勢) 확장에만 혈안이 된 요즘 세태와 얼마나 대조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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