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비겁

1185.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신이 교회에 다니는 게 부끄러우면 다니지 말아야 한다. 명단 제출을 거부하거나 숨어서 국가적인 불행을 키우는 종교를 어떻게 건강한 종교라고 하는가?"(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오늘 아침에 받은 카톡이다. 자신이 하는 행위가 부끄러운데 계속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다. 오늘 아침 화두는 비겁(卑怯)이다. 비겁을 프랑스어로는 'lâcheté'라 한다. 아마도 'lâcher'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 같다. 그 동사의 뜻이 '느슨하게 하다. 쥐고 있던 것을 놓다'이다. 그러니까 비겁은 좀 풀어져 방심(放心)하는 것이다. 다시 프랑스어-한국어 사전에서 말하는 'lâcheté'의 정의를 살펴본다. 비굴(卑屈), 비열(卑劣) 그리고 무기력(無氣力)이란 말도 나온다. 그 반대어가 용기(courage), 위엄, 품격, 자존감(dignité), 자기희생, 관대함(générosité), 기운(énergie) 등 이다.

모하메드 알리가 말했던 "나에게 흠이 하나 있다면, 내가 얼마나 끝내 주는 사람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란 문장이 생각난다. 난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좀 더 자신을 믿고, 나 자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비겁한 사람을 면할 수 있다. 답은 우리 자신 안에 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사실 다음과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1) 상대방은 나에 대해 아무 생각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2) 스마트 기기의 발전으로 사람들의 집중력이 3초 수준이다. (3) 남들이 뭐라 하던 자신의 스타일대로 사시는 분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내는 것을 "자기 수용"이라고 한다. 기시미 이치로가 쓴 『미움받을 용기』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프랑스어로 '봉 꾸라쥐!(Bon courage!)'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을 어떻게 한국어로 말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 그 보다는 '힘내!', 우리 동네 말로는 '욕봐!'. 사실 용기만 있다면, 욕볼 기운을 차린다면, 사람으로 태어나 한 뉘를 살면서 '잘 놀다 갈 텐데'. 나는 용기가 없어 잃어버린 수많은 기회들에게 미안해 하곤 한다. 그리고 작은 용기가 삶을 바꾼 순간들을 기억해 보면, 나이 들수록 용기가 없어진다. 내 삶을 바꾸고 싶다면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라고 나는 본다. 돈이니 연줄이 아니다. 용기는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켜준다. 우린 지금 용기를 내야 한다. 위기를 뒤집으면 기회이다. 그럼 어떻게 하여야 하나? 배철현의 『수련』이라는 책에서 "비겁"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거기서 나는 한 가지 답을 보았다.

코로나19가 전염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많은 관계를 끊고,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스마트폰의 유혹에 하루를 거의 보내고 나 자신을 응시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사실 스마트폰은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온갖 세계를 보여준다. 이럴수록, 우리는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보들의 가치 판단 기준이 무엇이며, 어떤 정보들을 선별해 조합할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분별한 스마트폰 정보의 홍수에 빠져 죽고 만다.

배철현 선생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서로 상관 없어 보이는 수많은 정보들을 의미 있는 단위로 배열하는 기술(技術)을 그리스어로 '테크네(techne)'라고 불렀다고 한다. '테크네'는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 정보들을 일관된 전략으로 묶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전략이란 최적화된 정보의 나열이다. '테크네'는 예술적인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의 깊은 관찰을 통해 탄생한다.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질적인 것들을 연결한다. 우리는 그들을 '예술가'라고 부른다. 나는 그런 사람을 '위대한 개인'이라 부른다.

한 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자신의 유일무이한 삶을 위한 전략과 기술, 테크네이다. 인간은 이 전략과 기술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위대한 개인"이라 부르고, 그 위대함을 만들어 내는 것을 '용기'라고 해석한다. 난 프랑스 유학 시절 친구들이 나에게 용기를 내(프랑스어 Bon Courage!)라고 하면 싫어했다. 용기의 정확한 의미도 모르면서. 용기의 반대가 비겁이라고 생각하니, 이젠 그 용기의 위대함을 잘 이해하겠다. 그 반대가 비겁한 사람, 겁쟁이다. 겁쟁이는 최적의 삶을 위한 전략과 기술이 없는 자이다. 겁쟁이는 만난 적도 없는 적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미리 도망친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공포가 그를 겁쟁이로 만든다.

겁쟁이를 피하려면, 나는 태어난 여기 이 땅에서 해야만 하는 임무가 무엇인가를 매일 아침마다 물어야 한다. 그 임무는 나에게는 의미(意味)가 있고, ,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움, 즉 미(美)를 선사해야 한다. 의미가 있는 일이란 타인과 구별되는 나라는 인간을 통해서만 시도되고 추진될 만한 일이다. 만일 그 일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도, 그럭저럭 유사하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일에는 나만의 개성이 드러나야 한다. 내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내게 불가항력적으로 맡겨진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은 나라는 고유한 인간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에, 특별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일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되어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미세하게 흘러 나오는 소리에 반응하는 자는 용맹스럽고 위대하다. 보통사람들은 자신을 돌아 보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에 온통 몰입되어 있다. 대중이 원하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아닌 다은 것들로 치장한다. 시시각각 펄럭이는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삶에 평온이 없다. SNS나 미디어를 통해 조작된 이미지를 자신의 삶의 모델로 삼아 자신의 모습과 마음을 화장하고 성형한다. 대한민국은 IT강국이 아니라, '흉내' 강국이다. SNS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허상이 아니라 진상이라고 착각한다. 어떤 대상의 개성을 조용히 인정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부러움을 조장하거나, 싫증이 나면 바로 시기로 돌변해 악의적으로 공격한다.

우리는 IT를 통해 자신과 다른 인간과 문화를 경험하며, 자신을 독특한 다름을 지닌 존재로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영혼을 고양시키기보다는, 평범하고 진부한 대중의 일원으로 살길 바란다. 그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다. 그리고 비겁한 사람이다.

일상이 단순화되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비겁한 사람들이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최적의 삶을 위한 전략과 기술이 부족하고, 오지 않은 미래에 개한 공포로 현실을 기피하거나 도망친다. 더 큰 문제는 잘 사는 사람을 부러워 시기하고 공격까지 한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비빔밥을 만들기 위해서는 요령이 필요하다. 비빈다는 말은 으깬다는 것이 아니다 비빌 때에는 누르거나 짓이겨서는 안 된다 밥알의 형태가 으스러지지 않도록 살살 들어주듯이 달래야 한다 어느 하나 다치지 않게 슬슬 들어 올려 떠받들어야 된다." 오늘은 많은 일정들이 취소되어, 시간도 많아 좀 긴 산문시를 공유한다. 산문시는 머릿속에 있는 말을 그냥 배열하는 것이라, 문장부호를 쓰지 않는다. 자꾸 읽다 보면 익숙해진다. 나는 일주일 한 번 이상 비빔밥집, <밥 함께 해(偕)>(유성구 도룡동 대덕고 옆)에 간다. 간이뷔페식인데, 내가 먹고 싶은 양만큼 가져올 수 있고, 잔밥 쓰레기를 하나도 남기지 않아 좋다. 그리고 MSG를 사용하지 않고, 신선한 재료라, 다소 과식해도 기분이 안 나쁘고, 배가 안 아프다. 값도 싸다. 지구적인 삶을 산다고 나를 위로 할 수도 있다.

비빔밥/이대흠

비빔밥엔 잡다한 것이 들어가야 한다 싱건지나 묵은 김치도 좋고 숙주나물이나 콩나물도 좋다 나물이나 남새 노무새도 좋고 실가리나 씨래기 시락국 건덕지도 좋다 잘못 끓인 찌개 찌끄래기나 달걀을 넣어도 좋지만 빼먹지 않아야 할 것은 고추장이다 더러 막걸리를 넣거나 된장국을 홍창하게 넣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취향일 뿐 그렇다고 국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빔밥엔 여러 가지 반찬과 참기름 고추장이 들어가야 하지만, 정작 비빈 밥이 비빔밥이 되기 위해서는 풋것이 필요하다 손으로 버성버성 자른 배추 잎이나 무 잎 혹은 상추 잎이 들어가야 비빔밥 답게 된다 다 된 반찬이 아니라 밥과 어우러지며 익어갈 것들이 있어야 한다 묵은 것 새것 눅은 것 언 것 삭은 것 그렇게 오랜 세월이 함께 해야 한다
하지만 재료만 늘여놓는다고 비빔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빔밥을 만들기 위해서는 요령이 필요하다. 비빈다는 말은 으깬다는 것이 아니다 비빌 때에는 누르거나 짓이겨서는 안 된다 밥알의 형태가 으스러지지 않도록 살살 들어주듯이 달래야 한다 어느 하나 다치지 않게 슬슬 들어 올려 떠받들어야 된다

손과 손을 맞대고 비비듯 입술과 입술을 대고 속삭이듯 그렇게
몸을 맞대고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게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우려 이미 분리할 수 없게 그렇게
그렇게 나는 너를 배고
너는 나를 밴 상태라야 비빔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는 사람아 비빔밥을 먹을래?
내가 너에게 듣고 싶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유성마을대학 #사진하나_시하나 #이대흠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자>를 만나다.  (0) 2021.02.27
<걸리버 여행기> (2)  (0) 2021.02.27
평화  (0) 2021.02.27
서시  (0) 2021.02.27
춘래불사춘  (0) 2021.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