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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놀 줄은 알면서 쉴 줄은 모른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5월 22일)

어제는 모처럼 일찍 주말농장에 갔다. 이미 여럿이 나와 서로 소통을 하고 있었다. 나도 슬쩍 끼어들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누룩향이 듬뿍 나는 가양주 남은 것을 내가 다 마셨다. 그리고 힘을 내, 크게 자란 명아주 풀을 다 뽑았다. 명아주는 작을 때 뽑아내지 않으면 금세 키가 훌쩍 커버리는 풀이다. 명아주는 주로 토끼 먹이로 쓰였지만, 어린 잎을 무쳐 식탁에 올리기도 했다. 개망초 이파리를 많이 먹으면 화상을 입은 것처럼 얼굴 피부가 상한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은 적이 있는데, 명아주도 많이 먹으면 피부병이 생긴다고 한다. 명아주는 지팡이의 재료로 사용될 때 최고의 영예를 얻는다. 옛 글을 읽다 보면 청려장(靑藜杖)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청려장은 푸른 명아주 줄기로 만든 지팡이다.

나는 명아주로 지팡이를 만든다는 말을 믿지 안 했다. 한해살이풀인 명아주가 지팡이를 만들 만큼 크게 자란 것을 거의 못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음 사진을 보게 되었다. 청려장은 명아주 줄기를 말려서 만드는데, 기르고 마르고 기름 먹이고 옻을 바르는 등의 윤내는 정성을 듬뿍 받고 나면 효도와 장수의 상징이 된다. 명아주 지팡이는 우선 가볍고 단단하다. 그리고 옹이가 지고 울퉁불퉁한 겉모습은 힘이 있어 보이고 점잖기까지 하다. 노인들은 명아주 줄기가 스스로 빛을 내어 사악한 귀신을 물리친다고, 그래서 청려장을 짚으면 오래 산다고 말한다. 16세기에 쓰인 이시진 선생의 <본초강목>에는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에 안 걸린다”고 적혀 있다.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퇴계 선생의 청려장은 가지가 퍼졌던 자리에 울퉁불퉁한 옹이가 있어, 그것을 짚고 다니면 손바닥에 지압 효과가 있었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말린 명아주 줄기는 단단하면서도 아주 가벼워서 힘없는 노인들의 지팡이로는 안성맞춤이다.

조선시대에는 나이 50이 되면 자식이, 60이 되면 고을에서, 70이 되면 나라에서, 그리고 80이 되면 임금이 청려장을 선사했다고 한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명아주를 ‘도트라지’라고 부른다. 청려장은 도트라지를 뿌리째 뽑아 말려 모양을 다듬고, 들기름을 먹인 뒤 옻칠을 해서 만든다.

오늘 아침 시를 읽을 차례이다. 나희덕 시인의 <소만>이다. 어제(21일)는 24절기 중 8번째 절기인 ‘소만(小滿)’이었다. 소만은 음력으로는 4월이며 양력으로는 5월21일 무렵이다. 소만은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해 가득 찬다’는 의미로, 여름의 문턱이 시작해 식물이 성장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들어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滿)는 것이다. 다만 ‘소만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소만 무렵에 부는 바람이 몹시 차고 쌀쌀한 것이 특징이다. 실제 최근에 바람이 많이 분다. 이젠 여름의 시작이다. 이젠 무성해지는 일만 남았다. 오늘은 나희덕 시인의 <소만>을 공유한다. 아침 사진처럼, 숲에서  "초록이 물비린내를 풍기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낸다. 내 주말 농장의 숲이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던 과거, 5-6월이 되면 매우 힘든 보릿 고개가 반복됐다. 지난 가을에 수확하 양식은 이미 바닥나고, 햇보리가 나오기 전까지 먹을 것이 없는 춘궁기가 이어졌다. 농촌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를 빗대어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보릿 고개'라 불렀다. 지금은 그런 말이 사라졌다. 농가에서는 추수와 더불어 일 년 농사 중 가장 중요한 '모내기'가 시작된다. 이 외에도 보리 베기 등 여러 가지 밭작물 김매기 등 해야 하는 일이 많아 농가에서는 일년 중 제일 바쁜 계절로 접어들게 된다.

소만(小滿)/나희덕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 만하다 싶은
꼭 그런 때가 초록에게는 있다

조금 빈 것도 같게
조금 넘을 것도 같게

초록이 찰랑찰랑 차오르고 나면
내 마음의 그늘도
꼭 이만하게는 드리워지는 때

초록의 물비늘이 마지막으로 빛나는 때
소만(小滿) 지나
넘치는 것은 어둠 뿐이라는 듯
이제 무성해지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나무는 그늘로만 이야기하고
그 어둔 말 아래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우고

소만(小滿) 지나면 들리는 소리
초록이 물비린내 풍기며 중얼거리는 소리
누가 내 발등을 덮어다오
이 부끄러운 발등을 좀 덮어다오

지난 한 주는 바빴다. 그래 어제와 오늘은 쉬고 있다. 우리는 놀 줄은 알면서 쉴 줄은 모른다. 우리는 실제 일상에서 내려놓는 방식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주로 '일을 해 나가는' 기술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만, 자신을 '내려놓는' 방식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긴장을 푸는 방법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을 우리는 살고 있다. 나는 최근에 잘 사는 방법은 긴장의 양과 이완의 양이 균형을 이루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삶은 그러니까 '균형 맞추기'이다. 비슷한 양과 질로 말이다.

이완이란 긴장을 푸는 일이다. 이는 진짜 '쉬는' 것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외부 자극 없는 시간 보내기'이다. 산책이 좋다. 아니면 명상도 괜찮다.  쉰다는 것은 삶을 건사하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다. 불안과 우울, 압박감 같은 감정들을 다른 자극으로 눙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직시하고 다독이는 방법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지 못한다. 늘 비우려기 보다는 성취를 고민한다. 쉴 틈이 생기면 쉬는 게 아니다. 삶을 지탱하느라 들쑤셔진 마음을 다독거릴 재주가 없어 또 다른 자극을 주입한다.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대신, 정신이 쏙 빠지게 단 콜라 따위를 물려준다. 질리고 움츠러든 마음은 달콤한 흥분으로 덧씌워졌지만 그게 진정한 이완은 아니다.

이런 식이다. 각성상태가 나를 피로하게 하지만 제대로 이완하는 법을 모르기에 마취를 택한다. 예를 들어, 삶을 지탱하느라 이어지는 흥분과 불안에 지친 상태에서, 말잔치만 이어지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 두거나 아예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 먹방 따위를 본다. 혹은 SNS에 접속해서 무한대로 펼쳐지는 타인들의 삶을 지문이 닳도록 문지른다. 그리고 알고리즘의 신에게 혼을 빼앗겨 무더기 같은 영혼으로 헤매다 동틀 무렵 어느 벌판에 쓰러져 잠들곤 한다. 홍인혜 시인의 솔직한 고백이다.

휴식, 진짜로 쉴 줄 아는 것은 능력이다. 잘 놀고, 잘 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거기에도 삶의 내공이 필요하다. 제대로 쉬려면, 일단 노동과 돈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낮의 노동이 힘든 건 노동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주는 소외와 압박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소외이고, 의지로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이 압박이다. 그러니까 쉰다는 건 앞의 두 가지, 즉 소외와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가족과 쉰다고,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가족은 감정노동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배설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젠 그런 배치를 벗어나야 한다. 그러니까 노동의 스트레스와 감정의 배설로부터 벗어나는 활동 혹은 관계가 필요하다. 내가 어떤 활동을 하면,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하면, 소외와 압박으로 부터 벗어나는 가를 살펴 보아야 한다. 고미숙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지성을 중심으로 관계를 재구성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책을 읽는 모임도 좋다고 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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