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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이제 성장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안 된다.

4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2020년 오월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해의 달이다. 나는 '다르게' 살기를 실천하고 있다. 속도 사회가 무섭게 질주하다가, 코로나-19라는  '커다란' 브레이크에 걸렸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몇 년 전부터 속도를 늦추고 느리게 살기로 마음 먹었는데, 올해 5월부터 인문운동가로서 일상에서 삶에 더 적용하는 실천을 하고 있다. 간디는 "변화를 원한다면 당신 자신이 변화십시요"라고 말했다. 그래 내가 우선 변하려고 노력 중이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오늘 아침은 쓰지 신이치 교수의 "Slow is Beautiful" 이야기를 좀 길게 하려 한다. 이 말을 단순하게 한국 말로 번역하기 싫다. 여기서 말하는 slow는 원래 '느리다, 천천히'란 뜻이지만, '생태적인(ecological)'과 '지속 가능한(sustainable)'이란 의미도 포함하기에, 단순히 "느린 것은 아름답다"로 번역하지 않고 영어로 말한다. 여기서 신이치 교수가 말하는 뷰티풀(beautiful)이란 형용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타자를 부정하고 타자와의 우열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보듬어 안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열거해 보면, slow가 왜 중요한지 우리는 알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고 익숙한 단어들이다. 성장, 경기, GDP(국내 총생산), 효율성, 경쟁, 대량 소비, 대량폐기, 개발, 과학기술, IT, 유전공학, 로봇, 4차산업혁명 등등. 이런 위에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라는 괴물을 만들고 반성 없이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것들을 표어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실제로 우리 자신들의 몸과 일상에서 중요한 것들, 예를 들면 전통적인 지혜, 인간과 자연과의 고리,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사랑, 미에 대한 의식, 몸의 능력 등이 '슬로'한 것으로 부정되고 비하된 뒤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경고를 한 뒤, 우리 주변 사람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며, 포스트 코로나-19의 세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나는 속도만을 추구하던 라이프 스타일을 속도를 낮추어 '슬로'로 가야 한다고 본다. 서두르고 속도가 최고라며 살아 갈 필요 없다. 프랑스에서 온 소식인데, 거리의 건물에 이런 현수막이 붙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C'est le bon moment(좋은 때이다)." "Décroissance(이젠 저성장 아니 감소)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 노선을 계속 추진해 가면 인구 증가, 자원고갈, 환경 오염에 의한 파국이 불 보듯 뻔하다. 이제 성장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무한성장 신화를 종교처럼 받들다가 조그만 바이러스에게 크게 당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형제들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 한다. 산다는 게 별 거 아닌데, 함께 큰 형제들을 자주 못 만난다. 오늘 공유하는 아침의 시처럼, "금방 참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인 "오월"이 다 가기 전에 만나는 것이다. 오늘 사진은 농장 가는 길의 나무인데, "연한 녹색"이, "나날이 어느 덧 번져가"다가, "어느덧 짙어지기" 전에.


오월/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득료애정토옥, 얻었음이여, 사랑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실료애정통고, 잃었음이여, 사랑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 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은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성장의 한계: 인류의 위기에 대한 리포트』의 주요 필자 중 한 사람인 도넬라 메도우즈의 에세이,  <좀 더 천천히(Not so fast)>의 주요 부분을 공유한다.
- 우리 환경운동가들이 세계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아직 언급하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슬로잉 다운(slowing down)', 즉 속도를 늦추자는 것입니다.
- 우리가 하는 환경운동은 어머니인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제 성장의 한계를 깨닫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모색하자는 치열한 싸움입니다. 이 운동에서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야말로 위기에 대처하는 가장 적절한 해결책입니다.
- 우리는 항상 서두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그 생각에서 조금만 자유로워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아마 자동차 대신 걸어가거나, 비행기로 가는 대신 배를 타고  갈지도 모릅니다.
▪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들이면 자신이 버린 쓰레기를 다시 잘 분류해서 버리게 될 수 있으며,
▪ 불도저로 땅의 모양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기 전에 지역사회 주민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대화를 나누게 될지 모릅니다.
▪ 얼마 남지 않는 물고기를 앞다투어 잡아 먹는 식으로 종의 멸종으로 몰고 가기 전에,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야 새끼 물고기가 자라 다시 알을 낳게 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지하게 시작할 수도 있겠지요.
▪ 천천히 걷고 있다면 길가에 핀 꽃의 향기가 느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 생활의 리듬을 좀 더 낮추면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자신의 몸을 느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 패스트푸드를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는 대신 슬로 푸드, 즉 자기가 재배하고 수확한 것을 가지고 요리한 음식을 보기 좋게 그릇에 담아 여유 있게 먹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도 있습니다.
- 천천히 산다는 것은 최신 기술 개발을 위해 쏟아 붓는 막대한 에너지나 원료 등을 소비하지 않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간을 절약해 준다는 여러 가지 신제품을 사지 않고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 시간을 절약해준다고 해서 절약해준 그 시간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갔는가? 모든 것을 천천히 진행시켜 나간다면, 상대가 말하는 것에 좀 더 가까이 귀를 기울이게 되고, 서로 상처를 입히는 일도 줄어들겠지요.
- 어떤 문제의 해결책을 강구하는 데, '이제 이것 외에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라고 생각될 때조차 좀 더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하고, 현실적으로 어떤 효과와 역효과가 있을지 다시 검토해볼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 한 인도 친구가 말하는 다음의 내용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정말 문제입니다. " 서구로부터 물밀 듯 들어 오는 상업광고가 인도 문화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 있는데, 그것은 광고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 속도 때문이에요. 특히 빠른 속도로 감각을 격렬하고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텔레비전 상업광고는 인도 문화에서 수천 년간 지속되어온 명상이라는 전통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이지요."
- 인도인들은 '시간이 돈'이라는 것은 모르지만, '시간은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서두르며 사는 것은 생명을 무모한 소모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 속도를 늦추는 것이 세계를 위험으로 부터 구하는 첫 번째 걸음이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바로 세상의 속도에 휘말려 좀처럼 '천천히'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들 너무 바쁘게 생활한다. 심지어 속도를 늦추자고 주장하는 환경운동가 조차도. 미국 생태 사상가인 에드워드 아비의 다음 말을 인용한다. 뜨끔하다. 이렇게 글을 쓰는 나는? "대지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대지를 음미하고 즐겨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어제 아침에 카톡에서 '되고 법칙'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나치게 낙관적이지만, 그렇다고 이 법칙을 무시하고 서두르며 초조하게 살 필요는 없다. 우리 인간은 다 정해진 시간을 살다가 다시 흙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돈은 벌면 되고,
잘못이 있으면 잘못은 고치면 되고,
안 되는 것은 되게 하면 되고,
모르면 배우면 되고,
부족하면 채우면 되고,
힘이 부족하면 힘을 기르면 되고,
잘 안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되고,
길이 안 보이면 길을 찾을 때까지 노력하면 되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되고,
기술이 없으면 연구하면 되고,
생각이 부족하면 더 깊이 생각을 하면 되고,
내가 믿고 사는 세상을 살고 싶으면 거짓말로 속이지 않으면 되고,
미워하지 않고 사는 세상을 원하면 사랑하고 용서하면 되고,
사랑 받으며 살고 싶으면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진실하면 되고,
세상을 여유롭게 살고 싶으면 이해하고 배려하면 되고,
이와 같이 ‘되고 법칙'에 대입해서 인생을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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