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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말을 하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며 살 수는 없는가?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말을 하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며 살 수는 없는가?' 이런 질문을 하며 내 마음을 알 수 없어서 잠을 못 이루었다. 다 내가 저지른 업보인데, 그걸 모른다. 머리는 잠을 자라고 하는데, 내 가슴은 아팠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I am nothing.' 이렇게 나의 인생 만트라를 외우고 잠이 들었다.

나는 지금 <초연결 시대, 인간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문체부의 후원을 받아 15주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중세의 편안한 시대를 거치면서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의 고민을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거기서 단테 이야기가 필수이다. 나처럼, 단테는 르네상스를 자신이 아닌 곳, 학교나 책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에서 발견하였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지금도 인공지능을 앞에 두고,  자신의 심장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 이유는, 내가 온통 내가 아닌 외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의 귀는 외부에 열려져 있어, 그것을 듣도록 교육받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다. 인류가 동물의 상태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금부터 4만 년 전 지하 동굴로 들어가 홀로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는 고독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단테는 깨어난 그 무엇을 ‘스피리토 아모로소’ spirito amoroso. 즉 ‘사랑이라는 영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와 괴테가 발견했다는 ‘다이몬(daimon)', 즉 자신을 자신 답게 만드는‘천재성’이며,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견하기 전에 들었다는 ‘내면의 소리(inner voice)'이며, 고대 이스라엘 예언자 엘리야가 들었다는 ‘침묵의 소리(sound of silence)'이며, 스티브 잡스를 미치게 만들었다는 ‘글자 사이의 공간(space between letter combinations)'이다.

그런데, 어제 그 침묵이 아닌, 세상의 소리를 들었다. 그래 잠을 못 이루었다. 그런데 나에게 문제가 있다. 내가 그것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정밀하게 독해(close reading)'하려면, 기본적인 문해력 이상의 능력이 필요하다. 누구나 알아보게끔 마음의 양지로 드러나 있는 의미 뿐 아니라 마음의 음지에 숨어 있는 의미까지 포착하려면 남다른 집중력과 훈련된 감식안이 필요하다. '정밀 독해'의 관건은 그런 독해를 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정밀 독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 훈련된 감수성을 가진 독해자를 만나 그와 더불어 상당 기간 동안 함께 사람의 마음을 읽어 가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수성을 열고 단련해야 한다. 처음에 접하고 느꼈던 난감함을 경험해야 그 다음에 좀 더 섬세하게 읽을 수 있는 감수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내 딸은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본다. 왜냐하면 내 딸은 늘 외롭게 혼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딸은 나보다 직접적인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갈등에서 상황 판단이 빠르고, 그 관계 갈등의 분석을 잘 하고, 그 갈등에 대해 명쾌하게 말로 표현한다.

감수성이란 얼어 붙은 것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쉽게 해동(解凍)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는 배움의 과정은 종종 더디고 괴롭다. 상황을 알고 있어도, 숨어 있는 의미를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론은 정신 집중이다. "봄날"이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가는 아침에, 더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집중하자고 다짐한다. 삶, 금방 지나간다. 너무 괴로워 하지는 말자.

봄날은 간다/김용택

진달래

염병헌다 시방, 부끄럽지도 않냐 다 큰 것이 살을 다 내놓고 훤헌 대낮에 낮잠을 자다니
연분홍 살빛으로 뒤척이는 저 산골짜기
어지러워라 환장허것네
저 산 아래 내가 쓰러져불겄다 시방

찔레꽃

내가 미쳤지 처음으로 사내 욕심이 났니라
사내 손목을 잡아끌고
초저녁
이슬 달린 풋보릿잎을 파랗게 쓰러뜨렸니라
둥근 달을 보았느니라
달빛 아래 그놈의 찔레꽃, 그 흰빛 때문이었니라

산나리

인자 부끄럴 것이 없니라
쓴내 단내 다 맛보았다
그러나 때로 사내의 따뜻한 살내가 그리워
산나리꽃처럼 이렇게 새빨간 입술도 칠하고
손톱도 청소해서 붉은 매니큐어도 칠했니라
말 마라
그 세월
덧없다

서리

꽃도 잎도 다 졌니라 실가지 끝마다 하얗게 서리꽃은 피었다마는,
내 몸은 시방 시리고 춥다 겁나게 춥다 내 생에 봄날은 다 갔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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