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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승물유심(乘物遊心): 노니는 마음으로 세상의 파도를 타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산책
(2022년 1월 4일)

작년 한 해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가깝게 지내다가 멀어진 사람이 정말 여럿이다. 어느 해보다 더 유난했다. 왜 그럴까? 내 마음 속에 다음과 같은 생각이 있기 때문 같다. '개인적인 경험의 틀 속에서 갇히지 않고, 낯선 것, 새로운 것, 나와 다른 것에 자신을 열며, 그 신선한 소통으로  스스로 진화하고 싶다. 짧게 말하면, '경험과 논리에 갇히지 않고 즐겁게 소통하고 진화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고 싶다. 만날 사람이 많다. 아닌 건 아니다. 일부러 찾아다니며 만날 필요는 없다."

그런 와중에 만남을 지속한 삶들은 영적 교류를 하던 사람들이다. 특히 <<장자>>를 함께 읽었던 분들이다. 그러니까 바쁜 틈에도, 가급적 매주 함께 <<장자>> 읽기를 했다. <<장자>>라는 책에 흐르는 중심은 다음과 같은 말들이다.
(1) 망아(忘我): 자기 자신을 잊어 버리다.
(2) 승물유심(乘物遊心): 노니는 마음으로 세상의 파도를 타다. 사물이나 일의 변화에 맡겨 조화를 이룸으로써 마음을 노닐게 한다.
(3) 탁부득이(託不得已) 양중(養中):  어찌할 수 없음에 맡김으로써 중(中)을 기른다. '탁부득이'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내버려 둠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삶의 방식이다. 세상 일에 한계가 있음을 알고 내면의 세계를 어디에도 기울이지 않고 중(中)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를 한 마디로 말하면, '무위(無爲)의 가르침'이다. 모든 것을 억지로 하거나 꾸며서 하지 말고,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라는 것이 '무위의 가르침'이다. 이는 억지로 꾸민 말, 과장한 말, 잔재주를 부리는 간사한 말, 남을 곤경에 몰아넣으려는 말, 남을 억지로 고치려는 말 등을 삼가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마음이 사물의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노닐도록(遊心, 유심) 하십시오.
(2) 부득이 한 일은 그대로 맡겨 두고(託不得已, 탁부득이),
(3) 중심을 기르는 데(養中,  양중) 전념하십시오,
(4) 그저 그대로 명을 받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를 억지로 거역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용하라는 말이다. 이를 우리는 '안명론(安名論)'이라 한다. 우리의 운명이 모든 면에서 조금도 움직일 틈이 없이 꽉 짜여 있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논증하고 그것을 꼼짝 없이 그대로 믿는 운명이나 숙명론과는 다르다. '안명론'은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함)과 비슷하다. 니버의 기도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주님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화를 주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나는 작년에 이런 기도를 만들었다. 올해도 잘 기억할 생각이다.
주님  늘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렵다'는 말을 기억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가진 것을 사랑하면 행복하고 못 가진 것을 사랑하면 불행하다'는 말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 '사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올해는 글을 짧게 쓸 생각이다. 이어지는 생각은 블로그로 옮긴다. 그리고 지난 12월 29일자 <인문 일기>도 블로그에만 남긴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오늘 아침 사진은 제주 송악산 둘레길에서 찍은 거다. 바람에 맡긴 모습이 '승물유심'이다.

<<장자>> 책을 펴면, 제1편인 "소요유"에 이런 글을 만난다.

고인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
물 한 잔을 우묵한 곳에 부으면, 그 위에 검불은 띄울 수 있다.
잔을 얹으면 바닥에 닿아 버린다. 물이 얕은데 배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바람이 두텁지 못하면, 큰 날개를 띄울 수 없다.
구만리 창공에 오른 붕새는 큰 바람을 타야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거침이 없이 남쪽으로 날아간다.

'바람'의 문제이다. 여기서 바람은 '신바람'이라는 말처럼, 우리 속에 움직이는 생기(生氣)를 의미한다.
실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신바람이 나면, 자신의 능력 이상의 실력을 발휘한다. 그리스어로는 '프뉴마', 히브리어로는 '루악', 산스크리트어로는 '아트만', '프라나' 그리고 한문으로는 기(氣)와 통하는 개념이다. 우리 말로는 숨, 숨결, 생기, 기운, 바람을 뜻한다. 장자는 제2장 재물론에서는 '하늘의 퉁소 소리'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우리에게 말한다. 건조하고 무의미한 인간 실존을 뛰어 넘는 초월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려면, "바람을 타라, 생기를 찾아라 그리하여 활기찬 삶을 살라"고 말한다.

나를 스치는 자/박지웅

나는 문 없는 자
나는 주소 없는 자
나는 탯줄 없는 자

나는 꽃잎 없고
줄기 없고 그늘 없는 자

나는 이름 없고
묘비 없고 증거 없는 자

나는 기척 없고
공간 없고 내가 꿈인 자

나는
나를 스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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