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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길/박수소리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8월 30일)

아시아 최대 와인 품평회인 <아시아와인트로피 2022> 행사를 잘 마치었다. 물류 대란으로 품평할 와인이 늦게 도착하여 일주일 내내 평가가 이루어졌다. <아시아와인트로피>는 국제와인기구 OIV(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Vine and Wine)의 승인·감독 하에 대전관광공사와 독일와인마케팅사(베를린와인트로피 주최)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와인 품평회이다. 올해는 22개국에서 온 145명의 심사위원들이 3600 여종 이상을 품평했다. 올해가 10회였다. 난 1회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10년의 세월이 그려진다.

나는 나를 '와인, 술 파는 인문 운동가'로 부른다. 그랬더니, 어떤 한 지인은 더 쉽게 '술 파는 철학자'로 고쳐준다. 내가 와인을 알게 되고, 전문가로 밥 벌이를 하게 된 것은 유학 시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와인을 마시는 이유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괴로움을 견디는 게 훨씬 수월하였기 때문이다. 와인을 많이 마시면 몸이 괴롭다. 그러나 괴로움보다 외로움이 더 힘들어 와인을 마신다. 외로움을 주고 괴로움을 받는 정직한 거래가 와인 마시기이다. 그리고 와인을 마시다 보니, 와인 맛의 10%는 와인을 빚은 사람이고, 나머지 90%는 마주 앉은 사람이다. 우리는 알코올에 취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 취한다. 내 입에서 나오는 아무 말에 과장된 반응을 보여주는 내 앞에 앉은 사람에게 우리는 취한다. 그는 내 외로움을 홀짝홀짝 다 받아 마시고 허허 웃으면, 우리는 그 맑은 표정에 취한다. 그래 나는 나를 '와인 팔며 마시는 인문 운동가'로 행복하다.

몇 일동안 아침에 맨발로 걷기를 하고, 행사장에 일찍 가는 바람에 <인문 일지>를 쓰지 못했다. 그러면서 리듬이 깨졌다. 나는 늘 리듬을 잃지 않고 살려고 노력한다. 리듬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된 노동이라도 노래에 실리면 힘든 줄을 모르는 것처럼, 리듬 속에 살면 일상이 덜 힘들고 즐겁다. 직업을 영어로 '콜링(calling)이라고도 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뜻의 소명(召命)이라는 것이다. 우리 말의 천직(天職)과 같은 말이다. 자기 직업을 천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일 속에서 보람을 느끼며 산다. 사실, 일에 열중 하노라면, 몸과 마음에 리듬이 생겨, 쾌적한 느낌을 맛볼 수 있다. 리듬을 타면, 사는 게 즐겁고 풍요롭다.

난 풍요라는 말을 좋아한다.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풍요를 좋아한다. 오히려 물질적 풍요는 경계한다. 삶은 반복적인 습관을 잘 유지할 때, 하는 일이나, 건강이 더 잘 지켜진다. 사람들은 반복을 싫어한다. 반복이 지루함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루함의 대명사인 '반복' 속에서 리듬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비슷한 음이 반복될 때 리듬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난 삶의 리듬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리듬이 살이 있으면 삶이 더 풍요롭고 하는 일이 더 쉽기 때문이다. 반복된 것들 속에서 멜로디가 탄생하는 이치이다.

규칙적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고루하고 무거운 느낌만 벗어난다면 반복이 삶에 주는 풍요로움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반복을 지루함으로 인식하는 사람과 리듬으로 인식하는 사람의 삶은 같지 않다. "저는 제 삶을 간결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외하고는 최소한의 의사결정만 하고 싶어요."(저커버그)  

삶이 단순하고 규칙적이어서 뇌가 선택이라는 값비싼 에너지를 많이 쓸 필요가 없어질 때 우리의 뇌는 뜻밖의 일을 한다. 가령, 비슷한 것 속에서 '다른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늘 걷는 길 위에 핀 민들레를 발견하고, 지하철 안 광고 문구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채집한다. 생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흔히 에피큐리안을 '쾌락주의자'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들이 추구하는 쾌락은 순간의 감각적 쾌락이 아니라, 고요한 마음의 평정심이다. 행복이 쾌락이 아니라 이 평온함이다. 롤러코스트 타는 듯한 변화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의 파문 같은 변화에 민감해질 때 우리는 세상 많은 것에 귀 기울여 응답할 수 있다. 잃은 리듬을 되찾고 싶다.

길/박수소리

道在邇 而求諸遠
도제이 이구제원 (맹자)

길은 가까운 곳에 있는데, 이것을 먼 곳에서 찾으려 한다.
먼 곳에서 길을 찾는 것보다,
일상적인 생활 주변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진리도 삶의 기쁨도 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去皮取此
거피취차 (노자)
저 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자.
노자도 저 높은 곳에 있는 이상을 추구하느라 애쓰지 말고,
가까이에 있는 이곳의 일상에서 삶의 행복을 찾자고 한다.

일에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두 가지이다.
두 가지 일이 일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우선 해야만 하는 일에 일단 달라붙어, 일의 앞 뒤를 우선 나름 익히고,
싫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다 보면, 일의 리듬이 생기고,
거기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기 싫은 것은 우리의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게으름이다.
게으름의 속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게으름을 그대로 두면, 그냥 흐른다.
이 흐름을 막아야 일에서 맛볼 수 있는 행복감을 만날 수 있다.
일의 리듬 속에서.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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