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도 나희덕 시인의 시를 공유한다. 매미와 귀뚜라미, 여름에 울어 대는 매미소리에 묻혀 귀뚜라미 소리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렇지만 9월이 오면, "풀벌레 노래 소리/낮고 낮게 신호 보내면/목청 높던 매미들도 서둘러 떠나고/들판의 열매들마다 속살 채우기 바쁘다."(문성해 "9월이 오면" 일부) 오늘 아침에 창문을 여니, 귀뚜라미가 "귀뚜르르 뚜르르" 타전을 보낸다. 무슨 이야기일까?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책 『호모 데우스』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작품 『문제(A Problem)』이야기를 한다. 그 소설의 주인공이 '이야기하는 자아'이다. 보르헤스는 인간조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하는 자아'가 지어낸 실타래가 우리 자신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중대한 피해를 끼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크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가 일어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1.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돈키호테는 실재인지 망상인지 인식하지 못한다.
2. 돈기호테가 망상에서 벗어난다. 이것은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선이라고 믿고, 전쟁터에 나간 젊은 신병이 전쟁의 현실에 직면해 철저하게 환멸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다.
3.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 환상에 매달리는데, 그것은 자신의 비극적인 범죄 행위에 의미를 부여할 방법이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상상 속 이야기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할수록 그 환상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그 희생과 자신이 초래한 고통에 필사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기 때문이다. 정치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우리 아이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내가 어리석어서 자기 잇속만 차리는 정치인들을 믿은 탓에 다리를 잃었다"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국가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 내 한 몸을 희생 했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환상을 갖고 사는 것이 훨씬 더 쉬운 것은 그것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과거의 고통이 무의미했음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미래에도 계속 고통을 겪는 쪽을 택한다. 정부도 기업도 개인도 실패한 사업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 직업에 매달린다. 그리고 우리는 '이야기하는 자아' 역시 국가, 신, 돈과 마찬가지로 상상 속 이야기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들 각자는 저마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정교한 장치를 갖고 있는데, 그 장치는 경험의 대부분을 버리고, 고르고 고른 몇 가지 표본만 간직한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는 스토리텔러"라고 말한다. 동물들은 이중 현실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들은 삼중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동물들은 외부의 객관적 실재+내부의 주관적 경험속에서 살아간다. 반면, 호모 사피엔스는 여기에 신, 국가, 기업에 관한 이야기들을 포함한다. 그는 21세기 신기술은 이런 허구의 힘을 더욱 성장시킬 것이라고 진단한다. "인간은 자신들이 역사를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역사는 사실 허구의 그물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인간 개인의 기본 능력은 석기 시대 이래로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의 그물은 힘을 급속도로 키워 역사를 석기시대에서 실리콘 시대로 떠밀었다. 상상속에서만 존재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야기가 중요하다. 그 이야기가 역사를 끌고 간다. 그래서 인문학이 보여주는 상상력이 역사를 리드하는 것이다. 인문학이 여기에 자리를 잡고, 그 중요성을 키워가야 한다.
허구적 이야기는 나쁜 것이 아니다. 꼭 필요하다. 돈, 국가, 기업 같은 허구적 이야기가 없다면 복잡한 인간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이야기가 목표나 잣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단지 허구임을 잊을 때 우리는 실제에 감각을 잃게 되며, 그때 우리는 '기업을 위해 많은 돈을 벌려고' 또는 '국익을 보호하려고' 전쟁을 시작한다. 기업, 돈, 국가는 우리의 상상에만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를 도우라고 그것들을 발명했다. 그런데 왜 그것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희생하는가? 그러니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그 허구의 이야기에 속지 않고,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침 귀뚜라미가 보내는 타전이 무슨 이야기일까 생각하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다. '귀뚜라미'를 직접 써보니 색다르다. 처음에 철자를 틀리게 썼다. 나희덕 시인의 시 세게는 섬세하다. 키워드가 되는 한 줄의 '기가 막힌' 시구가 늘 있다.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내 아침 이야기도 누군가의 노래일 수 있을까? 아침 사진은 산딸나무 열매이다. 신성동에서 리빙랩을 하고 있는 주막 어린이 놀이테에서 만난 어제 만났다.
귀뚜라미/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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