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7월 2일)
오늘 아침은 노자 <<도덕경>> 제64장을 읽는다. 그리고 사진은 어린 시절 장독대 앞에 이었던 토종 채송화(여왕의 보석이 변한 꽃)이다. 작은 꽃들이 모여 우리들의 채소밭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장의 주제와 맞는다. 이 장의 주제는 "아름드리나무도 작은 싹에서 나오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는 거다. 제 64장은 내용 상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부분의 메시지는 유비무환이고, 가운데 부분의 메시지는 스텝 바이 스텝, 마지막 부분의 메시지는 또 다시 '무위(無爲)'다. 기승전 '무위'인 셈이다.
그리고 이 장에서 흥미로운 단어가 "신종여시(愼終如始)"이다. '끝까지 처음처럼 신중(愼重) 하라'는 말이다. 이 단어를 보자, 고 신영복 교수의 다음 서화가 소환되었다.
나는 '처음처럼'이란 말을 좋아한다. 그러나 '처음처럼' 소주는 싫어한다. 살다 보면 숱한 난관과 부딪히고 그때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내라는 말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성찰이며, 날마다 갱신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뜻일 것이다.
노자도 "처음처럼"이란 말을 "신종여시(愼終如始)"라 표현했다. 처음 먹었던 마음을 잊지 말고, 처음처럼(如始, 여시) 마지막까지 신중(愼, 신)하라는 말이다. 세상은 억지로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집과 편견을 버리고 덕을 닦아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더 나아가 세상의 민심을 얻어야 천하를 얻는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
이제부터 정밀 독해를 한다.
其安易持(기안이지) 其未兆易謀(기미조이모): 안정된 상태에 있을 때 유지하기 쉽고, 조짐이 나타나기 전이라야 도모하기 쉽다.
其脆(약할 취)易泮(풀릴 반)(기취이반) 其微易散(기미이산): 취약할 때가 부수기 쉽고, 작을 때가 흩어 놓기 쉽다
爲之於未有(위지어미유) 治之於未亂(치지어미란): 문제가 터지기 전에 단속하고, 혼란해지기 전에 다스려야 한다.
도올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사물이 흔들리지 않을 때 가지고 있기 쉽고, 드러나지 않았을 때 도모하기 쉽다. 그 연약할 때는 바스러지지 쉽고, 초동에 미미할 때는 흩어지기 쉽다." 편안할 때 유지하기 쉽고, 터지기 전 해결하기가 쉽고, 취약할 때 풀어내기 쉽고, 미세할 때 해산하기 쉽다는 거다. 예컨대, 얼음이 살짝 얼어 있을 때는 사람의 손으로도 쉽게 깰 수 있지만 두께가 두꺼워지면 망치로도 깰 수 없다. 개미만한 작은 구멍 하나가 둑을 무너뜨리듯이 작은 화근 하나가 대 참사로 연결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문제가 크게 불거지기 전에 미리미리 살피고 단속하라는 것이 이 장 도입부의 주된 메시지다. 모든 삶의 어려움은 그 근원에서 다스리고, 그것이 발전하기 이전의 상태에서 예방하고 방비해야 한다는 거다.
合抱之木(합포지목) 生於毫(가는 털)末(생어호말): 한 아름드리나무도, 털끝 같은 작은 싹에서 나오고
九層之臺(구층지대) 起於累(포갤 루)土(기어루토) : 구층 누각도 한 줌 흙이 쌓여 올라가고
千里之行(천리지행) 始於足下(시어족하):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爲者敗之(위자패지) 執者失之(집자실지): 억지로 하면 실패하고, 집착하면 잃는다.
是以聖人無爲故無敗(시이성인무위고무패) 無執故無失(무집고무실): 성인은 무위하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잃지 않는다.
民之從事(민지종사) 常於幾成而敗之(상어기성이패지): 사람이 일을 할 때는 항상 일이 성사될 때에 가서 실패한다.
愼終如始(신종여시) 則無敗事(즉무패사): 시작할 때처럼 끝까지 신중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한 아름 큰 나무도 조그만 묘목이 조금씩 자라서 만들어진 것이고, 구 층 높이 누각도 결국 흙 한 덩어리가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지고,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는 중간 부분의 내용은 아무리 크고 어려운 일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추진하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세상에 그 어떤 것도 갑자기 이루어지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땀 한 땀 작은 정성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 된다. "도생일(道生一), 일생이(一生二), 이생삼(二生三), 삼생만물(三生萬物)"의 전우주적 변화의 원리를 말한 그 구절이 생각난다.
그러지 않고 성과에 집착해서 일을 서두르다 보면 무리수를 동원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 이 장의 마지막 단락은 자연스럽게 '무위지치(無爲之治)'의 유용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쪽으로 향한다. '무위(無爲)하면 실패하지 않고 집착하면 실패한다. 집착한다 것은 유위(有爲)함으로 무리수를 둔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무위'는 억지로 하는 않는 것이다. 전쟁이나 폭력으로 세상을 얻으려는 행위는 실패의 원인이 된다. '무집(無執)'은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하고,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며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결국 천하를 잃게 된다.
是以聖人欲不欲(시이성인욕불욕) 不貴難得之貨(불귀난득지화): 그러므로 성인은 욕망하지 않음을 욕망하고, 구하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學不學(학불학) 復衆人之所過(복중인지소과): 배우지 않음으로 배우고 대중이 간과하기 쉬운 것으로 돌아가서 잘못을 돌이킨다.
以輔萬物之自然(이보만물지자연) 而不敢爲(이불감위): 만물이 자연스럽게 생성되도록 도와줄 뿐, 억지로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 다시 번역하면, 만물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도와줄 뿐, 감히 나서서 억지로 하지 않는다.
성인은 바라지 않음을 바라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배우지 아니함을 배우고 뭇사람이 짓는 허물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킨다. 이리하여 만물의 스스로 그러함을 도울 뿐 감히 무엇을 한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 64장은 <<중용>> 제23장이 소환된다. 영화 <역린>으로 유명해진 <<중용>> 제23장은 우리가 자신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잘 설명한다. 이 영화에서 강조하는 "지성(至誠)"을 잘 해석해야 한다. 다음과 같이 두 단계이다. (1)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2) 그런 식으로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그 일을 정성스럽게 하게 된다. 작은 일에 최선과 그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중용>>의 원문을 시 대신 공유한다.
其次(기차)는 致曲 曲能有誠(치곡 곡능유성)이니
誠則形(성즉형)하고
形則著(형즉저)하고
著則明(저즉명)하고
明則動(명즉동)하고
動則變(동즉변)하고 變則化(변즉화)니
唯天下至誠(유천하지성)이어 爲能化(위능화)니라
이를 해석하면,
숨겨진 진실에 진심을 다해야 한다.
진심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형태가 만들어지고,
형태가 만들어지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명백해지고,
명백해지만 남을 감동시킨다.
남을 감동시키면 변화하게 되고,
변화하면 되어진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작은 정성이 모여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거다. 작은 정성이 쌓이면, 저절로 드러나고, 드러나면 분명해지고, 분명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감동이 일어나고, 감동이 일어나면 변화가 일어나서, 결국 지극한 정성이 모여서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주역>>도 겨울의 단단한 얼음은 가을에 내리는 서리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세상의 변화와 목표의 달성은 결국 처음처럼 직은 정성이 지속될 때 얻는 결과라는 거다. 편안(安)하고, 일이 발생하기 전(未兆)에, 취약(脆)할 때, 작을 때(微)가 일을 처리하고 해결하기 좋은 때라는 거다. 그리고 욕망을 내려놓고,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서 세상 만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할 때 비로소 세상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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