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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아름다운 사람/서정학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젠 "우리나라 ICT 1세대의 장인성 형성 과정"이란 주제로 만나는 <새통사> 모임에 가다, 곱게 홀로 핀 능소화 꽃무리를 만났다. 봄의 꽃들이 다 지고 뜨거운 여름에 당당히 피는 꽃이 능소화이다. 꽃 피우는 것을 힘들어 하는 꽃은 없다. 핀 꽃이 덥다고 모습을 바꾸는 꽃은 없다. 삼복 더위에 귀를 활짝 펴고 웃는 능소화를 보라. 일반적으로 꽃이 피고 질 때는 꽃이 시들어서 지저분하게 보인다. 그러나 능소화는 꽃이 질 때 예쁜 모습 그대로 뚝 떨어진다. 꽃이 시든 채 나무에 매달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옛날 양반집에 주로 이 능소화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곳 저곳에서 쉽게 눈에 띤다. 몇일 전에 못다 한 능소화 이야기를 한다. 능소화의 꽃말은 영광과 명예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 자원급제를 한 사람의 화관 꽂아 주었기 때문에 능소화를 '어서화'라고도 한다. 꽃의 자태가 아름답고 고고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찍 찾아 온 장마가 기분 나쁜 날씨이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가는 <땅끝 마을까지 가는 기차 여행>은 이번 달에도 계속된다. 오늘은 전라도 임실이라는 마을에 간다. 우리에게는 치즈로 잘 알려진 도시이다. 어제 만난 능소화가 아름다운 것은 꽃도 "가슴에/한 사람쯤 품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 아니 세상을 둘러보면, 힘들어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어렵지 않게 꽃이 피는 것 같다. 그러니 우리도 힘든 현실을 극복하려고 하지 말고, 힘들어도 힘들다 하지 말고, 그저 즐겁게 살았으면 한다. 장인(匠人)이 아니면 어떤가? 자연이 말해주는 것처럼. 세상엔 힘들어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나는 것이 힘든 새는 없다. 힘들어도 그냥 난다. 낮은 곳을 피하는 강물은 없다. 빈 것을 두려워하는 하늘은 이미 하늘이 아니다. 신은 인간에게 그저 먹고 사랑하라고만 했다. 세상이 힘들고, 살아가는 것이 버겁다면 나는 세상을 잘 못 이해한 것이다. 세상은 그저 자연이다. 세상에 미소 지으며,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갈 때 우리는 신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서정학

아름다운 사람들은
가슴에
한 사람쯤 묻고 산다.
마음의 골짜기 깊은 곳에
왕릉 같은 봉분封墳이 있어
켜켜이 쌓인 기억의 회랑回廊을 지나면
봉분 깊숙한 곳에 담긴 깃털 하나.
아름다운 사람들은 가슴에
한 사람쯤은 묻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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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오늘 아침 "장인성"이라는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제 발표하신 연구자는 '장인성'과 '장인정신'을 구별하였다.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가는 길과 새로 만들며 나아가는 길.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은 쉽고 편하다. 하지만 새롭게 만들며 가는 길은 어렵고 힘들다. 그 길은 희망이다. 그래서 인문정신은 '아파도 당당하다.' 문제가 있다면, 대충 관념적으로 장난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다. 그래서 인문 운동의 길은 아프다. 아파야 살아있는 것이다. 안 아프면 죽은 것이다. 삶은 원래 아픈 것이다. 그러니까 살아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 힘든 데도 버티며 사는 것이다. 삶이 그렇게 아픈 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자꾸 연어처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힘이 '장인성' 아닐까?

힘들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방향을 선택하면 강물에 휩쓸려 내려간다. 그것은 살아도 죽은 것이다.  왜? 죽은 물고기만 내려가니까. 길처럼, 우리에게는 두 가지 현실이 있다. 극복해야만 하는 현실, 순응해야만 하는 현실. 그런데 순응해야 하는 현실은 죽은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며, 마음 속에 아름다운 사람이든 아름다운 소명이든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