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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소통 부재, 획일주의 등 우리 사회가 많은 외톨이를 양산하는 환경에 젖어 있다.

237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6월 4일)
아주 오랜만에 일상을 이탈했다. 1박 2일동안 긴 여행을 하고 왔다. 몸이 얼마나 피곤했는지 잠을 10시간 이상 잤다. 이제야 좀 정상으로 돌아왔다. 호두의 고장이라는 광덕사가 있는 광덕산, 그곳의 거의 정상에 있는 <산사람농원>의 쉼터에서 천안 전통주 명인을 만나 한국 전통주와 산삼주에 젖은 밤을 보내고, 겨우 몸을 추스르고, 그 다음 날에는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인 현직 교장이 고향에 만든 <해맑은작은도서관>에서 <프랑스 문화-와인 이야기>를 하고 돌아왔다. 거의 20년 만에 만난 선후배 그리고 은사님들을 만났다. 다들 그대로였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감사일기>를 쓰고, 늘 하듯이 네이버를 켜고 <뉴스 홈>을 찾아 클릭한다. 그 사이에, 나는 거의 눈을 감고 빠르게 실행한다. 포털이 선별한 뉴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이다. 뉴스장사꾼들의 호객 행위에 말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가급적 시선을 외면하고 <오피니언> 코너로 간다. 그러면 먼저 구독을 눌러 놓은, 내가 좋아하는, 칼럼들이 기다린다. 우선 제목을 둘러본다. 그리고 몇 가지 칼럼을 찾아 읽는다. 그러는 사이 옆길로 새지 않도록 늘 정신을 차려야 한다. 워낙 제목을 잘 뽑은 '장사꾼' 기자가 클릭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은 그 '삐끼'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 만난 뉴스가 '정유정 사건'이다.
 
지난 5월26일 부산에서 피해자 A씨(20대·여)를 흉기로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이라는 아이의 사진에 눈이 꽂혔다. 정유정은 범행 직후 자기 집에서 여행용 가방과 흉기를 챙긴 뒤 A씨의 집에서 시신을 훼손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리에 깔린 CCTV가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 동선도 다 어딘 가에 녹화되었을 것이다. 세상이 무섭다. 정유정은 범행 이튿날인 27일 새벽 A씨 시신을 캐리어에 싣고 택시를 타고 경남 양산 낙동강 변 풀숲으로 이동해 유기했다. 이 모습을 수상히 여긴 택시 기사가 경찰에 신고했고 정유정은 당일 오전 6시쯤 한 병원에서 경찰에 체포됐다는 거다.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을까? 왜 그녀는 생전 처음 본 또래 여성을 이유 없이 잔인하게 살해하고 유기했을까? 언론의 설명은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개인의 문제, 또 하나는 사회의 문제로. 개인의 문제는 개인의 성격과 정신 장애로 본다. 나는 이 보다는 우리 사회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소개되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견해가 우리 언론에 퍼져 있다. 우선 오늘 이 교수의 주장을 본다.
 
정유정(23)이 범행 직후 CCTV(폐쇄회로TV)에 포착된 모습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굉장히 독특한 장면"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지난달 26일 밤 10시쯤 부산 북구 CCTV에는 정유정이 살인을 저지른 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가 여행용 가방을 챙겨 다시 피해자의 집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이 찍혔다. 범행을 저지른 그 날 밤이다. 마스크를 끼고 검은색 치마를 입은 정유정은 머리를 펄럭이며 어깨를 흔들거리는 넓은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이 교수는 "보통 사람이 아무리 범죄자라도 누군가를 죽이면 '어떻게 하나' 하면서 굉장히 당황하고 공포스럽기도 한데 저 모습에는 그런 게 들어 있지 않다"며 "저게 정유정의 어떤 정체를 시사하는 거냐는 점에서 아마 추후에 검찰에서 심리 분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유정의 또 다른 모습일 개연성이 굉장히 높다"며 "단순한 사이코패스하고는 약간 다른, 추정컨대 경계성 성격장애라는 게 있는데 (그런) 성격장애적 요인을 보이는 게 아니냐고 추정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사이코패스냐 아니냐는 O, X 문제가 아니다"라며 "인간의 성격이라는 게 스펙트럼 위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이코패스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비정서성"이라며 "정서가 없는 듯한, 공포도 못 느끼는 듯한, CCTV에 나오는 (모습처럼) 사람 죽여 놓고도 가벼운 느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람이 사이코패스처럼 완벽주의적 사고를 하는, 인지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아닌 것 같은 게 나중에 시신을 훼손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고 덧붙였다. 정유정이 또래 여성을 범죄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본인에게 가장 핸디캡이 5년 동안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을 못하다 보니까 아마도 본인이 '영어를 못하는 것 때문에 사회생활을 못한다'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며 "과외 애플리케이션에서 피해자가 아주 유능한 영어 선생님, 그러니까 일류대를 나온 영어 선생님이니까 목표로 삼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본인의 결핍과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강점들이 서로 관련성이 있다"며 "아마 과외선생님과 같은 사회적 지위, 과외선생님과 같은 학벌, 이런 것들을 갖고 싶었던 게 이 피해자를 선택하는 이유가 된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분을 바꿔치기 하겠다는 명시적 계획보다는 저 사람이 너무나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틀림없이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병든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을 '은둔형 외톨이(6개월 이상 사회 접촉이 없는 이들)'를 만들고, 그들을 방치한 것 때문으로 본다. 마침 영국 BBC 방송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를 조명했었다. '은둔하는' 한국 젊은이들은 자신이 사회 또는 가족의 성공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보고 사회의 높은 기대치에 압박감을 느껴 고립의 길을 택한다는 거다. 우리 정부도 지난 3월 발표한 ‘청년 삶 실태조사’에서 은둔형 청년의 비율은 2.4%로, 경북 경주시 인구와 비슷한 24만4000명 규모로 추산했었다. 국민일보 고세욱 논설위원의 칼럼에 의하면, "은둔형 외톨이의 원조는 일본의 ‘히키코모리’다. ‘틀어박힌 인간’이란 뜻으로 경기 불황이 짙어진 1990년대부터 본격 부각됐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지난해 '히키코모리'는 약 146만명이다. 90년대 청년 히키코모리 상당수가 중년이 돼서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40대 이상의 2%가량이 '히키코모리'라고 한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살해한 40대 남성, 2019년 어린이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0여 명의 사상자를 낸 50대 남성도 '히키코모리'로 분류된다."
 
BBC 보도 직후, 부산의 은둔형 외톨이인 20대 정유정이 생전 처음 본 또래 여성을 이유 없이 잔인하게 살해하고 유기했다. 정유정은 고교 졸업 이후 5년간 별다른 직업 없이 집에서 은신했다. 휴대전화에 친구 연락처도 없는 등 사회적 유대 관계가 철저히 단절됐다. 전문가들은 정유정이 자신의 핸디캡(무직)을 극복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인기 있는 과외교사인 피해자의 정체성을 훔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BBC의 분석과 비슷하다.
 
고 논설위원이 자신의 칼럼에서 소개한 히키코모리 출신의 소설가 다키모토 다쓰히코의 다음 말이 해답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것(글쓰기)을 찾게 되자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한국 영화 <김씨표류기>에선 여주인공이 밤섬에 표류된 남성과의 소통을 통해 3년 만에 방에서 뛰쳐나왔다. 정유정의 범행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만 외톨이들이 범죄의 유혹을 끊는 데 주변의 관심과 격려,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소통 부재, 획일주의 등 우리 사회가 많은 외톨이를 양산하는 환경에 젖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전문 서적을 찾아 보았다. '은둔형 외톨이'는 집 안에만 칩거한 채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보통 6개월 이상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상통하는 '은둔형 외톨이'는 핵가족화와 인터넷 보급 등 사회 구조와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따른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은둔형 외톨이'는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나홀로 문화’가 낳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사회 부적응, 가정 붕괴, 부모의 폭행, 왕따, 인터넷 게임 중독 등의 상황에 노출된 사람들에게서 빈번히 발견된다.
 
'은둔형 외톨이'는 스스로를 왕따로 자청하며 대화를 거부하고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방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에 몰두하는 데 쓴다. 사람들이 활동하는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만 주로 활동하는 '은둔형 외톨이'들은 우울증, 성격장애, 강박증, 공격적 폭력성 등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은둔형 외톨이' 사례가 보고된 것은 2000년이며, 현재는 그 수가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의 전형적 생활 패턴을 보여주는 ‘혼자 놀기’, ‘시체 놀이’ 등의 말도 유행했다. <<대중문화사전>>, 김기란, 최기호)
 
'은둔형 외톨이'는 획일적 교육, 권위적 가족 관계 등으로 스스로 왕따를 자청하는 것이며 주로 등교 거부를 통해 증세가 시작된다. 국내 최초로 우리 사회 고립·은둔 청년들의 심리를 연구·분석한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많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이들에게 전문적인 심리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상담사를 통한 치료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허 교수는 아동청소년기부터 자기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심리 과목을 접해야 좌절을 겪어도 유연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교수의 말을 직접 들어 본다.
 
“MZ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정신건강이 불안정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들은 자기애가 높지 않고 완벽주의적인 염려와 걱정, 본인을 다그치거나 책망하는 특성이 강한 편이다. 또 본인이 주관적으로 주변의 기대를 상당히 높게 지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고립을 선택했다기보다는 고립으로 떠밀렸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유럽처럼 기본적으로 자기 마음을 챙기거나 주변를 돌보거나 공감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필수 과목들이 아동청소년기부터 제정돼야 한다. 그래야 좌절이 닥쳤을 때 유연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 지금 청년들은 실패를 경험하면 다른 선택 전략이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유일한 방법이 자기 공간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나가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마음이 아프다. 다 어른들의 잘못이다. 이 '은둔형 외톨이'를 찾아 그들과 보내는 시간을 <우리마을대학>에서 사업으로 해보고 싶다. 그리고 어제 다녀온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후배 박용주에게 제안하고 싶다. 우리가 애써 '은둔형 외톨이' 찾아 그의 작은 도서관으로 끌어내고, 함께 그들에게 마음 공부를 시켜보자고 말이다. 사진은 작은 도서관의 주인 후배 박용주 시인의 시를, 사진 속의, 후배 교장(이상원)이 직접 작곡한 것을 강의 전에 부르는 모습이다. 너무 감격스러워 허락 없이 사진을 찍고 공유한다. 사는 게 이런 건데 말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는 이 구절 때문이다. "우리들의 시대는 없는 사람이 없는 대로/맘 편하게 살도록 가만 두지 않는다./세상 사는 일에 길들지 않은
나에게는 그것이 그렇게도 노엽다./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길이 있다.
 
 
길/정희성
 
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원하셨고
가난으로 평생을 찌드신 어머니는
아들이 돈을 잘 벌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어쩌다 시에 눈이 뜨고
애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나는 부모의 뜻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나이 사십에도 궁티를 못 벗은 나를
살 붙이고 살아온 당신마저 비웃지만
서러운 것은 가난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시대는 없는 사람이 없는 대로
맘 편하게 살도록 가만 두지 않는다.
세상 사는 일에 길들지 않은
나에게는 그것이 그렇게도 노엽다.
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평생에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어쩌랴, 바람이 딴 데서 불어와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한 치도 얼굴을 돌리지 말아야지.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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