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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비는 길을 묻지 않는다/박상옥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오늘 아침에 붙잡은 문장은 "영혼을 최선의 상태에 두고, 그걸 길잡이로 걸을 생각이다." 어제는 하루 종일 굵은 비가 내리고, 난생 처음 <Youtube>로 인문학 강의를 할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노자가 말한 "일도일손(爲道日損)"을 소환하며 마음을 다 잡았지만, 내 영혼은 맑지가 않다.

소크라테스의 과제가 아테나인들의 영혼이 최선의 상태가 되도록 돌보는 일이었다. 영혼이라는 말을 나는 잘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말한 "영혼을 최선의 상태로 만들어라"의 영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아직도 나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기초로 하여 '영혼의 최선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영혼에 대해 깊게 생각하면서, 삶의 온전한 방법을 아는 것을 지식의 목적이라고 하였다. 지식의 목적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실천지(實踐知)를 중시하는 것 같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한 참 말을 달리다가 멈추곤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영혼이 뒤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란다. 바쁠수록 영혼을 챙겨야 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우상화 하여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을 최선의 삶이라고 의식화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본주의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다. 루저로 규정되면 달리기 명단에서 빼기 때문이다. 그런 논리에 훈련 받아 우리는 영혼을 잃어버리거나 놓고 내달리기만 한다.

영혼을 뒤에 남겨 놓고 달리기만 하는 삶은 우리에게 삶의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줄지 모르지만, 삶의 정신적 행복은 빼앗긴다.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세상은 멈춰 서고, 비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우리를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 지를 돌아보는 것이 절실하다.

많은 인문학적 지식들을 보면, 영혼을 앞세워 영혼이 시키는 대로 삶의 방향을 잡고 따라가는 삶이 행복의 원천이라 말한다. 앞에서 말한 바 처럼, 가끔 멈춰 서서 영혼이 뒤따라오기를 기다려주는 삶보다 중요한 것은 영혼을 길잡이로 앞장 세워 따라가는 사람이다. 어쩌면 이 후자가 길을 잃지 않고 걷는, 더 좋은 삶의 기술일 수 있다. 영혼의 떨림을 따라가는 삶 말이다.

나는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영혼이 떨리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지내고 싶다.<리스본 야간열차>에서, 15분 밖에 남지 않은 기차를 즉흥적으로 타고 리스본으로 가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근무하던 교장에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다음 문장을 남기고 떠난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 노자의 <도덕경> 제80장에서 말하는 노자의 꿈처럼, "내가 먹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달고 생각하고, 내가 입은 옷이 가장 아름다우며, 내가 사는 집이 제일 편안하고, 내가 누리는 문화를 가장 즐거운 곳(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基俗)"이었으면 한다. 좀 쉽게 말하면,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을 맛있어 하고, 네가 입고 있는 그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내가 살고 있는 그곳을 편안하게 생각하며, 네가 누리고 있는 그 문화에 즐거워하라는 말 같다. 이는 외부에서 오는 더 좋은 것을 꿈꾸기보다는 내 뿌리를 내가 서 있는 바로 그 곳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라는 말 같다.

과정을 거치려 하지 않고, 우리는 삶에게 묻곤 한다. "왜 나에게는 이것 밖에 주어지지 않은 거야 ?"하고. 그러나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답한다. "이 것만이 너를 네가 원하는 것에게 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속삭임을 듣지 못할 때, 우리는 세상과의 내적인 논쟁에 시간을 허비한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자신이 결코 팔을 갖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새의 몸에서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우리는 나비처럼 살 수 없는가! 나비는 길을 묻지 않는데, 사람들은, 이 시를 소개하는 반칠환 시인처럼, 자꾸 길을 말해 준다. "길을 묻지 않으니 삐뚤 빼뚤 갈지자로 날아가는 군. 내비게이션을 써 보면 달라질 걸. 쉬는 자리가 집이라니 홈리스로 군. 취직을 시켜서 청약저축을 들게 해야 해. 평생 잎과 꽃 사이 옮겨 다녔다니, 알프스의 봄꽃과 안데스의 가을꽃 관광 상품을 팔아야겠군. 햇빛으로 치장 한다니 선크림은 필수고, 이슬로 양식을 삼는다니 참이슬을 권해야겠군. 배불리 먹지 않는다지만 야근 후 치맥은 피할 재간 없겠지. 고요했다지만 게을렀던 거야. 출근부 찍느라 정신이 바짝 날걸. 지상의 낮은 곳에 아름다움이 있다면 슬기인간들은 왜 우주로 나갈 생각을 하겠나. 길 위에 길을 묻지 않으니 조상 대대로 겨우 나비였던 거야. 이제 나비를 인간답게 만들어 새로운 시장의 소비 주체로 만들어야 해."((반칠환)

나비는 길을 묻지 않는다/박상옥

나비는 날아오르는 순간 집을 버린다.
날개 접고 쉬는 자리가 집이다.
잎에서 꽃으로 꽃에서 잎으로 옮겨 다니며
어디에다 집을 지을까 생각하지 않는다.
햇빛으로 치장하고 이슬로 양식을 삼는다.
배불리 먹지 않아도 고요히 내일이 온다.
높게 날아오르지 않아도 지상의 아름다움이
낮은 곳에 있음을 안다.
나비는 길 위에 길을 묻지 않는다.

전 세계 150개 이상의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기획자 소만 차이나니(Soman Chainani)는 우리들의 "영혼은 생각을 통해 말하지 않는다. 감정, 이미지, 단서, 실마리를 통해 찰나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영혼은 파편처럼 우리 삶 곳곳에, 모든 순간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고 하면서, 우리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생각, 규칙, 체계, 신념은 대부분 진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저 우리가 손에 넣지 못하고 있는 "과거 경험의 잔재 물"이라고 한다.

소만에 의하면, 늘 영혼은 우리 내면에 완전한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오히려 영혼과 접촉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고 헸다. 그래 우리는 영혼을 최선의 상태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정말 영혼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 다시 말하면, 영혼의 떨림이 없이 산다는 말이다. 그냥 기계적으로 산다. 그러나 쇼만은 영혼이 우리 삶 곳곳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순간에 몰입하여, 자신의 심연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들려주는 목소리, 나의 자아. 두려움, 본능들을 만나는데, 그것들이 나의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나만이 혼자 찾아가는 장소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의 영혼과 접촉 기회를 만들려면, 우리는 날마다 기대하는 게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소만은 말했다. 매일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는 기대감이 있는 하루를 보내야 한다. 영혼은 열망과 자극이 있는 곳에서 더 뚜렷하게 생생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하루의 마무리 의식을 세심하게 만들어보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면, 심호흡을 해도 좋고, 세 줄 짜리 일기를 써도 좋고, 오랫동안 그려야 완성되는 그림에 조금씩 색깔을 입히다가 잠들어도 좋다.

언젠가 들었던 <2019 그랜드마스터클레스(GMC)>의 박재희 교수 강연, "영혼이 떨리는 사람을 살고 있는가"에서 배웠다. 영혼이 떨리는 삶을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제안했다.
(1) 자신의 일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평범하고 하찮은 일상에서 영혼이 떨리게 하려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고, 동원되거나 생각 당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여기의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랑하면 영혼이 떨리는 일상이 된다.
(2)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과 좋은 관계를 통해서 영혼의 떨림을 유지해야 한다. 혼자보다 옆에서 누군가가 지켜봐 줄 때 영혼이 더 떨린다.
(3) 세포에 불이 켜지는 '흥'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박교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흥본주의"가 미래의 큰 흐름이라고 했다. 흥이 많은 사람이 "흥본가"라는 말도 지어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흥지수(HQ)"를 높아야 영혼이 떨리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요약하면,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네 일상을 온전히 느끼면서, 만남과 이별의 균형을 맞추면서, 내 안의 세포에 불을 켜 흥이 나는 사람을 살 때 영혼이 떨린다고 했다. 손해를 보는 일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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