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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6월에는/나명욱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6월 4일)

‘포모(FOMO)’는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로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가'라는 공포를 내포한다. 지하철 도착 알림이 들리면 내 쪽 방향이 아닌 데도 남들이 뛰면 같이 뛰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그런 심리 속에서 우리는 불안이나 두려움 넘어, 공포 속에 살고 있다. 분명한 건 두려움은 안개처럼 실체가 없지만, 공포는 실체가 있는 두려움이라는 것이다. 그 구체성의 낱낱은 2020년의 신조어가 말해준다. "‘영끌’하지 못해 ‘벼락 거지’가 되는 것." "'나만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포모 증후군’에 떠밀려 산 주식 가격이 떨어져 '멘붕'이다." 이 말들을 알겠는가?

나심 탈레브는 자신의 책 <<행운에 속지 마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운 좋은 바보들”이라고 말했지만 이 말이 딱히 위안이 되진 않는다. 신조어 풍년은 급격한 변화의 방증이다. 오징어게임, 삼성전자, 갭 투자, 노마드적인 삶 같은 소위 ‘대세 열광’은 ‘포모 증후군’의 연료다.

포모의 반대 신조어가 ‘조모’(JOMO·JOY OF MISSING OUT)'이다. 선택하지 않아서 놓칠까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선택하지 않아서 생기는 즐거움을 뜻한다. 가령 결혼하면 잠재적 연인을 찾을 기회는 사라진다. 하지만 기회를 포기한 대가로 안정감이 찾아온다. 더 이상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포모’ 증후군이 미래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일한 해독제는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삶이 ‘유한하다'는 명확한 인식이다. 백영옥 소설가에 의하면, 정리 컨설턴트가 말하는 정리의 1원칙은 하나를 사면 하나는 버리라는 것이었다. 책 읽기에 대한 자신의 원칙도 책 한 권을 여러 번 읽을 수 있을 때 더 많은 걸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1년에 300권 읽는 독서법은 허상이라는 것이다. 많은 독서하기로 잘 알려진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도 “좋은 책은 적어도 세 번 읽는다"고 한다. 손흥민 어버지는 독서를 할 때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세 가지 펜을 준비한다. 책을 세 번까지 읽으면서 색깔별로 중요 대목을 압축해 표시하고, 가장 핵심이 되는 빨간색 메모는 독서노트에 옮겨 적는다. 그는 “읽기만 해도, 적어만 놓아도 소용없다. 반복해 익혀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독서노트 작성이 끝나면 책은 버린다.

어쩌면 ‘번 아웃 키즈’에게 필요한 건 ‘탐색’이 아닌 ‘정착’일지 모른다. 막상 우리가 열광하고 사랑하는 건 선택 가능성이 무한정 열려 있는 세상이 아니다. 매번 바뀌는 가게가 아니라, 60년째 영업 중인 '노포(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들이며, 잠재적 연인이 가득한 데이트 앱이 아니라 50년 헌신한 노부부 이야기일 수 있다. 배고플 때 먹는 밥이 가장 맛있다. 기쁨을 극대화하는 건 역설적으로 절제다.

번아웃(burn out)이란 '에너지를 소진하다', '다 타다', '가열되어 고장이 나다' 등으로 사전에서는 정의한다. '번 아웃 증후군'이란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면서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말한다.

이번 연휴 기간에는 포모 증후군의 공포 속에서 '번 아웃'되지 않으려면, 탐색 모드를 바꾸고, 다른 선택지를 없애고, 자기가 하는 일에 '전념'하고 '헌신'하자는 피트 데이비드의 책 <<전념>>을 정밀 독해하고, 공유할 생각이다. 이 책의 표지에는 "전념이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힘"이라 쓰여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전념(專念)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사전적 의미는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씀"이다. 이 책의 원어가 "Dedicated"이다. 이 영어 단어를 영한 사전에서는 '시간과 노력을 바치다', '전념하다', '헌신 하다'로 해석한다. 어쨌든, 나는 이 'dedicate'라는 영어 단어는 '무언 가에 오랜 시간을 들이는 거'로 알고 있다. 그래 이 말을 "전념'으로 번역한 것은 좀 어색하다. 그래 부제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힘에 관하여" 를 사용하고 있다. "바꾸고 싶다면 전념하라."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무언 가를 바꾸려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거다. 이 책의 저자는 dedicate라는 단어 속에서 두 가지 뜻을 찾았다. 하나는 '무언 가를 신성하게 하다', 즉 기념비를 세운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무언 가에 전념하다'로, 예를 들면 '그 프로젝트에 전념했다'로 사용하는 거다. 그러니까 "전념"이라고 번역된 "dedicate"는 우리가 무언 가에 전념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신성한 일이라는 의미라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가? 우리에게는 현재 너무 선택지가 많고, 그 선택지를 너무 열어 두기 때문이다. 이게 요즘 세대들의 특징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러한 특징을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라 표현했다. 현대인들은 어느 한 가지 정체성, 장소, 공동체에 스스로 묶어 두기를 원치 않으며, 그래서 마치 액체처럼 어떠한 형태의 미래에도 맞춰서 적응할 수 있는 유동적 상태에 머무른다는 거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을 탐색만 한다는 거다. 이러한 "무한 탐색의 시대", "꾸준히 전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자는 거다.

우리는 자신이 누군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 한다. 문제는 알면 알수록 모르는 영역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곧 구원이다. 왜냐하면 앎은 무지를 알아차리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것은 질문이 없고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고 여기는 태도이다. 탐색이나 검색이 아니라, 사색도 필요하다. 그리고  지난 20세기는 이분법이 지배한 시대이다. 선과 악,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 등으로 이분법이 지배한 세기이다. 그리고 인생은 노동, 화폐, 가족이라는 트라이앵글만 잘 지키면 된다고 여긴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디지털 혁명과 함께 낯설고 기이한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 세상이다. 그 안에 온갖 지식과 정보가 그득하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이번 연휴 기간동안, 피트 데이비드의 <<전념>>을 읽으며, <인문 일기>에 리-라이팅하고 공유할 생각이다.

저자는 제 1장에서 우리 시대 문화의 두 가지 유형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는 전념하지 않는 주류 문화인 '무한 탐색 모드'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현시대의 흐름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반문화인 '전념하기'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액체 근대"에 저항하고, 전념하기 반문화에 합류하여 꾸준히 몰입하라고 권한다. 그 길에서 우리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두려움, 불안 그리고 공포에 맞설 수 있는 해독제를 찾을 수 있다는 거다.

우리는 지금 여러 선택지를 열어 두고 "무한 탐색 모드"로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그 어떤 세대보다 더 다양한 새로움을 경험하는 재미를 누리고 있다. 오늘날의 주류 문화는 한 곳에 묶여 있지 말고 계속 옮겨 다니며 이력을 쌓으라고 권한다. 한 가지 일만 잘할 수 있는 기술보다는 어느 곳에든지 적용할 수 있는 추상적인 능력을 가치 있게 여긴다. 무엇이든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여기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것이 매각되거나, 매입되거나, 규모가 축소되거나, '효율화'될 경우를 대비해서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깊이 마음을 주지 말고 상대방 역시 그렇더라도 놀라거나 상처받지 말라고 한다. 무엇보다 언제나 선택지를 열어 두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남아 있는 인물들의 공통점을 보면, 그들은 현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전념하기'라는 반 문화를 공유하며 특정한 장소나 공동체, 특정한 이상이나 기술, 특정한 기관이나 사람 등 특정한 무언 가에 몰입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삶을 살았다.
-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책임감을 느낀다.
- 자신이 속한 장소와 그곳에 사는 이웃을 사랑한다.
-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생각을 현실로 만든다.
- 자신이 속한 단체나 공동체를 지키고 돌본다.
- 자신의 기술에 자부심을 느낀다.
- 사람들에게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면서 특정한 무언가와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거기에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함으로써 관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이를 위해 선택지를 기꺼이 포기한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영웅적인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저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며 매일 똑같은 아침을 맞이한다. 대신 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지, 아니면 하던 일을 계속할지,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을지 결정할 수 있다. 인생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것들은 대개 이러하다. 크고 중요하고 용감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보다는 사소하고 평범한 순간이 이어진다. 거기서 우리는 나만의 의미를 찾고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가 전념 하기 영웅들처럼, 매일, 매년 꾸준하게 시간과 노력을 쌓아 스스로 극적인 사건 그 자체가 되라는 거다. 그 날을 위해 "6월에는/평화로워지자/모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쉬면서 가자."

6월에는/나명욱

6월에는
평화로워지자
모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쉬면서 가자

되돌아보아도
늦은 날의
후회 같은 쓰라림이어도
꽃의 부드러움으로

사는 일
가슴 상하고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그래서 더 깊어지고 높아지는 것을

이제 절반을 살아온 날
품었던 소망들도
사라진 날들만큼 내려놓고
먼 하늘 우러르며 쉬면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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