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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아름다운 너무나/박라연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디지털 라이징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세계인데,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지는 않다. 그 개념을 이해한 후 부터이다. 내 컨텐츠가 내 플랫폼으로 개인 노트북 안에서만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통해 영역이 확장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플랫폼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내 뜻대로 되지 않고 그 플랫폼 주인의 의도에 노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내 플랫폼을 갖고, 서로 연대해야 한다. 오늘 아침 "이야기로 세상을 두근거리게 하는 총달 유PD"라는 사람을 스마트폰에서 만났다. 이런 플랫폼을 원하는 것이다. 나는 단순한 이야기보다 인문정신을 고양하는 컨텐츠를 공유하고 싶다.

'인문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인문적으로 산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편적으로 완성된 이론을 내면화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 그곳에서 자기 눈으로 발견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비는 인문적 활동으로 일상을 채우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두 가지이다. (1)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지금-여기서 처한 상황이다. (2) 다른 이의 눈이 아니라, 자기 눈으로 발견한 문제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대답하는 삶에서 질문하는 삶으로 건너가는 일이다. 이론을 숙지하는 삶에서 문제에 빠져드는 삶으로 건너가는 것이어야 한다.

가만히 놔두면, 우리의 뇌(특히 좌뇌)는 항상 재잘거린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뭔가를 떠들어 댄다. 그러면서 생각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래 우리는 이 산만함에 맞서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것이 수렴과 집중이다. 이 또한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일이다. 요즈음 자신의 '넘쳐나는' 힘을 절제하지 못해, 원심력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배철현 교수가 그런 사람들을 잘 표현해 주었다. 많이 먹고, 마시고 해서 힘을 절제하지 못해, 원심력에 의지하는 "사람은 중독을 유발하여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는 쾌락, 자극, 새로운 것을 항상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닌다. 쉽게 웃음과 울음을 자아내는 촌극을 감동이라 평가하고, 세네카의 구심력 찬양문구인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건배사로 착각하고  니체의 고통을 삶의 일부로 수용하라는 혜안인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노래방 춤 쯤으로 여긴다. 원심력에 경도되어 있는 사람은 힘이 없고 불안하고 산만하다."

수렴이야기를 좀 더 해본다. 수렴(收斂)이란 말은 주로 어떤 현안에 대해 이해관계가 있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은다는 의미로 사용되거나 수학 용어로 쓰인다. 오늘 말하는 수렴은 몸과 마음을 단속한다는 말에 더 가깝다. 타오르는 욕망의 불꽃을 제어하여 수승화강(水丞火降)을 이루고, 욕망과 능력이 마주치는 포인트를 찾아야 하고, 뇌의 재잘거림을 멈추게 하는 마음 훈련이 수렴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수승화강이란 몸이 균형을 잡기 위해 신장의 물은 올라가고 심장의 불은 내려가야 한다는 양생의 원리를 말한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수렴과 집중은 필수이다.

이런 사람들은 원심력을 구심력으로 제어하기 위해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다, 그들은 힘이 있다. 그런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원심력의 과시를 희생하여야 한다. 나는 이 구심력과 원심력의 조화를 위해, 아침 마다 <인문 일기>를 쓴다. 자꾸 밖으로만 출렁이는 생각과 본능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무기력하지만, 그것들을 제어하고 조절하여, 그 힘을 비축하는 사람은 강력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 원심력을 제어하고 조절하는 힘은 인문정신에서 나온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욕망의 재배치를 위해,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전환하여 탈영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이 "글쓰기로 수련하기"(고미숙)이다. 읽기도 수렴과 집중의 과정이지만, 강도가 좀 약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책을 읽고 있는 데도 생각이 흩어지고 산만해지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또 집중적으로 읽는다 해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그 많은 언어와 문장들은 허공에 흩어진다. 나이들수록 더 하다. 덮으면 머리가 하얘진다. 사실 읽는다는 것은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읽는 행위 자체가 카오스에 차서(次序)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정신의 사막에 지도를 그리는 행위이다. 거기에 더 임펙트를 부여하려면 써야 한다. 쓰기는 읽기의 연장선이자 반전이다 도약이다. 읽기가 타자의 언어와 접속하는 것이라면 쓰기는 그 접속에서 창조적 변용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접속과 변용은 연결이면서 도약으로 풀이 할 수 있다. 점속과 변용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는다.

쓰기는 다른 활동과 능력이 요구된다. 다시 말하면 읽기보다 수렴과 집중이 더 필요하다. 읽기는 약간의 산만함을 허용하지만, 쓰기는 그런 방심을 용납하지 않는다. 글을 쓸 때, 역간 방심하면, 낱말들이 사방으로 마구 흩어져 문장 하나 단락 하나 구성하기도 힘들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말들을 다시 연결하여 문장을, 단락을 그리고 책을 만들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런 이치를 알게 되면 읽기도 달라진다.

읽기와 쓰기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이다. 수렴과 집중이 안 되는 데 좋은 일상을, 좋은 삶을 살기는 불가능하다. 변화가 상수인 이 시대에, 잠깐 방심하는 사이, 존재의 GPS가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다. 그 일은 원초적 무질서에 맞서 새로운 리듬을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재능’才能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 터전에서 내가 뿌리를 내려 싹을 틔워 재배해야 할 꽃이다. 내가 그 재능을 무시하거나 방치하면, 그것은 나를 내 삶을 망치는 폭군으로 만들 것이다. 나에게 명예로운 것은 무엇인가? 내 삶에 안녕을 선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내 삶의 왕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내 삶을 망치는 폭군이 될 것인가?자신이 해야 할 사명을 모르는 게 죄이다. 묵상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기 위한 응시이다. 묵상을 통해 매일 수렴과 집중으로 원심력을 제어하는 구심력의 힘을 키워야 한다.

장자는 우리의 삶을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사는 시간이라는 것은 마치 흰 말이 벽의 갈라진 틈새를 내달리며 지나치는 순간 정도다. 홀연할 따름이다!"(『장자』 외편 "지북유") 이를 간단히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 한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 평생을 산다는 것은 책받침 두께 정도의 틈새를 하얀 말이  획 지나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벌써 5월 말이다. 내일부턴 일년의 중간인 6월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는 문태준 시인이 "경향시선"에서 다음과 같은 덧붙임과 함께 소개한 것이다. "우리는 빛이 가득한 때를 살기도 한다. 흐뭇하고 황홀한 시간을 살기도 한다. 시인은 그 시간을 옷과 구두와 가방을 걸치는 일에 비유한다. 그러나 눈부신 시간은 짧고, 연속적이지 않고, 사라진다. 마치 생화로 만들었으나 시들어 버리는 꽃다발처럼. 그렇지만 그 기쁜 순간들 덕택에 우리들은 삶이라는 의복의 낡음을 잠시 가릴 수 있다."

시인은 “세상의 어두운 창고 하나쯤/ 헐어서/ 남향을 찾아줄 상상을 하”기도 하는데,  오는 6월은 나에게 "남쪽으로 낸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나의 내면의 공간을 더 환하게 비추었으면 좋겠다. 금모래 같은 환하고 밝은 시간이 하루 낮 하루 밤 동안이라도 계속 쏟아지고 이어졌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 사진은 수렵과 집중하며 최선을 다하는 담쟁이 넝쿨이다.

아름다운 너무나/박라연

우리가
누린 적 있는 눈부신 시간들은

잠시 걸친
옷이나 구두, 가방이었을 것이나

눈부신
만큼 또 어쩔 수 없이 아팠을 것이나

한번쯤은
남루를 가릴 병풍이기도 했을 것이나

주인을 따라 늙어
이제
젊은 누구의 몸과 옷과
구두와 가방
아픔이 되었을 것이나

그 세월 사이로
새와 나비, 벌레의 시간을
날게 하거나 노래하게 하면서

이제 그 시간들마저
허락도
없이 데려가는 중일 것이나

이제 오늘 아침에 만난 내 인문정신을 고양시켰던 글을 좀 공유한다. 요즈음 아동 전문가로 알려진 오은영 정신과 전문의의 말이 눈에 띤다. 자신의 아들에게 했다는 말들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실력을 늘리기 위함이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실력과 결과가 꼭 비례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결과에 따른 감정까지도 겪어내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좌절도 하고 마음도 아프다. 그 것까지도 끝까지 겪어보는 거다. 그럼 얻는 게 있다."  우리는 결과에 따른 감정까지도 겪어냈을 때, 비로소 실패를 인정하고, 포용하고, 성공의 거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는 성적으로 살지 않아요. 꼴등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보는 것, 또 틀려도 한 번 더 풀어볼 용기로 평생 살아갈 태도를 배우는 거예요."

최선을 다해본다. 배철현 교수는 자신의 칼럼에서 '오늘'이란 시간을 후회 없이 지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를 물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최선의 삶을 위해 나에게 주어진 오늘은 일상(日常)이다. 내가 그 일상을 응시해 최선을 발견한다면, 그 일상은 특별한 일상인 비상(非常)이 된다. 만일 내가 그 일상을 방치하거나 흘려 보내면, 그 일상은 진부(陳腐)가 된다." 비상과 진부의 차이, 그거 참 크다.

비상이란 내 안에 숨겨진 천재성을 작동시키는, 나를 몰입시키는 위급이다. 인간은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는 힘을 발휘한다. 진부란 자신이 무엇을 지녔는지 모르는 상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기(肉)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기를 소화해 에너지를 만들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이란, 그 고깃덩이를 타인에게 진열(陳列)하고 자랑하는 일이다. 고기는 서서히 부패(腐敗)한다. 그는 서서히 진행되는 부패의 악취에 취해, 자신의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밴 줄 모르고 자신도 모르게 부패한다.

세네카는 동일한 인간이 선왕이 될 수도 있고 폭군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자신에 주어진 이상인 ‘명예로운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안녕을 위해 몸을 다스린다면, 그는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는 왕이 된다. 그러나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 탐욕에 눈이 먼 사람, 그리고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은 스스로를 폭군으로 만든다. 폭군은 누가 봐도 끔찍한 악취가 나 혐오스럽다. 고대 히브리어에 ‘선’이란 단어는 ‘토브’טוֹב인데 그 본래 의미는 ‘향기 나는’이란 의미다.  반면에 히브리어로 ‘악’이란 단어는 ‘라’רַע인데, 그 의미는 ‘악취가 나는’이다.

'토브'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 본다. 사람들은 자신이 번 돈의 양이 곧 자신의 인격이자 실력이라고 착각한다. 부를 관장하는 운명의 여신은 부의 편중을 싫어한다. 자신이 부를 쥐었다면, 자신보다 운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 부가 자신에게 좀 오래 머물 뿐이다. 착각하며 정해진 순간을 사는 그리고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우리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선행(善行)이다. 고전 히브리어로 '토브(tob)'는 구약성서에서 올리브 기름을 수식하는 형용사로 종종 등장한다. 그러니까 토브는 그 기름이 최상급인지 아닌지는 향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최고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나 또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반찬의 향기와 맛이 '토브'이다. 그리고 '토브'는 위대한 성악가의 아름다운 목소리이며, 예술가의 조각이나 회화, 대자연의 장관을 형용하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선(善)은 아름다움이고, 거짓이 아닌 진실된 것이다. 여기서 진선미(眞善美)가 다 만난다.

'토브'는 '보기에 좋고, 듣기에 좋고, 냄새가 좋고, 맛이 좋고, 촉감이 좋은' 상태를 말한다. 향기와 맛처럼,  그것을 접하는 상대방이 느끼는 '토브'의 선(善)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접하는 상대방이 느끼는 어떤 것이다. 선이란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느끼기에 좋은 것이다. 그 기준이 절대적으로 상대방에 달려 있다.

오늘부터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다. 그리고 할 일들이 많아진다.  내 일상을 내가 주인이 되어 지배해야 한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이끌 때 변화한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현재의 자신을 응시하고, 그런 자신에서 유기해야 할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장려해야 할 장점을 찾아 일깨우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 응시를 하루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여긴다. 자신의 실존적인 위치를 정확하게 판단해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그 하나'를 끊임없이 찾아간다. 그는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희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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