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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지혜/세라 티즈데일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은 계절의 여왕, 5월의 마지막 날이지만, 주일이다. 오늘 아침도 매 일요일마다 만나는 짧지만 긴 여운의 글들을 공유한다.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잡힌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글들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갖다고 본다. 이런 글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근육을 키워준다. 한 주간 모은 것들 중 매주 일요일 아침에 몇 가지 공유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어제 저녁에는 멋진 파티에 참석했었다. <49인의 사람 책 네트워크 파티>. 지역 책방 살리기 캠페인으로 49명의 사람 책이 모여, 토요일마다 세미나를 하기로 했는데, 내 차례에서 멈추었다. 그 코로나-19 때문에. 영어로는 COVID-19(Coronavirus Disease-19)이다. 준비하고, 장소를 내주고,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초대해 주셔서 고맙다. 오늘 아침 사진이 그 파티에서 찍은 것이다. 지는 해가 앞 유리창에 비치었다.

네가 이 그룹에 참여한 것은 이런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몇 일동안 전 고려대 총장이셨던 염재호 교수님의 인터뷰를 읽는다. "IT가 발전하면서 형식지와 같은 지식을 많이 갖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해 졌다. 21세기에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나만의 지식 즉, 암묵지를 많이 가져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암묵지(暗默知')는 학습과 체험을 통해 습득되어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의 지식으로 시행착오와 같은 경험을 통해 체득되는 경우가 많다. '형식지(形式知)는 암묵지가 문서나 매뉴얼 형태로 표출돼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을 말한다.

염 교수님이 자주 말씀하시는 '개척하는 지성'는 암묵지로 사회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1980년대까지 대학의 역할은 두 가지였다. 첫째, 학생들에게 형식지를 주입하고 훈련시켜 전문가로 만들어 사회로 내보내는 것. 둘째는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 갖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려고 하며 이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학생을 길러내는 것.

그러나 21 세기 뉴-노멀 시대에는 대학의 역할이 변할 것이다. "기존의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곳으로서의 대학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보다 더 잘 해결하는 능력을 배양하여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 대학이 형식지만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지식을 새롭게 만드는 공작소 역할도 해야 할 것이다." 그래 우리가 꿈꾸는 '휴먼 북(사람 책) 프로젝트'는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보다 "지혜"이다.

지혜/세라 티즈데일

내가 불완전한 것들에 대항하느라
내 날개를 꺾어버리는 일을 그만둘 때,
좀처럼 열리지 않는 문 뒤에서 타협하는 법을 배울 때,
성숙한 고요함과 매우 냉철한 지혜의 내 눈으로 삶을 바라볼 때,
삶은 나에게 진실을 가르쳐준다.
삶이 가져간 젊음 대신.

한 주간 만났던, 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 문장들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내 일상을 습관적으로 통제한다. 그 중에 하나가 페이스 북에 포스팅한 지난 글들을 다시 읽는다. 그러면서 내 영혼을 고양시킨다. 오늘 공유하는 글들은 거기서 가져온 것들이다.

1. 사랑은 자신의 최선을 이끌어 내기 위해, (1) 상대방과 나와의 간격을 소중하게 여기고, (2)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3) 더불어 자신의 고결한 품위를 유지하는 절제이다. 단테는 '무절제'를 '인콘티넨차'라 했다. 이 말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요실금'이다. 인간이 자신의 정신을 다듬지 못하고, 영혼을 돌보지 않으면 요실금처럼 품격을 망치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게 된다.
  
2. 불평등이란 우리가 아등바등 살고 있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는 뜻이다.

3. 자유가 나만 자유롭게 만들고 타인을 억압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자유를 만끽하는 만큼, 나의 친구도 심지어 내가 모르는 이름 모를 친구들을 위해서도 애써야 한다 그게 우정이고, 친구의 범위를 전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하여 애쓰면 평화가 온다. 자유, 우정 그리고 평화는 하나이다.
  
4. 인간으로서 잘 사는 방법은 스스로 불편을 자초하는 일이다.
  
5. 나는 나의 삶을 찬란한 한 순간 한 순간의 합으로 만들고 싶다. 영원은 한 순간의 반복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나는 '우아한 성실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런 사람은 과거와 미래로 분열되지 않고 오롯이 지금-여기에 존재하는 주체적이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이다. 그런 사람은 매 순간 충만한 삶을 산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바빠도 분주하지 않고, 조급해 하거나 초조해 하지 않는다.

6. 나는 실존적으로 나를 만난다. 내가 누구이고, 누구의 누구이고 이런 식으로 나를 거쳐서 다가가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내가 나'인 것이다. 나는 누구인 가라는 질문이 나는 무엇인가가 아니다. 무엇은 주어진 역할이지 존재 자체가 아니다. 그래서 나를 '명사'의 역할로 설명하면, 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과거에 실천한, 실천하고 있는 동사로 나열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을 '-이 아니다'라고 정의 내리게 된다. 사실 존재는 자신이 한 가지로 규정되는 것을 싫어한다. 사실 존재 안에는 여러 개의 자아가 한 다발로 묶여 있다. 나는 나무를 흔드는 바람이고, 빗방울이고, 햇빛이다.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나는 나의 지난 스토리가 아니라 이 순간의 있음이다.

7. 마음 비우고, 버리니, 서두름이 잦아든다. 어디든 갈 수 있는 바람을 부러워 하지 말자. 떠나는 것을 막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 자신을 제외하고는.

8. 살아 있는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 준다. 그리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우호적이 되고 사이 좋은 거리가 된다. '이름 불러 주기(naming)'는 명상법 중 하나이다. 마음은 게스트하우스이다. 마음은 여인숙이다. 여러 감정들이 번갈아 가며 찾아온다. 반가운 투숙객도 있지만 어떤 감정들은 번갈아 가며 찾아온다. 반가운 투숙객도 있지만 어떤 감정들은 불청객이다. 마음의 방을 어지럽히고, 소란을 피우고, 불평하고, 문을 발로 차서 일과를 망친다. 잠들 때까지 영혼을 괴롭히는 감정들도 있다. 무의식에 난 틈새로 등장하기 때문에 쫓겨 내기도 어렵고 잠금 장치를 해 둘 수도 없다. 마음 챙김 명상에서는 이 감정들에게 이름을 불러 주라고 권한다. 예컨대, '안녕 불안'이라고 이름을 불러준다. 그러나 이렇게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자신의 집을 영원히 내줄 필요까지는 없다.

9. 구체적으로 '이름 불러 주기'는 자신 안에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에게 '어서 와'하고 환영하고 차를 권하는 일이다. 그때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깨어 있을 수 있다. 그것들과 나의 자각 사이에 여유 공간이 생겨난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것들을 더 분명하게 알아차리게 한다. 알아차림이다. 마음 속으로 찾아오는 생각과 감정들을 적으로 여기지 말고 협력자로 만드는 것이 하나의 명상 기술이다. 예를 들면, 마음을 관찰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협력자로,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나는 본래 맑고 고요한 존재인데, 슬픔이, 분노가 잠시 손님으로 왔을 뿐이다. 나는 어떤 감정보다 더 큰 존재이다. 감정은 손민이다.

10. 세상의 어떤 것도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법칙을 제외하고는 무엇도 불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에 의존하는 삶을 계속하다가, '만약에' 그 의존이 끊어진다면, 당황할 것이다.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다. 그래 독립심이 생존에 가장 중요하다. 어떤 수를 써도 필연적인 변화를 막을 수 없다면, 우리의 유일한 선택은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이 마지막일 거라는 것처럼 소중하게 다루며 즐기는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일수록 더 쉽게 부서진다. 그래서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다음에도 어김 없이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마음의 기대에 불과하다. 어느 것이나 생에 단 한 번의 기회일 뿐, 다음 순간은 보장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우리는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 세상 역시 우리 각각의 존재를 마지막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유리 와인잔의 속성 안에 '필연적인 깨어짐'이 담겨 있다. 그것은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유리잔이 이미 깨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이해할 때, 그것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해진다. 그것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내 몸도 이미 부서진과 마찬가지임을 알 때 삶의 매 순간이 소중해진다. 소중함과 가치가 두려움과 슬픔보다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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