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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속도/유자효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장자는 우리의 삶을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사는 시간이라는 것은 마치 흰 말이 벽의 갈라진 틈새를 내달리며 지나치는 순간 정도다. 홀연할 따름이다!"(『장자』 외편 "지북유") 이를 간단히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 한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 평생을 산다는 것은 책받침 두께 정도의 틈새를 하얀 말이  획 지나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벌써 5월 말이다. 내일부턴 일년의 중간인 6월이다.

젊었을 때는 움직임의 속도가 빠르면 쾌감을 느꼈지만, 나이가 드니 '뭔가'를 알아차릴 수 있는 속도가 좋다. 주변을 둘러볼 수 있을 정도, 바깥 표정의 바뀜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속도가 좋다. 움직임의 속도만이 아니라. 어떤 일에 대한 결정도 젊었을 때는 신속하게 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이 들면서 선호하는 속도가 바뀌었다. 더디게, 천천히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많아졌다. KTX보다는 무궁화호 기차를, 급행 버스보다는 완행 버스를, 곧바로 난 길보다는 구불구불한 길을 좋아하게 되었다. 마음을 쓸 때에도 한 호흡 늦추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안과 밖이 조금씩 더 잘, 더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간 잘 간다. 그래 흐르는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싶다. 실제로 움직이는 속도를 느리게 해야 시야가 넓어지고 세상이 더 자세하게 보인다. 그래야 흐르는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의 책장을 너무 급하게 넘기면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시간의 흐름을 늦추려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을 하며, 거기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행복을 소중하고 위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나 인생은 단 한 번 뿐이다. 그러면서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행복의 실체가 무엇인지,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평생 생각만 하다가 사라지는 존재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 YOLO(욜로) 라이프가 한 때 회자되었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의 약자이다. "단 한번뿐인 인생, 나답게 잘 살자"는 것이다. 욜로 족의 첫 번째 일은 일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YOLO의 L자가 명사 라이프(Life)가 아니라, 동사로 리브(Live)라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 일상의 행복 내용도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어야 한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아무 것도 없으며,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 뿐이다"고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여기서 행복이란 '지금', '여기서',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마음'을 말한다. 그러니까  행복은 객관적 환경과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절대적 실체'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그물망은 삶의 크나큰 전환을 시도하지 않는 한, 속도와 경쟁, 적자생존과 양극화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아주 잘 '짜여진' 현실의 틀에서 우리의 꿈들은 모두 명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행복은 동사이어야 한다.

행복의 내용을 바꾸어야 한다. 과욕에서 소욕지족(小欲知足, 작고 적은 것으로 만족)으로, 경쟁과 대립에서 협동과 상생으로, 획일과 차별에서 평등과 개성으로, 목표와 욕망에서 의미와 나눔으로 바꾸어야 한다. 게다가 꿈도 동사이어야 한다. 꿈은 끊임없이 꾸는 것이다. 꾼다고 하는 것은 동사이고 형용사이고 부사이다. 나의 꿈에 아름답고 지혜로운 형용사와 부사를 달아주는 나머지 날들을 나는 살고 싶다. 꿈이 수식어가 생략된 명사가 되면 삶이 건조하다. 꿈을 직업의 이름에 묶어 두고 싶지 않다. 꿈에 형용사와 부사의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예컨대, 비겁한 작가보다 양심적인 작가를 꿈꾸고 싶다. 무엇이 되는 것보다 어떠한 사람이 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오늘은 부여로 특강을 간다. 조금 일찍 나서서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국도, 특히 아름다운 금강을 끼고 가는 길로 차를 운전하며, 가는 봄날을 즐길 생각이다. 속도를 늦추고, 그 문제의 금강 '공주보'에서는 잠시 멈추어 볼 생각이다.

속도/유자효

속도를 늦추었다
세상이 넓어졌다
속도를 더 늦추었다
세상이 더 넓어졌다

아예 서 버렸다
세상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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