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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누룩/이성부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느 식당에서 받은 물 티슈이다. 그곳에 쓰여진 배려라는 말에 놀랐다. 한문으로 이렇게 쓴다. 配慮. 나눌 배(配)+생각 려(慮) 자의 합이다. 그 의미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다. 말 그대로 하면, 나의 생각을 배분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 생각만 하지 않고, 다른 이, 특히 나보다 힘들어 하거나 나보다 약한 자에 대한 생각을 술잔 나누듯이 배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배려는 생각부터 그렇게 하고, 그걸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세상은 불공평해도 세월은 공평하다. 세상이 안 풀리는 게 아니라, 내가 안 푸는 것이다. 못 푸는 게 아니라, 안 푸는 것이다. 풀지도 않으면서 저절로 풀리기를 바란 거다. 인생 수능의 채점자는 세월이다. 세월은 세상보다 힘이 세다.  세상은 나를 차갑게 대해도 세월은 결국 나를 알아 줄 것이다. 세상이 주는 조건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세월이 주는 가능성과 한계는 누구에게나 똑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세월은 세상보다 힘이 세다.

어제 카톡에서 읽은 것이다. 새가 살아 있을 때는 개미를 먹는다. 그런데 새가 죽으면 개미가 새를 먹는다. 시간과 환경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지금은 힘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우리보다 더 힘이 있다는 것을. 세월은 세상보다 힘이 세다. 하나의 나무가 백만 개의 성냥 개비를 만든다. 그러나 백만개의 나무를 태우는 데는 성냥 한 개비로도 족하다.

나는 "세상은 불공평해도 세월은 공평하다"는 말을 믿는다. 세월이 세상보다 힘이 세다는 말을 믿는다. 지금은 잘 모른다. 인문운동가가 추구하는 인문 정신은 자신에 주어진, 자신에게  알맞은 인생의 과업을 심사숙고하여 찾아내는 여정을 밝혀준다. 만일, 인문 정신을 키워 그가 인생의 과업을 발견했다면, 자신답지 않은 것, 즉 자신이 피하고 싶은 상황을 미리 감지하고 피할 수 있다.

몇일 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노예였다 스토아 철학자 된 에픽테토스는 남다른 고통과 고생을 통해 하루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훈련을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일상의 훈련을 통해, 일상을 지배하기 위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분야를 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 욕망(慾望): 내가 잘 할 수 있는 한 가지에 몰입하여 최고의 성과를 내려는 마음을 매일 훈련하라는 것이다.
- 선택(選擇): 나의 최선을 집약 시킬 대상을 선별하고,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과감하게 거절할 수 있는 단호함을 매일 훈련하라는 것이다.
- 승복(承服): 자신이 선택한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여 완수하려는 결심을 매일 훈련하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오랫동안,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의 "누룩"처럼, 감춰두었던 것이다. "누룩"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로, 밀이나 콩 등 곡류를 띄워 누룩 곰팡이를 번식시켜 만든다. 보통 밀을 이용하나, 쌀 등 다른 곡물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오늘 아침 시의 "누룩"처럼, 인문 정신을 발효시켜야 한다.

누룩/이성부

누룩 한 덩이가
뜨는 까닭을 알겠느냐.
지 혼자 무력(無力)함에 부대끼고 부대끼다가
어디 한군데로 나자빠져 있다가
알맞은 바람 만나
살며시 더운 가슴,
그 사랑을 알겠느냐.

오가는 발길들 여기 멈추어
밤새도록 우는 울음을 들었느냐.
지 혼자서 찾는 길이
여럿이서도 찾는 길임을
엄동설한 칼 별은 알고 있나니.
무르팍 으깨져도 꽃피는 가슴.
그 가슴 울림 들었느냐.

속 깊이 쌓이는 기다림
삭고 삭아 부서지는 일 보았느냐.

지가 죽어 썩어 문드러져
우리 고향 좋은 물 만나면
덩달아서 함께 끓는 마음을 알겠느냐.
춤도 되고 기쁨도 되고
해 솟는 얼굴도 되는 죽음을 알겠느냐.

아 지금 감춰둔 누룩 뜨나니.
냄새 퍼지나니.

나는 인문운동가로, 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공유하려는 사람이다. 최진석 교수에 의하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힘은 '본능적인 동작'이 아니라 '인위적(人爲的)인 활동력'이라고 했다. 사람은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동작을 해서 사람으로 살아간다. 거실의 고양이처럼, 배불르면 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생존의 욕구가 채워지더라도, 더 나은 저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한다. 삶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이라고 보는 이유이다. '본능적인 동작'의 테두리에 갇힌 것이 짐승이고, '인위적인 활동'으로 본능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은 학습이 필요하다. 학습에 시간을 들이고, 그 시간을 인내로 참아내며 훈련하여야 더 성장한, 더 나은 사람이 된다. 누가 더 사람이 되느냐 하는 점은 누가 더 학습하느냐 로 결정된다. 짐승에게는 학습이 거의 필요 없다.

학습의 전 과정에 철학을 담아 체계화한 것을 우리는 교육(敎育)이라 정의한다. 사람이 사람으로 완성되는 여정에는 반드시 교육이 필요하다. 최진석 교수는 사회가 작동하는 중심 두 톱니바퀴를 정치와 교육으로 꼽는다. 그러면서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사회의 정치가 어떠한 가라는 질문의 답과 일치한다. 그리고 그 사회의 정치가 어떠한 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사회의 교육이 어떠한 가라는 질문의 답과 아주 잘 맞는다. 이렇게 본다면 사회의 뿌리 동력은 교육이다. 그래서 우리는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 백 년 앞을 내다 보는 큰 계획)"라 한다. 가끔 교육 무용론을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교육 방법에 대한 회의에서 빚어진 착각이다. 교육 무용론은 있을 수 없고, 특정한 교육방법 무용론은 있을 수 있다. 인간은 다 교육생으로 살아간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람이 교육을 받는 목적은 사람 답게 살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문명(文明)을 건설하는 존재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명은 인간이 한 모든 활동의 총체이다. 그런 문명을 건설하는 활동을 우리는 문화(文化)라고 한다. 그래 인간은 문화적 존재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는 "무엇인가를 해서 변화를 야기하는 행위"이다. 교육의 관건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다. 변화를 야기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 지식에 매몰되거나 이념에 빠져 있으면 변화가 힘들다. 예컨대, 알고 있는 것을 수호하거나,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만 세상을 보며, 굳은 신념이 된 이년을 매개로만 세상과 관계한다면 변화는 경험할 수 없다. 자신도 변화를 경험할 수 없고, 세상에 변화를 야기할 수도 없다. 최교수는 멋진 예를 든다. 자전거에 대하여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알고 있는 그것들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변화라는 것은 교육의 메커니즘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교육받고 나서도 교육받기 전하고 똑같다면 교육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지식의 습득이나 축적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교육 환경에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지식을 축적한 다음의 인격적인 변화 혹은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여기서 독립적인 인격이나 창의력이나 행복이나 자유나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사랑하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거 쉽지 않다. 그래 오늘 아침 고유하는 시처럼, "종이가 찢어지어야" 한다.

너무 번잡한 일들로 포위된 교육은 효과가 없다. 많고 번잡한 일들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는 '우리' 가운데 한 명으로 존재하는 모습이다. '우리'로 있으면 번잡한 문제들에 휩싸여 있을 때의 '나'는 '나'로 존재하기 힘들다. '질문'. '자유', '윤리', '창의', '먼저 하기', '용기' 그리고 '도전' 등은 '우리' 가운데 한 명으로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출현할 수 없다. 오직 '나'로 존재하는 사람에게만 있다. 그래 최진석 교수는 교육의 최종 단계는 '독립적 주체 만들기'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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