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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스핀 독재' 시대가 도래했다.

236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5월 28일)
요즘 특별한 스님들이 많다. 목소리가 우렁차고 이름이 번쩍거린다. 그들의 사자후가 일주문 밖에서도 들린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부처를 팔아 권력과 영달을 얻고 있음이다. 자신을 높일수록 불교계 안팎에는 먼지가 일어난다. 머리에 빛이 난다, 신통력을 지녔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들은 모두 하찮다. 그저 자신에게 감탄하고 자신을 숭배하고 있음이다. 자신을 부처보다 높이고 부처를 내세워 세상을 구하겠다 외치면 그것이 곧 매불(賣佛) 아닌가? 어제가 부처님오신날이었다. 특별함과 잘남을 멸(滅)하는, 그래서 부처가 오신 뜻을 새기는 날이었다. 부처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알려주려고 오신 것이다. 김택근 시인이 한 말이다.
 
“함께 금강산에 들었을 때 스님(석전 박한영)은 베옷에 떨어진 신을 신고 등에 짐을 지고 있었다. 이에 산승들이 얕보고 공경하지 않았다. 그중 누군가 ‘이분은 교정(종정)이시다’라 말했고, 또 다른 이는 ‘불교전문학교 교장이시다’라며 스님을 알아봤다. 이에 절 대중이 비로소 나와 영접하고 사과했다. 호기심 많은 사람이 이러한 광경을 신문에 소개하여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하기야 스님 스스로가 교정인 것을 모르며 또한 교장인 것도 모르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사실들을 알 것인가.”(정인보 <<석전상인소전>>) 오늘 처음 알게 된 박한영 스님 이야기이다. 박한영(朴漢永)은 석전정호(石顚鼎鎬, 1870~1948) 스님의 속명이다. 정인보는 석전 박한영 스스로가 나라의 최고 승려임을, 불교전문학교 교장임을 모른다고 했다. 박한영은 지식을 자랑하지 않았고, 체득한 지식에 매몰되지 않았다. 높이 올랐음에도 그 높이를 잊고 살았다 한다.
 
노자는 “큰 지혜는 어리석은 듯하다(大智若愚)”고 했다. “도를 위해서는 날마다 덜어내고, 배움을 위해서는 날마다 더해야 한다(爲道日損 爲學日益).” 당대의 천재들은 박한영의 덜어내는 삶에 놀라워하며 길을 물었을 것이다. 지식이 아닌 지혜에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엄혹한 시기에도 스스로를 다스렸던 스님들을 떠올려본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름마저 지웠던 그들이 불교를 불교로 지켜왔다. 박한영처럼 가장 높이 깨쳤어도 가장 낮은 곳에 있었다. 가장 낮음이 가장 높음이니 곧 부처의 자리이다. 부처께서는 기적을 보여달라 조르는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적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한 몸을 여럿으로 나누거나 벽을 뚫고 지나거나 물 위를 걷는 것 등이 첫째요,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알아차리는 것이 둘째다. 하지만 이런 기적은 누구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얻을 수 있고, 사람들의 논란만 부추긴다. 내가 제자들에게 권하는 것은 세 번째니 그것은 스스로 정진해서 깨달음을 얻는 기적이다.”
 
조계사 총본산인 조계사에서 어제 열린 봉축법요식은 윤 대통령을 비롯해 1만여명이 참석했지만, 2012년 이래 매년 초청되던 이주노동자, 산재피해자, 세월호 유가족 등 사회적 약자들은 배제된 채 진행됐다. 그런데 거기서 한 말은 말 뿐이다. 윤은 이날 축사에서 “모든 인간은 존귀하고 존엄하며 어려운 이웃의 아픔을 보듬고 어루만지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 사회의 따뜻한 등불이 되고 있다”며 “우리 정부의 인권 존중과 약자보호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뻔뻔하지 않은가? 또 이런 말도 했다. 후안무치이다. 또 올해 봉축 표어인 ‘마음의 평화, 부처님 세상’을 새겨 “부처님의 세상은 바로 공동체와 이웃을 위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정부는 어려운 이웃을 더 따스하게 살피고 국민의 삶 구석구석에 희망이 스며들 수 있도록 그리고 세계시민 모두와 함께 서로 도와가며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주에, 양한웅 조계종사회노동위 집행위원장은 올해 법요식 관련, “종단에 사회노동위원회가 설립되고 나서 해마다 부처님 오신날이면 사회적 약자를 공식 초청해 왔다.”며 “쌍용자동차, KTX여승무원 해고자, 세월호 희생자, 실종자가족, 성소수자, 청소, 청년노동자, 산재사망 노동자 가족등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공식 초청되어 부처님께 꽃을 올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는 그날까지 불가촉 천민을 비롯한 수많은 사회적 약자에게 수행하면 아라한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고, 마지막 공양 올리신 이도 대장장이 노동의 일을 하는 아들이었다. 그만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부와 권력, 신분의 차별은 아예 없고 모두가 수행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거룩한 가르침을 설하셨다”면서 “올해 부처님오신날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부처님께 꽃 공양을 못 올릴 것 같다. 너무 죄송스럽고, 면목이 없다”고 지난 토로했었다.
 
양 위원장은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가족들, 하루하루가 지옥의 삶이라고 울부짖는 발달장애인들과 그 가족들, 지구를 살리 자며 하는 기후 운동 하시는 분들, 5.18때 광주 도청에서 마지막 희생되신 대불련 전남 지부장 김동수 열사, 수 년째 길거리에 있는 세종호텔 해고자들이 부처님께 꽃을 올리고 싶었지만 저의 신심과 노력의 부족으로 부처님께 인사 못 드릴 것 같다. 매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에 사회적 약자를 초청해 온 불교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누가 잡아주겠습니까”라고 탄식했었다.
 
지난 주에 나는 '스핀 독재(spin dictator)'라는 말을 배웠다. '스핀 독재'라는 말은 '스핀 닥터(spin doctor)'라는 용어에서 유래한다. '스핀 닥터'는 궁지에 몰린 정치인을 구해내는 홍보전문가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뛰어난 기지나 인기응변을 발휘하지만, 묘수나 꼼수로 평가될 일을 하는 전문가들이다.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의 글이었다. 제목이 "'新권위주의' 윤석열 정부, '스핀 독재' 시대가 도래했다"이다. 박 기자에 의하면, 우리는 착각한다는 거다. "우리가 하는 흔한 착각은 '지금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도 아닌데'라는 말이다. 물론 윤석열 정부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 정부를 단순 비교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지만, 유사성을 찾아내는 건 무의미하지 않은 일이다.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건 30년 전 독재 시절에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다. 오늘날의 권위주의 정치는 복합적인 방식으로 진화했다. 주로 포퓰리즘과 결합된 형태로 '법'과 '국민'의 이름을 빌려서 자주 나타난다."
 
지난 26일에 말했던 것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한다. 헌법에 나오는 자유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한다거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신체의 자유, 거주와 이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 인권을 확인하는 것들이다. 공권력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다음이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윤이 말하는 식의 자유는 헌법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헌법 전문과 제4조에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얼핏 비슷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때 말하는 질서는 전체주의, 권위주의 세력이 말하는 질서와는 전혀 다르다. 헌법이 규정하는 ‘질서’도 권력이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법의 지배’라는 말도, 법률로 국민을 다스린다는 게 아니라, 권력자나 권력 기관을 법의 지배 아래 두겠다는 주권자의 의지의 표현인 것과 마찬가지다. 집권 세력은 국민이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며 질서 정연하게 살길 바라겠지만, 이런 식의 질서는 국민에게 강요할 수 없는 무례이며, 자체로 인권 침해다.
 
현 정부는 헌법을 유린하고, 법을 왜곡하고 있다. 윤의 직무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는 한-일 정상회담 이후 60%가 넘는 조사가 잇따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이미 가톨릭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윤석열 정부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매주 월요일마다 전국을 순회하며 개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불교계에서도 윤석열 퇴진 시국법회 ‘1차 야단법석’이 지난 20일에 서울에서 열렸다. 그때 명진 스님이 낭송한 시를 오늘 아침 공유한다.
 
 
고난의 칼날 위에 서라/만해 한용운
 
세상 사람이 쉽게 성공할 일이면 하려고 하고,
어렵고 성공할 가망이 적은 일이면 피하려는 경향이 있으니
그것은 불가한 일이다.
어떠한 일을 볼 때에 쉽고 어려운 것이나,
성공하고 실패할 것을 먼저 보기보다
그 일이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를 먼저 볼 것이다.
아무리 성공할 일이라도
그 일이 근본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면
일시 성공했을지라도 그것은 결국 파탄이 생기고 마는 법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을 둘러보아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옳은 일이라면 용감하게 그 일을 하여라.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참고 가거라.
그 일이 칼날에 올라서는 일이라도 피하지 마라.
가시밭길을 걷고 칼날 위에 서는 데서
정의를 위해 자기가 싸운다는 통쾌한 느낌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다난한 조선에 있어서
`정의의 칼날을 밟고 서거라'하고 말하고 싶다.
무슨 일이든지 성공이나 실패보다 옳고 그른 것을 먼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다음은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의 글에서 읽었다. "최근 <포린폴리시>에 소개된 책 <스핀 독재자들(Spin dictators, 프랑스 파리정치대학(SciencePo) 세르게이 구리에프(Sergei Guriev)와 미국 UCLA의 다니엘 트라이스만(nd Daniel Treisman) rhdehd 저작)>는 '공포 독재'와 구분되는 '스핀 독재' 개념을 제시한다. '스핀 닥터(정치홍보전문가를 일컫는 말)'에서 따온 말인 '스핀 독재'는 과거 무력을 주로 사용하는 권위주의와 달리, 정교한 홍보 전략, 메시지 등을 통해 사람들을 따르게 만들거나 산만하게 만들고 법적 수단을 동원해 반대파를 위축시키는 걸 특징으로 한다. 이 책에는 새로운 형태의 이런 권위주의의 선구자로 1959년부터 1990년까지 총리를 지낸 싱가포르의 리콴유를 꼽는다. 그는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의 외피를 유지했지만, 야당 인사들을 체포하는 대신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이런 방식으로 '전과'를 달게 된 반대파들이 공직에 나설 수 있는 길을 차단해 왔다. 이를테면 특정 집단의 집회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면 그 집단은 '불법 집단'이 되고, '불법 집단'이 되면 다양한 방식의 '권리 박탈'이 이어진다. '권위주의'의 고도화다." 지금 우리는 검찰 독재라는 새로운 유형의 권위주의 시대에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시국법회 봉행 준비위(위원장 도정 스님 박종린 법사)는 “미국 앞에 굽신거리고 일본 앞에 쩔쩔매며 나라의 미래를 팔아먹고 다니는 사대 매국정권, 경제는 침몰되고 정치는 실종되어 가는데 정적 죽이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검사 독재정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사회적 약자들을 빨갱이 몰아 결국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극악무도한 무능정권,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을 퇴진시키기 위한 역사적인 투쟁의 길에 부처님의 제자들도 동참하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지금 "고난의 칼날 위에 설" 때가 가까워졌다. 좀 차분하게 박 기자의 글을 읽어 보면 더욱 그렇다. 공유한다. "<스핀 독재자들>에서 내세우는 개념은 주로 푸틴, 시진핑 등을 비판하는 데 사용되긴 하지만, 리콴유의 '싱가포르 모델'과 같은 행태가 교묘히 은폐된 '권위주의 독재 체제'라는 점을 폭로하기도 한다. 여기에, 7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2월 튀르키예 대지진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건축물 부실 규제 문제 등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대통령 당선을 눈앞에 둔 에르도안 대통령도 전형적인 '스핀 독재자'의 유형으로 꼽을 수 있겠다. 저자들에 따르면 '공포 독재' 유형은 1970년대 전체 독재 지도자 집단의 60%를 차지했다가 2000년 이후 10% 미만으로 감소했으나, 그와 함께 '스핀 독재'의 비율은 13%에서 53%로 증가했다고 분석한다.
 
한국과 같이 민주주의가 일정 수준을 달성한 나라에서 에르도안이나 푸틴, 시진핑을 윤석열 대통령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의 수법이 놀랄만큼 유사하다는 점이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전 총리나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스핀 독재자'의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된다. 그들은 '음모론'을 들이밀고 '대안적 사실'이란 말을 만들어내 지지자들을 추동하고, 법적 권한 내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권위주의적 방식의 정책을 편다. 트럼프는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지지자들의 의회 폭동을 부추겨 놓고 자신은 아무런 불법적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스핀 독재'는 교묘해지고 있다. 
 
안타깝지만 윤 대통령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권위주의의 역시 디지털 시대의 외피를 입고, 민주주의의 제도 틀을 해치지 않은 수준에서 '재량'을 극대화 하는 방식을 택한다. '법 기술자' 출신 답게 윤 대통령은 여당의 주장처럼 헌법과 현행 법을 단 한글자도 고치지 않고 야간 집회를 '심리적'으로 '사실상' 금지할 수 있는 방안을 반드시 고안해 낼 것이다. 그들이 가장 잘 하는 게 바로 그런 일이니까."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