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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그림자에게도 우산을/길상호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는 새벽부터 거의 하루 종일 봄비가 굵게 내렸다. 오늘 아침도 어제에 이어 스테판 M 폴란이 말하는 '8가지만 버리면 인생은 축복이란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 9가지를 나열해보면, 나이 걱정/과거에 대한 후회/비교 함정/자격지심/개인주의/미루기/강박증/막연한 기다림이다. 오늘 아침에는 버려야 할 것 중 다음 세 가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비교 함정' 그리고 '자격지심'에 대해 생각해 본다.

누구나 과거는 돌이키거나 수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과거를 붙잡고 못 내려 놓으면 현재가 아니라 영영 과거 속에서 살게 된다. 할 수 없는 일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기만 해도 삶은 많이 바뀐다. 과거를 후회하고 탄식할 시간에 지금-여기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다. 좀 진부한 말 같지만, 너무 당연한 말이다.

우리는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등수를 매긴다. 이런 서열화는 우리 인생을 흔들리게 만들고 불안하게 한다. 비교가 아닌 다양성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삶은 좀 더 따뜻해 진다. 사람마다 이 세상에서 각기 주어진 역할과 소명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인생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각기 자신이 할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비교함정의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자신을 비하하는 자격지심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잘났다고 하는 교만이다. 우리는 살면서 자주 자격지심과 교만을 왔다 갔다 한다. 이를 피하려면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자신을 제3자 보듯 바라보며 담담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성찰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잘난 사람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못난 사람 앞에서 '갑질'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후회', '비교 함정' 그리고 '자격 지심'을 없애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나는 없다(I'm nothing)'란 말을 되새긴다. 그리고 명사적 삶보다는 동사적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Have동사를 좋아하는 소유적 방식과 Be동사를 좋아하는 존재적 방식. 나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동사이다. 고정된 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존재가 명사, 즉 의사나 교수라는 명사로 자신을 고정시킨다면 그는 자기 규정에 갇혀 존재가 가진 수많은 가능성과 역동성을 잃는다. 예컨대 자신과 동일시된 그 규정 때문에 존재의 다른 가능성을 부정해 버린다. 우리 자신도 상대를 인간 존재로 대해 주어야 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에는 그 인간 자체와 대화해야 한다.

동사적 삶이란 자신이 규정 지은 한정된 '나'에서 벗어나 더 역동적인 존재로 사는 것이다. 자아 이미지에 매어 있지 않을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빛날 수 있어야 한다. I'm nothing이란 말이 자아 이미지에 매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모든 조건, 소유, 지위를 다 떼어 내도 우리의 본래 존재는 호수만큼 투명하고, 바다만큼 역동적이다. 삶이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닌, 존재에 관한 문제이다. 사회가 부여한 역할 놀이를 끝내야, 우리는 진정한 '나'라는 존재와 마주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에 명사를 들이대면 안된다. 자기가 실천한 그리고 실천하고 있는 동사를 나열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나는 무엇인가'가 아니어야 한다. 이 물음은 '나는 무엇이 아닌가'가 전제되어야 한다. 무엇은 주어진 역할이지 존재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 뒤에 붙는 역할에 집착하는 사람은 상대방에 대해서도 존재가 아니라 역할과 지위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그 역할과 지위로 타인을 평가한다. 사회가 나에게 부여한 역할과 이미지를 나의 존재로 착각할 때 공허가 싹튼다. 이 공허감은 더 많은 외부의 것들로 채우려 한다. 그 때 그 존재는 지푸라기로 채워진 인형과 같아 진다.

그래 어젠 난 내 그림자에게도 우산을 주었다.

그림자에게도 우산을/길상호

차마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있어
그림자 하나씩을 이끌고 왔다
비 내리는 골목 술집을 찾다가 불빛 아래
출렁이고 있는 사람들
그늘진 말들만 모두 담고 있어서
바닥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
씻겨도 씻겨도 어두운 사람,
술잔을 비우면서 우리들은 또
혓바닥에 쌓인 그늘을 보태놓겠지
빗방울이 지우려고 세차게 내려도
발목을 놓지 않는 그에게
살며시 우산을 씌워주었다
발목에 복사뼈를 심고 기다린
무릉도원에 닿으면 그도 일어나 걸을까
발바닥을 함께 쓰는 이곳에서는
손잡아 일으킬 수 없는 사람,
그를 위해 처음으로 내 어깨가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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