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2.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나는 마음 둘 곳이 생겨 평화롭다. 하나는 내 주말 농장이고, 또 하는 우리 마을공동체 <우리마을대학> 학장 님들이다. 작년에 조직하여 겨우 만 1년도 안 된 공동체이지만, 날로 익어간다. 우리들의 아이디어와 콘텐츠 그리고 노하우를 디지털로 옮기자는 커다란 상상력으로 시작한 코딩 강의를 두 번째 마치었다. 컴퓨터의 세계를 조금씩 알아간다. 그러면서 우리 동네 자치위원회가 제안한 사업비로 우리는 곧 <신성동 우리마을 토요 학교>를 개강한다.
우리 마을 공동체가 준비한 사업 이름은 <마을이 학교이다. '신성동 우리마을 토요 학교'>이다. 사업의 개요는 우리마을대학-공방이 토요일 오전과 오후에 총 40회에 걸쳐 체험 교실 운영하는 것이다. 우리 마을공동체 <우리마을대학> 은 직경 800미터 이내의 거리에 자리를 잡은 10개 공방-대학이 결성된 공동체이다. 우리 공동체의 설립 목적은 “도시에 마을로” 라는 이름으로 골목 대면 접촉을 통한 공동체와 골목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과 “지식에서 체험”이라는 두 번째 목적으로 삶과 분리되지 않은 생활 체험 학교 문법을 만들어 보려는 것이다.
왜 <우리마을 토요 학교>가 필요한가?
- 우리마을은, 모두가 잘 알다시피, 토요일과 일요일 또는 모든 휴일이면 동네에 사람이 없다. 그래 토요일 오전과 오후에 지속적인 체험 강의를 통해 외부인들의 유입 효과와 주민들의 유출을 막아 낼 수 있다.
- 인터넷의 발달로 지식보다 체험이 필요한 시대이다. 이젠 대학 졸업장으로 한 직장을 계속 가지기 힘든 시대이다. 그러므로 평생 교육 시대에 <우리마을 토요 학교>가 대안이다. 배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본다.
- 코로나-19로 도시로 나가기 무섭다. 그래 우리 동네 골목에서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면 새로운 대안이다. 배움은 생활의 활력이 된다.
그 다음 우리는 무엇을 하려는 가? 다음과 5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 매주 토요일마다 우리 동네에 오면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수강료도 없고, 원하면 다시 수강할 수 있다.
- 일회성 강의가 아니라 입문-초급-중급-고급으로 지속 가능하게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 <우리마을대학> 10개가 각 분야 강의를 한다. 각각 자신들의 노하우를 가지고 체험 위주로 배울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 강의 중에 만들어진 물건을 포장하며, 판매하면서 어르신들을 활용하여 일자리를 창출한다.
- 함께 만나서 배우면서 공동체를 회복한다. 마음 둘 속을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려 하는가?
- 매주 토요일 오전과 오후에 각 대학-공방에서 프로그램과 체계적인 강의 계획을 가지고 체험 교육의 장을 마련한다.
- 총 40시간을 배정하고, 각 대학 별로 4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 수강생은 무료로 한다.
- 수강생이 총 40시간 중 80%의 강의를 수강하면, 우리마을 자치위원장과 동장의 이름으로 수료증과 상품을 수여한다.
각 대학의 체험 분야는 다음과 같다.
- 우리마을1대학: 드론과 사진의 세계
- 우리마을2대학: 와인 문화와 소믈리에/와인을 통한 소통 기술 체험
- 우리마을3대학: 커피 문화와 바리스타/커피를 통한 소통 기술 체험
- 우리마을4대학: 차(tea) 문화와 티소믈리에/차를 통한 소통 기술 체험
- 우리마을5대학: 나무공예 체험
- 우리마을6대학: 디지털 리터러시와 IOT 산소나무 체험
- 우리마을7대학: 천연DIY: 천연비누, 화장품, 향수 그리고 주방세제, 소독제 등 체험
- 우리마을8대학: 실용음악과 색소폰 체험
- 우리마을9대학: 복요리 체험과 레스토랑 경영 수업
- 우리마을10대학: 인문과 과학의 융합을 말하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예의 주시하며, 관련 기사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읽는데, 다음 주 화요일에는 꼭 혼자 영화관에 가서 볼 생각이다. <노매드 랜드>이다. 질문이 많다. 왜 노매드인가? 왜 랜드라는 말을 붙였을까? 왜 이 영화가 그렇게 많은 상을 받고, 오스카 3관왕까지 받게 된 것일까? 자세한 내용은 영화를 보고 말해 볼 생각이다. 다만 '노매드"가 내가 좋아하는 '노마드(유목민)'라는 말의 영어식 발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그리고 거기에 랜드가 붙은 이유를 윤정구 교수의 페북을 보고 알았다.
"길 위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제도적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는 세상에서도 노마드 여행자들은 서로를 혼자 놔두지 않고,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준다." 이게 내가 우리 마을공동체에 애정과 관심을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로를 혼자 놔두지 않고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자는 것이다.
윤교수에 의하면, 영화 속의 노마드들이 찾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열거했다. 이게 우리 마을공동체가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거다.
- 길을 떠돌며 헤어져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친구라는 사실에 대한 굳은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있다.
- 국가나 자치 단체가 책임을 안 지어도 나름의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지지해가며 희망을 간직한다.
-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며 길 위에서 집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친구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 밤이면 모닥불 주위에 모여서 과거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도 하고, 내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 둘 곳을 간직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내 마음을 두는 곳은 <예훈 주말농장>이다. 청파 김기석 목사님의 글에서 배웠다.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를. 목사님 이야기를 좀 들어 보자. "마음 둘 곳이 있어야 한다. 그곳에 가면 효율성이나 생산성과 결부되지 않은 시간을 오롯이 누릴 수 있는 곳 말이다." 다음과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김기석 목사님의 멋들어지고, 깔끔한 글을 공유한다.
"봄이 되어 꽃들은 무심코 피어나 대지를 밝히지만, 인간 홀로 유정하여 우울과 쾌활함 사이를 오간다.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산다면 모르겠지만 세상 도처에서 벌어지는 일에 도무지 무심할 수 없는 게 우리 삶이다. 수많은 사건 사고는 알게 모르게 우리 정신의 풍경을 결정한다.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육 사건, 신도시 예정지에 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한 후 하이에나처럼 달려가 이득을 챙긴 사람들 이야기 등, 이런 것들은 또 다른 미세먼지가 되어 우리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현실에 자주 노출되다 보니 마음은 점점 굳어지고, 타인을 맞아들일 여백도 줄어든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안개처럼 피어 올라 확고하게 우리를 사로잡는다. 다른 이들과 우리를 이어주던 결속감이 느슨해 지면서,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다는 적막함이 깃든다. 적막함을 떨쳐보려 이것저것 손을 대보지만 영혼의 움푹 팬 자리는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그럴수록 숙성되지 않은 욕망은 더 집요하게 우리 옷자락을 잡아 끈다. 악순환이다. 그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주말농장에 가 흙을 만지고, 함께 땀을 흘리는 옆 밭지기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숙성되지 않은 욕망"이 자리잡지 못한다. "소비사회가 우리에게서 빼앗아간 것은 경탄의 능력이다. 어린아이들에게 세상은 신비의 장소이다. 무엇 하나 당연한 것은 없다. 그러나 주변의 것들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사물이나 자연 속에 깃든 신비를 보는 눈을 잃어버렸다. 뭘 보아도 심드렁하다. 땅의 인력에 이끌리는 동안 하늘을 잃어버린 것이다. 예수는 먹을 것, 입을 것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문제를 풀어 주기는 커녕 들에 핀 꽃들과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를 보라 하셨다. 그것들 속에 깃든 하나님의 솜씨와 마음을 읽을 때 우리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 걱정과 근심의 무게는 줄어든다. 삶의 여건은 달라지지 않아도 삶을 대하는 자세는 달라질 수 있다. 그 눈이 열리는 순간 더 이상 세상을 경제적 논리에 따라 볼 수 없다"
"삶의 여건을 달라지지 않아도,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야채 하나 하나는 옆지기를 부러워 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길을 가며 뽐낸다. 경탄 스럽다. 그래 오늘은 김 목사가 인용한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 한편을 공유한다. 류시화 시인의 번역에 갈무리를 해 필사를 해보니, 크게 위로가 된다.
기러기(Wild Gees)/메리 올리버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하며 무릎으로 사막을 건너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의 육체 안에 있는 연약한 동물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게 하면 된다.
너의 절망에 대해 말하라.
그런 내 절망에 대해 말하리라.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빗방울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간다.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 산과 강 너머로
그러는 사이에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 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간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네가 상상하는 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당신의 상상력에 내맡기고,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들뜬 목소리로
너에게 외친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속에
너의 자리가 있다고.
시인은 완벽할 수 없는 우리의 존재를 그대로 수긍하고 받아들이라고 속삭이는 듯 하다. 연약한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한다. 우리는 그저 그대로 피고 지는 자연처럼 관계에 순응하는 연약하고 아름다운 피조물일 뿐이다. 불완전한 존재로 왔다가 자기 나름의 최선의 노래를 부르다 자기가 온 곳으로 돌아가는 철새 같은 존재이다. 나 스스로를 그대로 보듬어 껴안게 한다.
김기석 목사님은 다른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는 것이고, 그 길 위에서 누군가를 보살피고 책임을 지는 것이고, 지향을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 길이 자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장애물을 피해 이리저리 에돌다 보면 방향을 잃기 일쑤라는 데 있다. 프랑스 조각가 자코메티의 ‘광장을 가로지르는 남자’처럼 우리는 어딘가로 향하지만, 근원적 쓸쓸함으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한다.

세상의 어떤 이론도 지혜도 인간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이해에 가까워질 수는 있겠지만 근사치일 뿐이다. ‘알 수 없음’이야말로 생명의 실상이다. 알 수 없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이다. 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지만 결국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허세 부리려는 욕구에서 해방된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평화가 시작된다.
우리 동네에는 마을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사방이 푸른 나무로 둘러 쌓인 쾌적한 공간이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자원봉사로 그 공간을 지키고 있다. 거기서 이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평화롭다. 오전에는 주말 농장에 마음을 두고 와서 더 편안하다. 사진은 옆 밭지기가 이른 봄에 심은 갓을 수확해 다듬고 있는 모습을 허락 맡고 찍은 것이다. 나는 이미 한 보따리 다듬은 후였다.
다른 글은 내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국수가 먹고 싶다. (0) | 2021.05.10 |
|---|---|
| 우리가 사용하는 미래는 두 가지이다. (0) | 2021.05.10 |
| 바닥에 대하여 (0) | 2021.05.09 |
| I am who I am이다. (0) | 2021.05.09 |
| 찔레 (0) | 2021.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