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부터 사람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인문운동가에 퍽 다행한 일 아닌가? 인문운동가는 '사람이 먼저'라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던 중 "세상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산다"라고 주장하는 카피라이터 정철의 <사람사전>을 곁에 두고 닥치는 대로 펴본다. 즐거움이다. 오늘 아침 만난 '새벽'이란 단어의 뜻풀이는 이렇다. "어둠 끝에 새벽이 있다. 새벽 끝에 아침이 있다. 어둠-새벽-아침. 지구가 태어나고 어둠, 새벽, 아침으로 이어지는 이 꾸준한 공식이 흔들린 날은 단 하루도 없다. 공식은 어둠에게만 적용 되는 건 아니다. 고독 끝에도 새벽이 있다. 고통 끝에도 새벽이 있다." 내 생각도, 새벽은 어둠이 먼저이다. 내가 지금 어둡다면 새벽이 온다는 말이다. 지금 세상이 어둡다면, 새벽이 오려는 것이다.
최교수는 <<노인과 바다>>에서 다음 문장을 뽑은 것 같다. "노인은 뱃전 너머로 몸을 기울여 상어가 물어뜯은 그 자리에서 물고기의 살점을 한 점 떼어내었다. 그러고는 그걸 입에 넣고 씹으며 고기의 질과 좋은 맛을 음미했다."
이게 세상과 하나가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노인과 바다>>를 읽고도 이 문장을 그냥 지나쳤다. 지난 달 <<데미안>>에서 만났듯이,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천직)이란 다만 한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 로 가는 것. (...)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것이었다."
최교수는 독후감에서 말했다. "세상의 이치는 '어쩔 수 없이 부여 받은 각자 일'을 각자 자신의 임무로 알고 살아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책 읽고 건너가기에서, 나는 건너가기를 '운(運)'의 세계에서 '명(命)'의 세계로 자발적인 이행(移行)으로 풀기 시작했다. 이 여행이 운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지금까지의 삶에서 벗어나 삶의 목적을 원인으로 구성한 새로운 스토리의 일인칭 주체가 되어 자신을 구해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의 성장을 스스로 결정하는 '명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란 운에 의해 결정된 삶에서 벗어나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인 사명과 목적(명)을 깨닫고 이 명을 삶의 원인으로 삼아서 자신이 자신 삶의 주인으로 나서는 것으로 완결된다고 본다.
이어지는 글은 너무 길어 블로그로 옮긴다.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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