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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인문운동가의 고독한 외침(고함)

나는 주님을 모시지 않은 날은 새벽에 일어난다. 그러면 먼저 양치를 하고, 혀를 닦는다. 그리고 차를 한 잔 마신다. 특히 식은 차를 마신다. 최근에는 작두 콩 차를 마신다. 난 '치망설존(齒亡舌存)' 이라는 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임종을 앞둔 노자의 스승 상용이 그를 불렀다. 그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였다. 상용이 자신의 입을 벌려 노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내 혀는 아직 그대로 있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빨은 있느냐?" "없습니다." "이게 무슨 까닭인지 너는 알고 있느냐?" "혀가 아직 그대로인 것은 그것이 부드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빨이 빠지고 없는 것은 그것이 너무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이와 같다." 산상수훈의 제3복인 ③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란 말도 같은 이치이다.

나는 늘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한 삶을 늘 유지하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평범한 삶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일상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다. 건강해 지려면 운동, 영양, 수면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항목마다 들어가는 자원과 노력이 가볍지 않다. 그리고 평범한 삶의 최소 조건을 채우는 것조차 만만치 않다. 성공하면 그걸 지키느라 힘들고, 어려우면 매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전쟁이다. 어렵거나 고통이 없는 인생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의 시처럼, 세상과 "으스름한 가락지"를 끼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새와 나무/김남조

작은 새 하나
가녀린 나뭇가지 위에
미동 없이 머문다
얼음처럼 깨질 듯한 냉기를
뼛속까지 견디며
서로 측은하여
함께 있자 했는가
모처럼 세상이
진실로 가득해진 그 중심에
이들의 화목이
으스름한 가락지로
끼워져 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있고 그 나무속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이 풍경은 벽에 걸린 정물화처럼 이동이 없었고 견고했다. 비록 한파(寒波)의 때이지만 나무와 새는 친화적으로 공존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파'를 세파(世波)로 이해해도 좋겠다. 나무와 새가 “가락지로 / 끼워져 있다”라는 표현은 멋진 표현이다. 둥근 쇠고리로 묶여 있으니 이 둘을 끊어 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