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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하느님은 소망을 그냥 쉽게 들어주는 신이 아니다.

1년 전 글이다.

오늘은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이 '관광 두레' 스토리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타게 되어, 서울 용산에 있는 드래곤시티 호텔에 간다. 이번 주에는 기차여행을 두 번이나 한다. 다음 성경의 구절처럼,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그랬더니 문이 열렸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마태복음 7:7-8)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신약 성경>>의 한 구절이다.

우리는 이 구절은 하느님에게 은혜를 간구하는 마법의 기도문으로 여긴다. 그러나 하느님은 소망을 그냥 쉽게 들어주는 신이 아니다. 그리스도도 사막에서 악마에게 유혹을 받을 때도 아버지 하느님에게 섣불리 은총을 구하지 않았다. 사실 하느님에게 물리적 법칙을 깨뜨리고 우리를 도와 달라고 간구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일이다. 말 앞에 수레를 매달 수 없듯이, 문제를 마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강한 의지와 올바른 성품, 지치지 않는 힘을 기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편이 낫다. 아니면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을 달라고 하는 게 더 낫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말다툼할 때는 누구나 자신이 맞고 상대방이 틀렸기를 원한다. 희생하고 변해야 할 사람은 상대방이지 내가 아니다. 만약 내가 틀렸고 내가 변해야 할 사람이라면 과거에 대한 기억,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 미래에 대한 계획 등을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더 나아지기로 결심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천해야 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이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려면 반복적인 실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옳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평화를 원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계속 주장할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협상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기도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이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때 수치스럽고 섬뜩한 진실에도 마음의 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 자신이 듣고 싶지 않은 진실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자신 스스로 결함을 바로잡겠다고 결심하고 결함을 찾아내기 시작하면 온갖 새로운 생각과 만나게 된다. 그런 생각들은 자신의 양심과 나누는 대화이고, 어떤 점에서는 하느님과 의논하는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기도를 드리면서 말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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