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 대신 노자의 <<도덕경>> 제11장을 공유한다.
'있음'의 유익함은 '없음'의 작용 때문이다/노자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한 바퀴통에 모여 있고
그 바퀴통이 비어 있어야 수레가 굴러간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가 비어 있어야 그릇으로 쓸 수 있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가 비어 있어야 방으로 쓸 수 있다.
그러므로 형태 있는 '있음'이 이득이 되는 것은 비어 있는 '없음'이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있음'의 이로움은 '없음'의 작용에서 나온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슈퍼 히어로는 영웅이 아니다. 대적할 만한 상대도 없고, 위험에 빠지지도 않으며, 변화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합리적으로 이해 받는 존재가 되려면 한계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변화하기 때문이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더 나은 것으로 변화하든, 아니면 단지 다른 것으로 변화하든 모든 것은 변화한다. 변화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완벽한 것은 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럼 그런 한계에서 비롯되는 고통은 어떻게 해야 하나? 피터슨이 소개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다음 대목은 나에게 큰 위안을 준다. "세계사에 관해서 무슨 말이든 해도 좋다.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지어서 해도 좋다. 하지만 할 수 없는 말이 딱 하나 있다. 세계사가 합리적 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면 첫마디를 꺼내기가 무섭게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삶을 증오하고 경멸하면 삶 자체가 더욱 힘들어질 뿐이다. 존재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살을 생각하고, 절대자가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극악무도한 것을 생각한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없애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런 증오와 경멸은 삶의 비극에 맞서는 자세가 아니다. 어떤 선한 의지도 담겨 있지 않다. 오직 고통을 위한 고통을 만들어 내겠다는 욕망만 있을 뿐이다. 이런 욕망이 악의 정수이다.
비극적인 삶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떤 형태로든 논리적으로 타당한 대안이 있을까? 생각만으로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없다. 생각이 엄청난 힘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생각을 대신하는 것들이 있다. 삶을 실존적으로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생각은 붕괴되어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이런 상황, 즉 실존적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에 필요한 것은 생각이 아니라, '깨달음'이다. 이렇게 말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의 한계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피터슨에게 배운 좋은 통찰이다.
인생에 큰 불행이 찾아온다고 해서 일상에서 할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항상 하던 일은 해야만 하고, 최대한 정상적인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피터슨이 말한 방식을 공유한다.
- 큰 질병이나 위기 상황에 놓였을 때는 그 문제에 관해 대화하고 생각할 시간을 따로 정해 둔다.
- 그리고 매일 정해 놓은 그 시간에만 그 문제에 관해 상의한다.
- 정해 놓은 시간 외에는 그 문제에 관해 언급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 가능하면 질병이나 위기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을 저녁이나 밤에 잡지 말라. 숙면에 방해가 된다. 잠은 정말 중요하다. 잠을 편히 못 자면 모든 게 힘들어진다.
그런 문제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지 않으면 지치기 마련이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망가진다. 온종일 고민한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 않는다. 힘을 아껴야 한다. 질병이나 큰 위기는 한두 번의 전투로 끝나지 않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이다. 전쟁은 수많은 전투로 이루어진다. 최대한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
뇌에서 불안을 담당하는 부분은 계획의 세부 내용보다 계획이 있는지 없는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그래도 불쑥 걱정이 떠오르면, 그럴 때마다 매일 예정된 시간에 그 문제로 걱정하지 않느냐고 다독거린다. 그러면 걱정을 떨쳐내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상황이 순조롭게 돌아가면, 다음 달이나 다음 해에 뭘 할지 계획을 세우고, 5년 뒤나 10년 뒤 맞이할 장밋빛 미래를 꿈꿀 수도 있다. 그러나 악어에게 다리를 물린 순간에는 미래에 대한 계획은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떻게 든 그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피터슨 방식을 나도 좋아한다. 시간 단위를 아주 짧게 끊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 주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면 우선 내일만 생각하고, 내일도 너무 걱정이 된다면 1시간만 생각한다. 1시간도 생각할 수 없는 처지라면 10분, 5분, 아니 1분만 생각한다. 사람은 상상 이상으로 강인하다. 지금 눈 앞에 놓인 문제를 마주할 용기만 낸다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견딜 수 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아주 사소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인생이 완전히 망가지는 걸 막을 수 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태복음, 6:34)
아무리 안 좋은 날이라도 주의를 기울이면 작은 기쁨의 순간을 우리는 찾을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길을 걷다가 고양이와 마주치면, 존재의 경이로움이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보상해준다. 그러니 길에서 고양이와 마주치면 쓰다듬어 주라는 거다.
그동안 밀린 <인문 일기>를 주일 오후에 어떤 일정도 잡지 않고 쓰고 있다. 지난 수요일은 오후 내내 일정이 가득 잡혀 있었고, 동네 분들과 <관광두레> 사업을 위해 컨설팅을 받았다. 그 후 뒤풀이를 하고 있는 데, 슬픈 소식을 접했다. 우리의 4인조 음악 밴드 <혼수상태>의 한 멤버이자 제주도 우도에서 온 노래를 제일 잘하던 윤소남 박사가 암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갔다는 소식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기지 못했구나! 그래 목요일은 하루 종일 우울했다. 그러나 아침부터 일정이 있었다. 저녁에는 <보졸레 누보 2021>이 나오는 날이라, 좋아하는 친구들을 10 여명 초대하여 슬픔을 잊을 정도로 늦게까지 주님을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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