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억압적 구조로 존재한다. 문화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이며 실존적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케케묵은 것이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문화는 우리를 둘러싼 유, 무형의 모든 환경이다. 그러나 문화는 우리가 사회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우리를 정해진 틀에 가두고 여러 잠재적인 능력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도 크다.
데리다를 포함한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과학이 과학계 정점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익을 주는 또 하나의 권력 게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사실은 없고 해석만 있다. 계급적 위치와 명성은 능력과 역량의 결과가 아니던가? 이때의 기술과 역량은 그것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이기적으로 이익을 챙긴다.
권력은 인간을 행동하게 만드는 여러 요인의 하나이다. 사람은 위로 올라가기 위해 경쟁하고, 서열 구조에서 현재의 위치에 신경을 쓴다. 그러나 권력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요인, 혹은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 한편,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기에, 모든 관찰과 발언은 무엇을 고려하고 무엇을 포기하느냐에 달라진다. 그렇다고 '모든 것은 해석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이나, 범주화는 단지 배척일 뿐이라는 주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단 하나의 인과 관계로 모든 것을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런 해석을 제시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눈앞에 드넓게 펼쳐진 땅이 여행자에게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지 말해 주지 않는 것처럼, 사실도 그것이 왜 사실인지 스스로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아주 단순해 보이는 현상이라도, 그것을 인식하고 상호 작용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렇다고 모든 해석이 모두 유효하지 않다. 어떤 해석은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어떤 해석은 우리를 사회와 충돌하도록 유도한다. 해석의 수는 거의 무한에 가깝고, 이 말은 곧 문제 역시 무한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효한 해결책은 무척 제한적이다. 해결책도 무한에 가깝게 있다면 삶이 훨씬 수월 해졌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건강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는 '능력'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기본 요인이다.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능력과 역량과 실력이지, '힘'이 아니다. 서구 사회에서 성공 가능성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지표는 지능과 성실성이다. 지능은 인지 능력과 지능 검사로 측정되는 것이고, 성실성은 근면함과 유순함으로 대표되는 성격 특성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성공한 기업가나 예술가 중에는 성실성보다 개방성이 두드러지는 경우도 있다. 개방성도 성실성이나 지능 못지않게 중요한 자질이다. 그러나 개방성은 언어 지능과 창의력과도 관계가 있어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 예외라고는 할 수 없다.
남자들은 함께 일할 때 다음과 같은 행동 기준을 서로에게 강요한다.
- 자신에게 할당된 일을 해내라
- 자신에 주어진 임무를 충실하게 해내라
- 항상 깨어 있고 집중하라
- 칭얼대거나 짜증 내지 말라
- 항상 동료를 옹호하라
- 알랑거리지 말고 고자질하지 말라
- 어리석은 규칙의 노예가 되지 말라
- 지질한 남자가 되지 말라
- 의존적인 남자가 되지 말라
남성은 일반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속성이 있다. 이는 여성에게는 명백한 이점으로 작용한다. 일하는 여성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무능력한 남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부드러움과 무해함만이 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미덕이 되면, 강인함과 지배력이 무의식적인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남성이 여성화되는 극한 상황에 내몰리면 냉혹하고 파시스트적인 정치 이데올로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남성은 강해져야 한다. 남성이 강한 남성을 요구하고 여성도 강한 남성을 원하기 때문이다. 남성은 자신을 채찍질하고 상대를 채찍질함으로써 강해진다. 건강한 여성은 소년이 아닌 남자를 원한다. 건강한 여성은 다투고 씨름할 만한 상대를 원한다. 여성은 강해지면 더 강한 배우자를 원한다. 똑똑한 여성은 더 똑똑한 남성을 원한다. 그래서 강하고 똑똑하고 매력적인 여성은 짝을 찾기가 어렵다. 강한 남자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약한 남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곰곰이 지켜본 뒤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바란다고 피터슨은 말하며,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는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11번 째 규칙을 인생을 위해 지혜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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