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글입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젠 일찍 선거를 마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서대산이 바라 보이는 풍광 좋은 <서대산 갤러리>에 가서, 세상사를 잊고 몰입하여 놀다 왔다. 피곤하여 일찍 자고 새벽 두 시에 일어나, 선거결과들을 보았다. 정치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네 가지 전선(戰線)으로 이루어진다고 배웠다. '혁신 대 기득권', '새로움 대 낡음', '미래 대 과거', '통합 대 분열'이다. 지금 누가 앞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질문하며 후보나 정당을 선택해야 한다. 현재 보수 기득권은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전선의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 낡음, 과거, 분열의 모습을 보이는 정당과 후보를 살펴 보고, 사람들은 총선에 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는 만감이 교차하는 아침에 사막의 낙타를 만나는 기분으로 택했다. 사진은 어제 하루를 보냈던 곳이다. 지는 해를 놓치고 말았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볼 수 있다.
낙타/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민주당의 기록적 대승이지만, 나는 '웃프다.' 웃음이 나오지만 슬프기도 하다. 오만하지 말고, 국가 어젠다를 가지고 좋은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냥 통합당과의 비교우위에 만족하고 유지하는 것만으로 집권이 가능하다는 오만은 '네메시스(정의의 복수 신)'가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더 골이 깊이 파인 양당 정치의 구조화는 더 격렬한 갈등이 예상된다. 특히 정치적 다양성이 실종되어, 국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도 없고, 더 나아가 실질적인 문제해결 능력도 상실한 채 거대 양당의 담합 정치로 나아갈 수도 있다.
물론 '탄핵정부 2인자'가 이끈 예정된 참패이기도 하다. 대선과 지방선거 연패에도 불구하고, 미래통합당은 상황인식, 태도, 인물, 메시지 모두에서 패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종부세밖에 관심 없는 이기적인 지역의 '민 낯'이 드러났고, 지역성이 종교가 되어버린 지역의 모습도 그대로 드러났다. 아직도 낙후된 농촌 지역에서는 공산주의라는 말을 믿는다. 전자의 지역은 이해하겠다. 그런데, 가난하고, 힘 없는 자들이 사는 지역민들이 왜 수구 보수를 지지하는가 나는 늘 의문이다. 큰일 났다. "빨갱이들이 압승하면 북한과 서민들에게 나랏돈 마구 퍼줘서 이 나라 거덜난다고 하던디."
왜 가난한 이들이 보수에 투표를 하는가? 내 생각은 당면한 일상에서의 생존만으로도 힘겨운 빈곤층은 변화를 위한 정치적 행동을 해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 본다. 현실이 힘겹지만 변화가 품고 있는 '알 수 없는 고통'보다, '아는 지금의 고통'을 차라리 견디고 말겠다는 가슴 아픈 체념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소득 불균형이 더욱 더 심화되고, 중산층 마저 몰락 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고 본다. 원래 우리 각자는 계급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계급을 철저히 인식하고, 자신의 삶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기득권-보수를 선거에서 선택할까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힘의 실체를 살피지 못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모든 생명과 연결되어 보살핌을 받는 존재이다. 내 존재만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건 좀 생각만 하면 그렇다. 이성의 동물이라는 우리가 그 이성을 하루에 몇 분이나 써가며 사는가? 다 기분과 감정에 따라, 선택하고, 습관처럼 밀려드는 일상에 휩쓸려 하루를 보낸다. 그 휩쓸리는 마음의 작동 원리를 그래도 살펴, 사려 깊은(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선택을 하여야 내가 살고 있는 집단의 미래도 달라지리라 믿는다.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와는 "시대의 마음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만든다"고 했다. 그래
각자의 생각과 행동을 조절하는 사회적 장치와 문화가 중요하다고 그는 말하였다. 사회적 장치로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너무 진영논리 속에서 일상을 보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고자 조작하는 마음의 자기기만, 그리고 열등감 혹은 확신에 빠진다. 그게 생존 본능이기 때문일까? 그래도 우리가 타인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사랑 뿐이다. 삶을 너덜거리지 않게 보듬도록 하는 에너지는 사랑이라고 본다. 그것이 쉽지 않다. 해법을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다. “매일 우리가 맞는 아침은 사랑을 위해 다시 창조하고, 다시 규정하고, 다시 버리고, 조정해야 하는 24시간으로 찾아온다.” 승리에 취해 오만을 금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자들도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
인문운동가로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치가 우리의 삶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정치는 우리들에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해주기 때문이다. 신체를 구속할 수도 있으며, 돈도 걷어가며, 군대로 데려가기도 한다. 정치는 우리들의 '정신 세계'도 지배한다. 정치에 아무리 냉소적일지라도 정치는 우리들의 삶으로부터 단 1cm도 떨어지지 않는다. 원하지 않더라도 정치는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지배하기 때문이다.
나도,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처럼, 같은 정치가를 꿈꾼다.
-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합목적적 유연함을 지닌 정치인이 필요하다.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정치에 맞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학자, 종교인, 법조인, 언론인,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 낫다. 정치가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공산주의 소련과 '연합'도 할 수 있어야 한다.
- 정치를 '업'으로 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정치는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 그저 무엇이 되고 싶을 뿐인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직'을 쫓을 뿐 '업'을 지키지 않는 아마추어는 정치를 하면 안 된다.
-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권력에 맞서는 것은 작은 용기만 있어도 되지만 지지자들에게 맞서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다.
끝으로 기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먹이사슬이 제대로 작동될 듯하다. 바람직한 민주주의 먹이사슬에서 정치는 유권자가 선거를 통해 통제하고, 국민은 관료, 사법 체제에 의해 통제되고, 관료, 사법 체계는 정치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는 앞의 두 통제력은 여전하지만, 정치의 관료, 사법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위기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이 민주주의 작동 구조를 천천히 읽어야 한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정치인들을 통제하고, 정치인들은 관료들을 통제한다. 관료에 언론들도 넣고 싶다. 그러니까 관료들과 언론들은 국민의 대표자인 정치인들에게 통제를 받아야 한다. 정치인들은 우리가 선거를 잘 해서 잘 뽑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신 우리 국민은 관료나 사법 체제에 통제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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