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낮술을 마시는 바람에 어제의 <인문일기> 오늘 아침에 공유합니다.
1598.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2021년 4월 15일)
매주 목요일은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하는 날이다. 몇일 전부터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다시 읽고 있다. 거기서 나는 아겔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소환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슐레밀은 우연히 어떤 파티에 참석해 신비한 인물(나중에 악마로 판명)을 만나, 그림자를 팔라는 이상한 제안을 받는다. 그 대가로 주인공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꺼낼 수 있는 '행운의 자루'를 받는다. 그림자라는,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것을 파는 대신, 엄청난 부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곧 그림자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사람들이 그를 경원시한 것이다. 그때 그 문제의 악마가 다시 나타나 새로운 제안을 한다. 그림자를 다시 돌려줄 테니 죽은 뒤의 영혼을 자기에게 파라는 것이다. 갈등 끝에 주인공은 이 제안을 거절한다.
여기서 그림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림자가 무엇인지는 그림자가 없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림자가 없는 주인공을 사람들은 배척한다. 모름지기 인간은 그림자가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엄청난 재산을 약속한 결혼도 신부측 부모에 의해 거부당한다. 그림자가 없는 남자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다가, 인류학자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을 다시 책꽂이에서 빼냈다. 제목이 좋아서 산 책인 데, 자세히 읽지 않고 모셔 두었다. 당시 나는 아마도 장소와 환대라는 말이 유혹했던 것 같다. 다음 주 화요일에는 이 '환대'라는 화두를 가지고 책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다.
김현경이 이 책에서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독특하게 해석하고 있다. 그녀에 의하면, 그림자는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무엇'이라고 해석한다. 김영하는 이를 '성원권(成員權, 모임이나 단체를 구성하는 인원)'이라 말헸다.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사람으로 받아들여주어야 한다.
김영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례를 들어 준다. 조선시대 백정은 분명히 인간이었지만 양반과 상인들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실제로 구한말 진주에서 그들의 자식들이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오자 양반과 상인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며 퇴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완벽하게 양반이 상인과 같지만, 그들은 사회의 정당한 일원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장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김현경이 말한 장소를 이해하게 되었다.
20세기 초반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백인들의 공간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던 사례도 들어준다. 당시 흑인들 그랬다 가는 자칫 나무에 목이 메달 릴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의 환대가 필요하고 적절한 장소도 주어져야 한다.
조선시대 백정과 20세기 초 나치 치하의 유대인과 1960년 대 이전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환대는 커녕, 공적 장소에서 배척되거나 추방당했다. 오직 표지('다윗의 별'이나 유니폼)로 개별성이 지워진 이들만 허용되었다. 그들에게는 '그림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림자가 없다면 아무리 고매한 사상과 윤리적 자아를 갖추어도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도 얼마 전 한 TV에서 있었던 <싱어게인>이라는 무명 가수 오디션에서 가수들이 번호로 불려지었다. 불편했다.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직업이 세 가지이다. 경찰, 군인 그리고 성직자이다. 다들 유니폼(제보계을 입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나는 군복무 시절에 "거리에 사람은 없고 군인들만 득실거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식이다. 아침 사진 처럼, 나무 허리에 매달렸어도 어린 잎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다 같은 잎이다. 그리고 다 예쁘다.
어처구니/이종문
온통
난장판인
어처구니 없는 세상,
제일로 그 중에도 어처구니 없는 것은
知天命, 이 나이토록
어처구닐 모른
그 일.
잘 알다시피, "어처구니"는 '맷돌 손잡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둔중한 돌덩어리를 돌리며, 음식물을 잘게 부수는 그 순기능은 어처구니의 동력전달에서부터 온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관계론 적으로 역할이 분담되어 메타포를 형성하는 그 기능은 조화의 시작이다.
여기 까지가 우리가 보통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는 색다른 통찰을 보여준다. 김영하는 소설의 말미에서 주인공이 저자에게 하고 있는 말을 인용한다. "벗이여, 만약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이들이라면 부디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 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주게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면 말이지." 주인공은 돈이 없어서 가 아니라, 그림자가 없어 더 고통을 RURDJYEJS 것이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성원권이 없다면 이 주인공처럼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도 잃고, 충성스런 하인과도 결별하여 고립된다. 그런데 그는 장터에서 우연히 낡은 장화를 하나 사게 된다. 이 장화는 주인공을 세계 어디든 순식간에 이동시켜주는 마법의 장화임이 밝혀진다. 그는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겠다는 소망을 포기하고 세계를 떠돌며 산다. 어떻게든 그림자를 되찾아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는 결말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그는 그림자에 연연하지 않고 여행자로 살아가면서 만족하고 있다.
만약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 즉 그림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는 것들, 그러나 잃고 나면 매우 고통스러워지는 것들, 그 그림자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하지만 만약 그것을 잃었다면, 그리고 회복하기 위해 영혼까지 팔아야 한다면, 남은 운명은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가 되면 굳이 그림자가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김영하 소설가의 '통찰'에 놀라 공유한다.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돈이 그림자보다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김영하는 실제 그런 사람의 예로 니콜라 베르그루엔와 브라이언 체스키를 소개하였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그림자가 절실하다. 환대 받지 못하는 곳에서 적절한 장소도 부여 받지 못하는 인간들의 운명은 비참하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선 가 오고,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난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여행은 먼저 도착한 이들의 환대에 의해서만 겨우 시작될 수 있다.
이런 환대에는 나의 신뢰가 동반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보내는 신뢰는 환대와 쌍을 이룬다. 신뢰를 보내는 사람에게 우리는 환대로 응답하는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다음 주 화요일에 '환대' 이야기를 더 이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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