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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훈육 (2)

205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19일)

 

문제와 직면하고, 시간을 내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주는 고통을 피하려는 거다. 그런 태도는 즐거움을 뒤로 미루겠다는 의지가 없는 거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자기 책임 아니라, 남 탓하는 거다. 이게 오늘 아침의  화두이다.

스캇 팩(Scott Peck)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고 있다. 그는 훈육의 도구로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알려 주었다.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책임을 지는 것, 진리에 대한 헌신 그리고 균형 잡기이다. 어제는 부모의 사랑 유무가 일반적으로 자기 훈육의 발달, 특히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능력에 끼치는 몇 가지 영향들에 대해 공유를 했다. 오늘은 즐거움을 뒤로 미루지 못하는 것이 성인의 삶에 끼치는 영향들을 살펴보고 공유할 생각이다. 그리고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해서도 살펴보려 한다.

첫 번째 이야기가 '시간을 낼 마음만 있다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는 거다. 우리가 자신이 기계치라고 생각하고 물건을 고치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일에 시간을 내지 않았을 뿐이라는 거다. 무엇이든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좀 시간을 내면 누구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실 우리들의 문제는 내버려 두면 사라지지 않는다. 부딪쳐서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장애가 된다. 문제를 무시해버리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우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리고 문제를 무시해버리는 태도는 즐거움을 뒤로 미루겠다는 의지가 없음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문제와 직면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자발적으로 문제와 직면하는 것은, 더 고통스러운 것을 위하여 덜 고통스럽거나 즐거운 일을 제쳐 놓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고통을 꼭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기를 바라면서 현재의 즐거움을 지속하는 쪽을 선택하기 보다는 미래의 즐거움을 기대하면서 차라리 지금 고통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장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군대나 어떤 조직에 있어 서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부대에 앉아서 문제를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거기에 앉아 있으면 문제들이 사라질 것처럼. 문제를 똑바로 바라만 보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우리 부모들도 아이들의 문제를 무시해버리면 그것은 더 커지고 더 해결하기 어렵고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또한 우리는 우리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 먼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 문제 해결을 해주기 바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말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다른 사람 때문에, 아니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적 상황 때문에 생겼어. 그러니 사람이나 사회가 내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해. 이건 정말로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야."

저자는 정신과에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위 신경증(노이로제) 아니면 성격 장애로 고생한다고 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책임감에 장애가 있다고 했다. 신경증인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책임을 지려 하고, 성격 장애인 사람들은 응당 져야 할 책임조차 피하려 든다. 성격 장애를 지닌 사람은 자신은 선택권이 전혀 없는 사람이고, 자기 행동은 전적으로 자기 능력 밖에 있는 외부의 힘에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신경증인 사람들이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비해 치료가 쉽다. 그들은 자기 곤경에 책임을 지려고 하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신을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보다는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자기를 분석할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하기가 더 어렵다.

책임을 지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사는 동안 책임져야 할 것과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을 분간하는 것이 실존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완전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는 동안 내내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들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계속해서 평가하고 재평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지속적인 자기 분석을 감당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능력과 의지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아이들은 성격 장애를 지니고 있다. 본능적으로 자기가 처한 많은 갈등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경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아이들은 신경증도 갖고 있다. 아이들은 어떤 상실을 겪고 납득이 안 되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책임지려 한다. 세상과 그 세상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얻으려면 많은 경험을 쌓고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성장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실질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부모는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신경증 환자들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성격 장애를 가진 부모가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사람은 바로 그들의 아이들이다. 자기 책임을 지지 않고, 남을 탓하는 사람들은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이다. 게다가 이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못한다. 책임을 내던져버리고 그들 자신은 편안할지 모르나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영적 성장이 멈추고 사회에 쓸모없는 사람이 돼 버린다. 개인이 책임을 졌을 때 비로소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격 장애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종종 자기 문제를 책임지는 고통을 피하려고 애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문제의 고통은 내가 선택한 일의 결과이다. 그 선택의 결과는 자신이 책임을 질 일이다. 그 고통은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서 나온 것이고, 내가 정한 우선 순위 때문에 일어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행동에 책임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 행동의 결과로 따라오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는 데서 비롯된다. 더 큰 문제는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고 할 때, 우리는 항상 그 책임을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떠넘기려 한다는 거다. 다시 말하면 나의 권한과 자유를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게 주려 한다는 거다. 그것은 우리의 권한과 자유를 양도하는 거다. 책임이 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부터 도피"를 시도한다는 거다. 이 표현은 에리히 프롬의 연구서 제목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엄청난 자유를 버거워 하면서, 자신의 자유를 도피하고, 다른 이에게 넘겨 주는 거다.

우리는 빈번히 두 가지 나쁜 것 중에서 덜 나쁜 것을 선택해야 하지만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세력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매 순간 이러한 세력들에 대응하고 대처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자유를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선택들이 고통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삶에 분통을 터트리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빠진다. 그 무력감의 뿌리에는 자유의 고통에서 도피하고 싶은 욕망과 자신의 문제와 삶에 책임지지 못하는 패배감이 깔려 있는 거다. 사실 자신의 권한을 버렸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무력감을 치유하려면, 우리들의 삶이란 온통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완전히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유로워진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자신을 희생자로 느낄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곰곰이 읽고 생각해야 한다. 골치 아프다고 그냥 넘어가면, 자유와 책임의 문제를 평생 모르고 살게 된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늘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가치 판단이 배제된 선택은 없는 거다. 가치 판단은 모든 선택, 모든 행동의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어떤 행위 속에는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이 공존한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에는 언제나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게 가치의 차이이다. 그런 가치의 차이가 없다면 의미의 차이도 없다. 의미는 더 좋은 것과 더 나쁜 것의 차이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적인 판단보다 가치 판단에 치중을 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삶을 성공과 실패라는 두 짓대로만 보기에는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는 단 한 번의 게임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게임이 있다. 좋은 게임은 내 소질과 능력에 맞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며,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조금씩 성장시키는 게임이다. 각자 자기가 하고 있는 일, 예를 들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작업 중인 작품, 직업 등이 게임이다. 게다가 어떤 게임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게임에 도전하면 된다.  또한 게임을 바꿔도 효과가 없으면 아예 새로운 게임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든 게임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모든 게임에서 승리한다는 말은 새로운 분야, 까다로운 분야에는 도전하지 않았다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승리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성장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성장이 가장 의미 있는 성공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것을 얻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생의 게임들은 사람마다 달라서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사실 얻는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게 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우리는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인간으로 말하면, 시간이 지나서 늙은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익은, 성숙한 인간이 있다. 자기를 썩게 만드는 일도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고, 자기를 익게 만드는 일도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늘 좋은 선택으로 발효되며 익어가는 성숙한 인생을 만들어가고 싶다. 선택이 어렵다면 일상을 지배하는 습관을 드릴 때까지 고단한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 자동적으로 좋은 선택을 하게 해야 한다. 그 선택에서 중요하는 것이 오늘 무엇을 채우고, 또 무엇을 비울까 선택하는 일이다. 농사도 마찬가지이다. 논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벼가 잘 자라는 줄 알지만, 논에 항상 물이 차 있으면 벼가 부실해져서 작은 태풍에도 잘 넘어간다. 그래 가끔씩은 물을 빼고 논바닥을 말려야 벼가 튼튼해 진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삶에는 다 때가 있다. 우리 삶의 그릇에도 물을 채워야 할 때가 있고, 물을 비워야 할 때가 있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우고 비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부패하지 않고, 발효되려면 이 과정 속에서 좋은 선택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면 된다.

오늘은 박노해 시인의  짧은 시 하나를 공유한다. 사진은 아침 산책에서 얻은 것이다. 

지나침/박노해
 
열심이 지나치면 욕심
성공이 지나치면 부실
열정이 지나치면 소진
확신이 지나치면 독선
책임이 지나치면 군림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