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2021년 7월 21일)

우리는 지금 대량 소비와 속도, 경쟁의 악순환 속에서 출세, 성공 그리고 돈의 가치가 정신을 빼앗아 간 것도 모르고 바쁘다는 것을 무슨 깃발처럼 흔들며 살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은 파괴되고 생명 본래의 단순한 삶, 절제와 고요함의 가치는 산만함 속으로 파묻혀 갔다. 그러니 이젠 멈추어야 한다. 그래야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새로운 길이 열린다."
길이 끝나면/박노해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걸어 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위의 시는 경구로만 여겨질 때가 태반이다. 실제 삶에서는 문이 닫힐 때면 안타깝고 불안해 한다. 그러나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위로를 빨리 찾아야 한다. 어떻게? 다음과 같은 기억에서 위로를 빨리 소환하는 것이다.
(1) 시인의 노래처럼 절망 앞에서 정직할 때 열렸던 기억.
(2) 현명한 이들의 충고,
(3) 시와 영화 같은 예술의 일깨움이 주는 위로이다.
특히 예술은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려고 하는 메타언어이기 때문이다. 위의 사례들은 뻔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잊곤 했던 위로를 나누는 힘이 된다. 함께 나누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시인의 노래처럼 그 "끝이 참된 시작"이 될 것이다.
마음 비우기를 장자의 용어로 말하면 무심(無心)이다. <장자> 외편 제12편인 "천지" 제1장이 "무심의 경지에 도달하면 귀신들까지도 감복한다(無心得而鬼神服, 무심득이귀신복)." 쉽게 말하면 욕심이 없으면(마음을 비우면), 귀신도 항복한다는 말이다. 욕심의 대상이 꼭 돈이나 명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삶 그 자체도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돈이 그렇듯이, 삶도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돈이 '갖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듯, 삶은 '갖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그러니 잘 쉬었다가, 코로나-19가 물러가고 찬바람이 불면, 오늘 시처럼, "더 큰 나로 일서는 것"이다. 삶을 아껴뒀다가 다 살지 못하면,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 한다. 아낌없이 살아낸 사람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데 귀신인들 두려울 게 없다. 귀신이 두렵지 않은데 사람인들 두려울까? 세상에 무서울 게 없다. 욕심만 버린다면. 오늘 글은 강상구의 <그 때 장자를 만났다>는 책을 읽고 생각을 얻은 후 정리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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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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