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스스로 말미암는 것이지만, 1차적으로는 신체적 억압이 제거된 상태일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이유가 되어 하는 언행은 거침이 없다. 그리고 자유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데서 출발한다. 삶에서의 많은 문제들은 자신의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자기 인식이 우선이다. 자기 인식은 자신을 알려는 마음가짐이고 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자신을 항상 응시하려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사제나 목사에게 달려가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우리는 실제 삶에서 쉽게 자유를 포기하고, 어떤 외부 권위에 의존하려 한다. 외부 권위는 명령하고 억압하고 부자연스럽고 억지일 때가 많다. 실제 우리 사회는 우연히 부여잡은 권위를 가지고 휘두르며 다른 이에게 명령하며 복종하라고 윽박지른다. 그러나 세상의 변혁은 한 번도 이념, 정책, 교리, 리더의 카리스마를 통해 성취된 적은 없다.
자유를 위해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두어, 자신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 대한 관찰을 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과 관계에서, 그들이 반응하는 자신을 응시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스스로 수정하려는 수고를 하는 일이다.
내가 살고 세상은 내가 스스로 변혁할 때, 비로소 변하기 시작한다. 세상의 변혁은 외부의 권위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무식한 것이다. 자기 변혁은 자기가 누군인지 알려는 수고의 부산물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올바른 말과 행동이 나올 수 없고, 자기 변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서 시작한다. 나는 내가 오늘 마주치는 정보들과 사람들을,내가 경험하여 획득한 나의 시선이라는 색안경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편견을 가진 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인식하는 것이 자유로운 인생의 시작이라고 나는 믿는다. 신념과 이념처럼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일이 없다고 믿는다. 자기 인식을 통해 얻은 자유는 나에게 자연을 편견 없이 탐색할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한다. 자유로워야 조급해 하지 않고, 초조해 하지 않고, 여유를 갖게 된다.
다시 한 번 어제 소환했던,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명울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조르바 식 자유는 붓다의 방식과는 다르다. 붓다는 욕망의 불꽃을 끈 자이다. 그러나 조르바는 자신의 욕망을 아낌없이 태우는 자이다. 그는 욕망에 옭매이지 않는다. 그는 어떤 욕망이든 남김없이 태우며 산다. 매 순간 오감을 열어놓고 노래하며 산다. 한 점 미련 없이, 한 가닥 후회 없이 산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행복 철학에 동의한다. 노예 출신이었던 그는 자유의 개념에서 행복을 도출했다. 노예는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해야 하므로 신체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엄격한 제약을 받는다. 신체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에도 속박이 존재한다. 비록 신체적으로는 자유로울지라도 그의 마음이 무엇에 속박되어 있다면 그를 자유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자기가 이룰 수 없는 욕망과 정념 등에 예속되어 있는 사람도 그것의 노예라는 게 에픽테토스의 주장이다. 이런 속박에서 벗어나 주인으로서 자유를 누릴 때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인문학을 우리는 liberal arts, 자유를 얻는 기술이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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