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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잃어버린 ‘반쪽이’ 이야기 (1)

담백한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반쪽이 이아기를 두 번으로 나누어 한다.

잃어버린 ‘반쪽이’ 이야기 (1)

오늘날 우리가 ‘학술대회’라고 부르는 심포지엄(symposium)은 그리스어 ‘심포시온(symposion)’에서 나온 말이란다. 이 말은 우리말로 해석하면 ‘향연’이다. 즉 ‘함께 먹고 마신다.’는 의미이다. 그리스인들의 향연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푸짐한 식사와 와인을 곁들이면서 주제를 정해 철학적 토론을 즐겼다고 한다. 플라톤의 <향연>이 토론을 대화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그 때의 주제는 사랑이었다. 그래서 그 책의 부제가 ‘사랑에 관하여’이다.

잃어버린 ‘반쪽이’이야기는 심포지엄에서 네 번째 발언권을 가진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이다. 그에 의하면, 원래 인간은 두 사람씩 등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남성은 남성 둘이, 여성은 여성 둘이, 자웅동체인 남녀성은 남자와 여자가 등을 맞대고 붙어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태초에는 인간의 성이 남성과 여성 그리고 제3의 성인 자웅동성이 있었다고 한다. 제 3의 성, 즉 양성인이 지금은 없다. 다만 안드로기노스(Androgynos), 즉 ‘어지자지’라는 남성과 여성을 한 몸에 두루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순수한 우리말이 남아 있을 뿐이다.

어쨌든 원래 인간은 둥글었다. 등도 둥글고, 옆구리도 둥글었다. 팔도 넷, 다리도 넷, 귀도 넷, 수치스러운 부분인 ‘거시기’도 둘이었다. 다만 머리는 하나였지만 얼굴은 둘이었다. 두 얼굴은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있었다. 걸을 때는 이들 역시 우리처럼 똑바로 서서 걸었다. 하지만 빨리 뛰고 싶을 때는 곡예사가 공중제비를 넘듯이, 여덟 개의 손발로 땅을 짚어가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공처럼 굴러갈 수 있었다. 왜 둥글었냐 하면, 인간은 조상들의 모습을 이어받아 원형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남성은 태양, 여성은 지구, 남녀성은 달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란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태양과 지구와 달이 둥글둥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들은 대단한 힘과 능력을 갖고 있었다. 네 개의 손발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머리는 하나지만 현재보다 용량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점점 오만해지더니 급기야 신들의 자리를 넘보고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느 날 제우스가 회의를 소집했다. 오만해진 인간들을 벼락으로 전멸시키자니 앞으로 받아먹을 제물이 아깝고, 그대로 두자니 신들에게 박박 기어오르는 게 눈꼴사나워 못 보겠다는 것이다. 회의 중에 제우스의 머리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인간들이 지금보다 약해져서 더 이상 오만해하지 않도록, 인간들 각각을 둘로 나누겠다. 그러면 인간들은 더 약해질 것이고 또한 동시에 섬기는 인간 숫자가 늘어나니 우리 신들에게는 더 유익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인간들이 또 건방지게 굴고 소요를 일으키려 할 때에는 나는 그들을 다시 둘로 나누어서 외발로 뛰어다닐 수밖에 없도록 하겠다.”

제우스는 이렇게 말하며 삶은 달걀의 껍데기를 벗기고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두 토막으로 자르듯이 번개로 인간을 둘로 나누었다. 의술의 신 아폴론을 시켜 얼굴과 목의 반쪽을 잘려나간 쪽으로 돌려놓게 한 다음 잘린 부분도 치료하도록 했다. 아폴론은 목과 얼굴을 돌려놓고 잘라진 피부를 모아 염낭을 묶듯이 배 중앙에 묶어 배꼽을 만들었다. 배꼽이 이렇게 나온 거란다. 그리고 더 재미난 것은 아폴론이 목과 얼굴을 돌려놓은 것은 상처를 기억하고 다시는 오만을 떨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아리스파네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반쪽들이 다른 반쪽들을 목마르게 그리워하고 다시 한 몸이 되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쪽이 된 우리는 각각 옛날의 온전했던 한 인간의 부절(符節)이다.”

이때부터 인간은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또 다른 반쪽을 끊임없이 찾게 되었다. 자웅동성인인 양성인은 잃어버린 이성을,여성은 잃어버린 또 다른 여성을, 남성은 잃어버린 또 다른 남성을 찾는다. 이렇게 인간은 지금과 같은 반쪽 모습을 갖게 됐고, 나머지 반쪽을 찾아가는 과정이 사랑이라고 한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사랑을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이끌림’이라고 정의했다. 사랑은 깨진 도자기를 다시 맞춰보듯 하나로 원상을 회복하려는 갈망이다. 입술이 그 갈망의 전달 통로라고 본다. 연인끼리 입술을 맞대고 포개는 육체적 행위, 즉 키스는 서로의 숨결을 느끼면서 자신의 분신인지를 살피는 일종의 퍼포먼스이다. 입술은 언어의 마지막 경유지이다. 머릿속에 담겨있는 밀어를 쏟아내는 배출구이다. 그래서 사랑은 입술을 통해 완성된다고 한다.

아리스토파네스가 희극작가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진지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동성애가 천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실에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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