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는 이런 걷기를 했군요.
대전문화연대 3월 테마걷기, <군산 구불길>을 다녀와서 후기를 쓰기 전에 잠시 즐겁고 쾌적했던 군산의 <구불길>을 다시 생각하다 보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직선과 곡선’이었습니다. 구글에 ‘곡선’이라는 단어를 넣었더니, 평소 좋아했던 박기호 신부님의 이런 글이 나오더군요. “자연은 곡선의 세계이고, 인공은 직선의 세계이다. 산, 나무, 계곡, 강, 바위, 초가집…… 그 선은 모두 굽어 있다. 아파트, 빌딩, 책상, 핸드폰…… 도시의 모든 것은 사각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곡선이고, 죽은 것은 직선이다. 어쨌든 도시나 산촌이나 사람만은 곡선이다. 아직은 자연이다.”
그러나 사람도 직선적 사고를 하는 이와 곡선적 사고를 하는 이로 나눌 수 있지요.
AI(Art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인 알파고가 인간 최고 이세돌 프로에게 바둑을 이겼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걱정들입니다. 그런데 ‘직선’인 인공지능에게 가지지 못한 것이 ‘곡선’의 힘이라고, <구불길>을 걸으며 나는 혼자 안심했습니다.
너무 멀리 왔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후기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걸은 길은 <구불제4길>로 ‘구슬뫼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유성IC 앞 월드컵 경기장의 주차장에서 9시에 만나 차 두 대로 나누어 탑승하고 출발했습니다. 총 7 명이었지요. 나 목계, 김교수님, 해원님, 허정님, 우경님 그리고 함여사님 그리고 처음 나오신 긴강님.
원래 이 길은 18.3K의 구간으로 옥산맥섬석허브한증막-남내마을-척동마을-군산호수제방-돌머리마을-이영춘가옥-군산역이 종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대로 그 길을 다 못 돌았습니다. 다음 번에는 군산 역에 출발하고, 차를 남내마을에 두고, 전 코스를 걸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옥산맥반석허브한증막이 보이는 큰 길에 차를 두 대 다 세우고, 약간 실망하며, 차가 다니는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구불길을 안내하는 푯말이 정다웠습니다. 조금 걷다 보니 남내마을의 초입에 문종구 효열비가 약간 쌩뚱맞게 자리를 잡고 있었지요. 남매마을도 아니고, 남내 마을이라니. 구불길을 걷다가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 마을이 남평 문씨 집성 촌이었더군요. 구불길 중간에 우리는 중국에서 목화를 가져온 ‘제1호 밀수범’ 문익점의 아들이 지금의 총리에 해당하는 벼슬을 했고, 남평 문씨의 한 파의 시조라고 하는 어울리지 않는 비석을 만나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양지바른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명당 자리였습니다.
이어 망동마을 농로를 건너가니 우동마을 입구가 나왔습니다. 그 곳부터는 흙 길이었고, 숲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마을에 소나무재선충이 발생해 멀쩡한 소나무들과 숲이 해체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구제역 걸린 돼지들이 땅에 묻히듯이, 크게 자란 소나무들이 잘려나가니 슬펐습니다.
잘려나가는 숲의 고개를 넘으니 군산저수지(옥산저수지라고도 하더군요)가 보이며, 그 길을 걷는 여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길다방”을 열고, 김교수님의 다방커피, 목계의 복분자 술, 긴강님의 무슨 즙-몸에 좋다는데, 그 이름을 잃어버렸어요.- 등을 마시며 숨을 고르고 걷기를 이어갔지요. 그 길이 너무 환상적이었습니다. 과거 상수원 보호구역으로서 사람이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곳으로, 인공적인 것들이 설치되지 않아 최근에 우리가 걸었던 곳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적당한 높낮이, 구불구불한 길, 계속 만나는 군산 저수지의 잔잔한 물과 그곳에 놀고 있는 오리들-나는 혼자 저 오리들은 물에 젖어 춥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아마 방수 털이라 물이 살갗까지는 닿지 않겠지요-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지요. 직선에 지친 우리를 위로했습니다. 게다가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봄의 기운이 내 몸까지 뻗쳐왔습니다.
전혀 지루하지 않은 길이라 어느덧 점심 시간인 것도 모르고 걷다가 친절하게 놓여진 평상을 보고, 우리는 그곳에서 점심을 펼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요. 좁은 평상에 가까이 모여 앉아 식사를 나누는 행위는 단지 배고픔을 채워주는 일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서로 정을 나누는 기쁨이었습니다.
그 후 아쉬움을 남기고 우리는 차가 있는 곳으로 회귀해야 했습니다. 저수지의 수변로를 따라 지나온 길을 만나리라 믿으며, ‘멋진’ 길을 그냥 걸어나갔습니다. 그런데 중간의 갈림 길에서 방향을 놓쳤지만, 군산에 사시는, 게다가 그 곳의 지리를 잘 알고, 친절하기까지 하신 한 중년 남자의 안내를 받으며 원하던 길을 잘 찾았습니다. 그 분은 큰 길이 나올 때까지 우리와 동행하는 따뜻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그 분이 가르쳐 준 몰랐던 사실이 있습니다. 군산이 원래 이름은 ‘진포’였다는 것을 목포에서 진포 그리고 제물포(지금의 인천) 이어진다는 정보를.
그리고 우리는 다음에 다시 와, 수변로를 걷기로 하고, 서둘러 대전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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