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외천활리(畏天活理)

186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1월 5일)

어쩐 일인지, 일찍 일어났다. 9시면 모든 식당이나 술집이 문을 닫으니, 본의 아니게 일찍 자게 된다. 게다가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마음만 먹으면 잘 수 있다. 내 아버지가
그러셨다. 앉아서도 잘 주무셨다. 왜 그러시냐고 내가 물으면, 난 젊었을 경찰을 해서, 버릇이 되셨다고 말씀 하셨다. 프랑스어로 dormir du sommeil du just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정의로운 자의 잠을 자다'이다. 그러니까 '(양심의 거리낌이 없는 의인처럼) 평안히 자다'라는 뜻이다, 짧게 말하면 '안면(安眠)하다'이다. 나는 늘 안면한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숙면한다. 그래 참 행복하다. 그러나 가끔씩 너무 이른 새벽에 잠을 깬다. 그게 오늘 아침이다.

새벽에 만난 글이다.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에 나오는 거다. 이 책은 BTS가 추천해서 우리에게 많이 알려졌다. "자기 앞에 놓인 운명은 자신 속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2022년을 새롭게 시작하며, 내 운명은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게 해 준 말이라 공유한다. "운명을 바꾸려면 달라지기를 결심하고, 변화에 대한 사소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생각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고,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실행에 옮겨야 한다."

나는 연초에 다시 다짐한다. 나는 열심히 활동하고, 많이 접속하여 관계를 만들고, 그 활동 마당을 유지하며, 차이를 생성하는 일상을 명랑하고 즐겁게 한다. 나를 열고 타자에게 접속한다. 최근에 늘 머릿속에 두고 있는 생각이다. 삶의 방향을 정하고, 자신의 항상성을 위해 지속하고, 타자와 접속하라. 이게 영성의 지혜를 알고 사는 길이다. 이게 삶의 성장의 길이다. 인생의 사는 맛은 활동과 관계가 많고, 잘 이루어지며, 그것들이 의미가 있다면 잘 살고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선은 관계의 폭을 넓게 하고, 그 관계에 충실하며, 끊임없이 접속을 유지한다면, 원하는 활동이 확장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우리의 일상에 필요한 세 가지 키워드 중, 하나가 '활동을 한다'이다. 태양이 뜨면, 낮에 활동을 하는 거다. 몸을 움직이는 거다. 그 활동하는 곳이 직장일 수도 있고 자기 스스로 활동을 만들어내 어도 된다. 두 번째는 '누군가 또 무언가와 관계를 맺는 거다.' 다시 말하면 접속이 이루어지는 일이다. 삶은 활동과 접속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새로운 것이 생성되게 하는 거다. 특히 차이가 생성되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진정한 차이는 어떤 것을 배우면서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그 차이를 느낄 때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건 사람들이 자주 신상품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상품은 욕망의 확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욕망의 동일성'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새벽에 나는 지난 1월 1일부터 했던 올해의 다짐에 한 가지를 더 보탰다. 이젠 어느 누구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왜들 그렇게 열심히 누군가를 미워하는 거죠? 자기 일에만 신경 써도 모자라는 게 시간 아닌가?” 지난해 마지막 날 갑자기 돌아가신 베티 화이트가 미국 잡지 ‘퍼레이드’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라 한다. 100세를 단 18일 남기고 세상을 떠난 화이트는 코미디 전문 배우다. 미국판 ‘국민 할머니’이자 ‘방송계 퍼스트레이디’로 통했다. 별세 소식에 미국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이 “화이트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애도했을 정도다. 그런 그가 진정한 어른으로 통했던 이유는 나이 그 이상이다. 가르치려 하기보다 배우는 자세를 취했고, 여성과 흑인, 성소수자 등 각 시대의 마이너리티를 옹호하는 최전선에 섰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의 저자 레오 버스칼리아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란 마음속 쓰레기를 끌어안고 놓지 못하는 상태 같다고 표현했다. 갖다 버릴 생각은 안 또는 못하고, 심해지는 악취에 불평만 늘어놓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남의 험담이나 비난을 하지 마라. 그럴 시간에 팔 굽혀 펴기나 해라는 말이다. 그래 그 시간에 나는 내 활동에 더 집중할 생각이다.

박노해 시인처럼, 나도 다짐한다. 사진은 지난 연말 제주 사계 앞바다에서 새벽에 만난 기러기들이다. 기도하는 시간들인가 보다. 올해는 글을 짧게 쓸 생각이다. 이어지는 생각은 블로그로 옮긴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새해 다짐/박노해

새해에는
단 하루만이라도
가지런해야겠다
세상이 어지럽지만
내가 단정하지 못했구나

새해에는
단 하루만이라도
고요해져야겠다
세상이 시끄럽지만
내가 말이 너무 많았구나

새해에는
단 하루만이라도
멀리 내다봐야겠다
세상이 숨가쁘지만
내가 호흡이 짧았구나

새해에는
단 하루만이라도
간소하고 나직해야겠다
세상이 온통 대박행진이지만
내가 먼저 비우고 나누지 못했구나

세해에는
단 하루만이라도
홀로 외로워져야겠다
좀 흔들리고 눈물도 흘리고 가슴 아파하면서
내 사람이 온유해져야 겠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나의 하루하루가
좀 더 치열해져야겠다
과녁을 향해 팽팽히 당겨진 화살처럼
하루하루를 내 삶의 가장 깊은 곳으로
온전히 집중해야겠다.


2022년을 시작하며, 일상의 지표로 삼을 사자성어(四子成語)를 다섯 개 선택했다. 작년에 알게 된 최정윤 대표는 자신의 담벼락에 이런 글을 올렸다. "지나간 것은 모두 잊고, 옳은 길은 거침없이 전진하라!' 이를 사자성어로 하면 '業障消滅(업장소멸), '直往邁進(직왕매진)'이다. 가끔 긴 문장보다, 사자성어가 더 큼 힘을 준다. 그래 나도 올해의 사자성어로 5개를 택했지만, 그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승물유심'이다.
(1) 습정양졸(習靜養拙)
(2) 화이불창(和而不唱)
(3) 승물유심(乘物遊心)
(4) 명철보신(明哲保身)
(5) 외천활리(畏天活理)

오늘은 내가 태간 올해의 사자성어 마지막인 '외천활리(畏天活理)'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이 말은 매주 토요일마다 하는 <개신 미학 세미나>에서 김태창 교수님으로 부터 배운 말이다. 김교수님은 '외천활리 인문학'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그 내용은 잘 모르지만, 한자 4개를 다 좋아한다. 제일 먼저, 외천(畏天)에서 '외'자를 좋아한다. '두려워 한다'는 말이다. 칸트는 말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라움과 경외로 나를 떨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 머리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내 안의 도덕 법칙이다."

그리고 노자의 <<도덕경>>을 읽다 보면, 이런 말을 만난다. "세상은 도의 작용으로 움직이는 신령한 기물(天下神器)이다." 제29장이다. “세상은 신성한 기물,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함부로 뭘 하겠다고 하는 자는 그것을 망칠 것이고, 그것을 휘잡으려는 사람은 그것을 잃고 말 것입니다.” 왜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는가? 세상은 신령하니까. 다시 말하면, 세상은 다양하고 복잡한 원리와 리듬이 내재해 있어서 우리 인간으로서는 그 깊고 높은 차원을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을 대할 때 제발 경외(敬畏)의 태도로 대할 줄 알라는 이야기이다. 난 경외(敬畏)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은 말 그대로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이다. ‘외경’이라고도 한다. 두려워 할 ‘외’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경외'의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 좀 두려워 하면서 만나야 한다.

'외천활리'라는 말을 듣자, 나는 '거인욕, 존천리(去人欲, 存天理)'라는 말이 소환되었다. 이 말은 '인간의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이치를 따르라'는 뜻이다. 에고의 욕심(호리피해, 好利避害)을 버리고, '참나'가 지니고 있는 양심(良心=인성人性), 아니면 다음과 같이 우주의 원리인 "6바라밀(세상을 건너는 일, 세상을 사는 일, 6 가지 인격의 기둥)"에 머물라는 것이다. 바라밀이란 말은 '파라미타'에서 온 것이다. 파라미타는 '파람(저 멀리)+이타(도달하다)'의 합성어이다. 그 뜻은 궁극, 즉 멀고 험하게 보이는 부처가 되는 길을 꿋꿋하게 걸어서 이른다는 것이다.

▫ 보시 바라밀: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유교식으로 말하면, 인(仁)에서 나오는 측은지심(惻隱之心-남을 나와 다르게 보지 않고, 나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네가 갖고 싶은 것을 상대도 갖고 싶어하는 것을 우리 양심으로 안다. 그러니 '자랑 질' 하지 말라, 그것도 보시이다.

▫ 지계 바라밀: 계율을 지키는 것, 아니 유혹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 지는 것이다. 유교식으로 말하면,의(義)에서 나오는 수오지심(羞惡之心-내가 당해서 싫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는 마음이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논어』)' 정신이다.

▫ 인욕 바라밀: 수용(受容), 즉 온갖 모욕에도 원한을 품지 않는 것, '욱'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참아내는 것이다. 단 자명한 것 앞에서 참는다. '인욕'이란 무조건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진리를 인가(수용)하며 참아내는 것이다. 이 때 참아내게 하는 힘은 지혜에서 나온다. 자명한 상황을 받아들이며 참아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욕심에 나오는 화는 참고, 양심에서 나오는 분노는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리를 인가, 수용하는 것이다. 자명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혜(양심=진리)에서 나오는 것을 참는 것이 인욕이다. 유교식으로 말하면, 예(禮)에서 나오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이다. 타인을 배려하면서, 매너를 지킨다는 말이다.

▫ 정진 바라밀: 악을 제거하려고 치열하게 노력으로 나태하지 않는 것이다. 유교식으로 말하면, 신(信)에서 나오는 성실지심(誠實之心)이다. 성실하게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이다.

▫ 선정 바라밀: 마음을 응시하며, 심난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유교식으로 말하면, 경(敬)에서 나오는 몰입이다. 현재 하는 일을 제외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이다.

▫ 반야=지혜 바라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지 않고, 자명한 것만 받아들이는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유교식으로 말하면, 지(智)에서 나오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그러니까 바라밀은 우리가 세상을 건너는 일, 세상을 사는 일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일이다. 궁극에 이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활리(活理)에 주목했다. 우선 활자를 보는 순간 '활발발(活發發)'이 소환되었다. 바람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한 스님이 말했다. “깃발이 흔들리는구먼.” 다른 스님이 말했다. “바람이 흔들리는 것일세.”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육조 혜능 스님이 말했다.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닐세. 그대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세.”

후설의 현상학에 따르면, 세계는 마음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계는 우리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향성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그 말은 우리 마음이 무엇인가에 쏠리는 것을 의미한다. “지향성이 없이는 객관과 세계는 우리에 대해 현존하지 않는다.” 후설은 객관과 세계라는 말 대신 '노에마(noema)'란 말을 사용합니다. '노에마'란 우리의 마음, 혹은 정신인 누스(nous)가 지향하고 있는 대상을 말하는 것이다. 사찰의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고 혜능은 이렇게 말한 거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말이 후설의 지향성 개념을 멋지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불교에서는 ‘마음의 활동성'이라는 말한다. 지향하는 활동, 혹은 '쏠림'이란 활(活) 그 자체가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활발발(活潑發)’한 마음의 활동성을 강조한다. ‘살아있는’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것이어서, 살아서 팔딱거리며 움직이는 마음의 작용이 중요하다는 거다. 예를 들어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라는 말을 할 때처럼,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이 지나치면 그것을 집착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음의 활동성, 즉 활발한 마음의 역동성이 중요한 것이다. 굳어 잇는 마음은 안 된다. 일단 무엇인가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려면, 우리의 마음이 그것에 쏠려 있어야 한다. 마음이 역동적인 지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활(活) 아닌가? 활어(活魚)가 생각난다. "활'은 생명이다. 마음을 늘 '활발발'하게 하여야 살아 있는 거다.

'리(理)'는 글이 너무 길어지니 여기서 멈춘다. 대신 '외천활리'이란 말을 구글에 문의 해보았다. 퇴계 인문학을 '외천(畏天)'과 '활리(活理)'라는 두 축으로 조망하는 포럼에서 나온 말이었다. 퇴계의 '리발(理發)', 리동(理動)', '리도(理到)'의 문제가 나왔다. '리'라는 말에서 영성적 요소를 일어내려는 시도였다. '리'가 '활리'가 아니 '사리(死理)가 되어 영성을 잊으면 그것은 하늘(天)도 두려워하지(畏)
않는 인간의 소행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좀 더 연구해야 할 주제이다. 나로서는.

다만 작년에 읽다가 중단한 퇴계의 <<성학십도>>(한형조 독해)를 다시 꺼냈다. 올해는 끝까지 다 읽을 생각이다. "자기 구원의 가이드 맵"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듣기/이해인  (1) 2022.01.06
자유/김남주  (0) 2022.01.06
가까운 행복/이해인  (0) 2022.01.05
장작불/백무산  (0) 2022.01.05
사람은 다 때가 있다.  (0) 2022.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