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2.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이해인 수녀님께서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2019년 마지막 인터뷰를 하셨네요. 수녀님은 2019년을 "먹다 남은 김칫국물에 감사한 한 해'라고 하셨다. 나에게 2019년은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원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완벽 하려고 지나치게 애를 썼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녀님의 인터뷰를 보고, 오늘 아침 나는 좀 허술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았다. 아무렇 게나 살라는 말이 아니라, 자기 여백을 허용하라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백(餘白), 참 좋은 말이다. 내 시대정신은 이 거다.
우리 현대인은 어떤 장소와 유기적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부평초처럼 떠돈다. 마을이 해체되면서 공동체적 삶 또한 무너졌다. 마을은 더 이상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고이는 장소가 아니다. 심지어 자기가 살고 있는 집조차 가족들의 기억의 뿌리가 아니라, 재산 가치로서 기능할 뿐이다. 이런 소외의 결과, 삶은 두텁지 못하고 납작해졌고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은 고갈됐다. 오로지 주류 세계가 제시하는 길을 묵묵히 따라 달릴 뿐이다. 피로와 권태 그리고 무의미가 사람들을 확고히 사로잡고 있을 뿐이다. 자기 속의 여백이 사라지면서, 여유를 잃어가면서, 타자를 환대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위축되었다. 여백을 회복해야 한다.
말이 또 길어진다. 수녀님의 인터뷰 말씀을 요약하면, 크게 다섯가지가 '찡'했다.
1. 수녀님께서 올해 후회하시는 것은 "더 정성스럽게 들을 걸" 했던 것이다. 나도 그렇다. 올해는 더 듣기를 많이 할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좀 더 정성스럽게 듣지 못했던 소홀함", 특히 "가까운 사람한테 마음으로 함께 듣는 그런 정성이 부족했다"고 하신다. 수녀님의 시 <듣기>를 내일 공유할 생각이다.
2. 약점도 자랑하는, 여백을 허용하는 삶을 말씀하셨다. 최근에 출판하신 산문집, 『그 사랑 놓치지 마라』에 나오는 내용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예기치 않은 실수를 통해 조금 더 겸손해지고 이를 잘만 이용하면 인간관계도 좋아지는 축복을 누리기도 하나 자신의 사소한 실수에 무조건 실망하고 한탄만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 가끔은 민망한 김칫국물 한 두 방울쯤 가슴에 슬쩍 묻혀 나 볼 일이다.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는 용기야 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요." 가장 인간적인 것은 거룩한 것과 통한다. 어떤 때 우리는 훌륭함으로 인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때때로 못나고 허술한 게 훨씬 따뜻하고 좋을 때가 있다. 수녀님에 의하면, 허술하다는 게 아무렇 게나 살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 여백을 허용하는 거 란다. 약점도 사랑하라는 것이다. 성경에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하셨다. "나에게 자랑할 것은 약점 뿐입니다."
3. 수녀님의 산문집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고 소개한다. "우리가 비교급에서 조금만 탈피하면 삶이 달라질 수 있어요. '어둡다고 불평하는 것보다 촛불 한 개라도 켜는 것이 낫다'라는 중국 격언을 소개하며, 긍정적인 행동 하나가 희망의 촛불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수녀님은 예를 들어 이러신 단다. 누가 남의 흉을 보면, 우리도 다 부족한 사람인데 우리 오늘 그만하자고 하신다고 했다. 이게 촛불 한 개라도 켜는 행동이라고 말씀하신다. 좋은 삶의 지혜이다.
4. 수녀님이 가장 슬퍼하시는 것은 정치인들의 '막말'이다. 언어를 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악플이 여러 사람을 죽이는 사회 현상을 말씀하시다가. 수녀님에게 악플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 수녀님은 "오죽하면 나에게…..."라면서 용서를 하신다고 했다.
5. 한해 마무리, 고마운 사람들 위해 기도하기. 수녀님 방식의 이런 '한 해 마무리하기'가 배울 만 하다. 1년 동안 감사했던 사람, 고맙게 힘을 줬던 사람, 용기를 줬던 사람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면서 열 가지 이내로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고, 그분들을 위해서 30초, 1분이라도 기도하는 것이다.
수녀님은 인터뷰 중에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를 직접 들려주셨다. 순간순간을 소중히 하고 옆에 우리가 함께 사는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기면서 복스러운 사람이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의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셨다. 그리고 수녀님은 동백꽃 웃음으로 시작인사와 마무리 인사를 하셨다. 수녀님의 책,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 처럼』을 보면, 수녀님은 눈 속에서 붉은 꽃을 피우고 질 때는 시들지 않은 채 깨끗하게 똑 떨어지는 동백처럼 한결같은 삶을 꿈꾸며 사신다고 했다.
그래 오늘 아침 사진은 지난 12월에 여수 오동도에서 찍은 '철 이른' 동백꽃이다. 그 인터뷰 기사를 보고, 나는 바로 수녀님의 신작 산문집, 『그 사랑 놓치지 마라』를 구입했다. 요즈음은 아침 일찍 책을 스마트폰으로 주문하고, 결제하면 저녁에 책이 집으로 배달된다. 결제 방법 또한 매우 간단하다. 스마트폰에 엄지 지문만 대면, 결제가 끝난다. 편리한 것인지, 과 소비되는 것인지 헷갈린다. 수녀님 산문집을 어제 잘 읽었다.
산문집에서 읽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다. 지극히 당연한 것을 새롭게 감사하는 일에서부터 행복이 시작된다. 수녀님 처럼, 그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서도 현재의 순간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만의 행복방정식을 만들어가는 2020년이 되고 싶다.
가까운 행복/이해인
산 너머 산
바다 건너 바다
마음 뒤에 마음
그리고 가장 완전한
꿈속의 어떤 사람
상상 속에 있는 것은
언제나
멀어서 아름답지
그러나 내가
오늘도 가까이
안아야 할 행복은
바로 앞의 산
바로 앞의 바다
바로 앞의 내 마음
놓치지 말자
보내지 말자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이해인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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