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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원래 시끄러운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1569.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2021년 3월 17일)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로 이름을 바꾸고, 매주 수요일은 시대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SNS로 밀려오는 정보를 소화하지 못하면, 페이스북의 <저장됨> 코너에 쌓아 놓고, 시간이 나면 꼼꼼하게 읽는다. 아니면, 네이버 메모나 내 개인 밴드에 저장해 두었다가 다시 읽으며, 리-라이팅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알아차림'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안목이고 시선의 높이이다. '감'을 잘 유지해야 한다. 잘못하면 '확증편향'이 된다.

 

'알아차림'은, 자신의 감각 지평을 확장 시키고, 그 경험으로 감성, 아니 감수성을 예민하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 사유를 더하면, 우리는 통찰력(insight)을 키울 수 있다. 살면서, 문제에 직면하면 그걸 '탁'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통찰력이다. 이런 '알아차림'은 체험과 개념, 아니 경험과 이론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알아차림'이란 말의 정의는 ‘기억과 사유가 일치된 앎'이다. 어려운 말 같지만, 기억은 체험에서 나오고, 사유는 개념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알아차림은 경험이나 체험에 개념이나 이론이 뒷받침되면 더 잘 작동된다. 그러니까 알아차리는 것도 조건이 맞아야 한다. 쉽게 말하면,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름 붙이기'를 하거나 생각을 '정리하기'는 자신 안에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에게 '어서 와'하고 환영하고 차를 권하는 일과 같다. 그때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깨어 있을 수 있다. 그것들과 나의 자각 사이에 여유 공간이 생겨난다. 그때 알아차림이 일어난다.

 

'확증편향'은 무섭다. 이 이야기는 시를 를 공유한 다음으로 미룬다. 최근에 우리 사회를 달구는 것은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와 한국주택토지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건이다. 가급적 정치적인 민감한 내용은 아침 인문 일기에서 피하려 한다. 나는, <장자>를 읽으면서, 허심(虛心)을 추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시비(是非)를 중단하거나 소멸시키려 하지 않고, 화(和)하는 일이다. 단(斷)도 멸(滅)도 아니고, 시비의 긍정도 부정도 아닌 화를 주장한다. '화하라'는 것은 시비를 잠재워버리거나 잘라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기 앎'에 기초한 시비의 근거가 서로 허구적인 것임을 깨달어서 스스로 풀어지도록(해소되도록)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시비’(和是非')는 시비하지만 시비가 없는 것이고, 시비가 없으면서도 각자의 시비가 모두 인정되는 것, 즉 양행(兩行)이다. 이런 화시비를 위해서는 자아의 판단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조화에 맡겨 분별지를 쉬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 자연의 균형에 맡기는 것, 즉 ‘휴천균’(休天鈞)이다.

 

그래도 전우용 역사학자의 다음 주장은 공유하고 싶다. "삼류 검사는 간첩이 나오길 기다리고, 이류 검사는 간첩을 찾아 다니며, 일류 검사는 간첩을 만들어낸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부동산 야바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삼류는 자기 땅이 개발되기를 기다리고, 이류는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사며, 일류는 자기 땅이 개발되게 만듭니다. 일류 야바위꾼들은, LH 직원들의 ‘이류 야바위’를 한심하게 여길 겁니다. 이류에게 분노하면서 일류를 지지하는 사람은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까요?" (역사학자 전우용)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내 삶을 어디에 더 큰 방점을 찍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오늘 사진은 주말농장 입구에서 찍은 것이다. 세상이 시끄러워도 봄은 온다.

 

 

삶은 방점 찍기/박노해

 

삶은 방점 찍기

물질과 정신 사이에서

편리와 건강 사이에서

이익과 정의 사이에서

경쟁과 우애 사이에서

성공과 사랑 사이에서

 

세상이 굵은 방점을 찍고 있는

그 반대편에 나의 방점이 찍히고 있다면

나는 균형 잡힌 날개로 날아가고 있으니

 

 

좀 전에 말했던 '확증편향" 이야기를 다시 하려한다. 확증편향은 무서운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못된' 수구 보수 언론들이 무지한 대중들에게 생각을 '은근히' 심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TV를 많이 보면 더 그 증세가 심하게 일어난다. 시야가 좁은 사람들이 가지는 세 가지 특징을 공유한다.

 

(1) "지나친 일반화 현상"이 일어난다. 이 말은 하나의 사건이나 사실에 대해 어떤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그것이 절대적인 것인 양 받아들이는 현상을 말한다. 나 자신도 가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곤 한다. 이런 심리를 가진 사람들은 단정적인 말을 자주 사용한다. 예를 들면, ‘결코’, ‘항상’, ‘매번', ‘아무도'라는 등의 단정적 언어를 사용하여 다른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장광설을 늘어놓거나 다른 사람 말을 끊고 ‘그게 아니고’ 하면서 끼어들어 주책바가지 소리를 듣는다. 이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고방식이 '여과하기(filtering)'이다.

 

'여과하기'란 현실에서 특정한 사실만을 선택적으로 발췌하여 집중하고 나머지 것은 무시하는 방식이다. 이를 심리학에서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이것은 어떤 색 유리를 통하여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문제는 여과하기가 인생의 경험 중에서 특별히 나쁜 점 만을 부각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잘못된 사건에만 초점을 맞출수록 이것이 핵심 사고방식으로 굳어져 불만스럽고 고집스러운 태도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2) '양극화된 사고'에 빠진다. 이것은 여러 가지 색깔 중 흑백의 두 가지 색깔만 사용하는 것처럼 자신이 접하는 모든 것을 흑백논리에 입각해서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아군이냐 적군이냐, 우파냐 좌파냐처럼 모든 것을 양분해서 본다.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절대적 사고, 즉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무지막지한 사고방식을 유지한다. 중간은 있을 수가 없다.

 

(3) '지레짐작'을 한다. '독심술(讀心術)'이라고도 하는 이것은 모든 사람이 다 자기처럼 생각한다고 여기는 왜곡된 사고방식을 말한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무작정 결론으로 건너뛴다.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는 '꼰대'라 부른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신부님은 그런 사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나열할 수 있다.

  • 그런 사람들은 우선 자신의 삶을 위축시키고 제한한다.
  • 일상에서는 가리는 게 많아서 스스로 제한된 동선 안에서만 맴도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다양성을 키우기는 커녕 병적인 고정관념만 늘어나서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집불통이 되어간다.
  • 마음 안에 상실과 불만족에 대한 생각이 떠돌아다녀서 내적 상태가 늘 불안하고 불행하다.
  • 논리적인 능력을 상실해서 지적 기반이 허약하여 선동적인 말에 휩쓸리는 경우가 늘어난다.
  •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대량 살상극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매카시즘이 불러온 빨갱이 색출 사건,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에 의해 자행된 부르주아 학살극, 미얀마에서 벌어진 쿠데타와 폭력적인 시위 진압이 그 증거다. 좌파와 우파의 꼰대들이 대량 살상의 주범 자들이었다.

 

이 시국의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박선화 교수의 칼럼을 패북 담벼락에서 만났다. 나도 <미나리> 영화를 보면서 다음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미나리를 심은 숲에서 손자가 뱀을 보고 쫓으려 하나 할머니(윤여정)가 이런 말을 한다. "데이빗아 그냥 둬. 그러면 뱀이 숨어버려.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것보다 더 나은 거야. 숨어있는 것이 더 위험하고 무서운 거야." 이번 기회(LH 사건)를 통해, 우리 사회에 숨겨진 더 많은 불편함이 드러나길 나도 바란다. "이 시기를 지나며 우린 또 성장할 것이고, 미얀마의 국민들 역시 저항하며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루어내리라고 믿고 싶다." "원래 시끄러운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엄혹한 시기일수록 세상은 고요하다." 이런 문장들이 박선화 교수의 글 속에서 돋보였다.

 

나는 LH 부동산 투기 사건이 터졌을 때 놀라지 않았다. 누구나 아는 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터질 게 터진 거다. 중요한 것은 이 거다. "인간은 늘 실수하고 변화는 느리지만, 대처의 자세가 신뢰를 좌우한다." (박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