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면 사임 일정을 개시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이 비극적 '대하소설'을 끝내는 가장 명예로운 방식이며 역사라는 심판관을 상냥하게 만날 것이다." (다니엘 튜더 영국 이코노미스트 전 서울 특파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당장 사임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임 일정을 제시하고, 어서 '거국중립내각'을 만들어 더 이상 마녀사냥 당하지 말고, 그 내각이 서둘러 제7공화국을 준비하게 하여야 한다. 대선을 앞당기고, 동시에 권력이 집중되는 현 헌법을 개헌해야 한다. 이미 대통령의 도덕적, 정치적 권위는 다 잃었다. 그런데 박대통령의 막가파식 버티기로 대한민국은 더욱 어둡고 깊은 터널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아무도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나 홀로 대통령' 노릇을 하는 모습도 목불인견이다. 예전에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보도에 대해 "사회 혼란 야기" 운운하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 사실"이라고 말했던 "그 때 그 오만한 자세"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신이 싫어하는 것이 두 가지이다. 탐욕과 오만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니오베라는 인물은 오만을 부리다가 돌로 변한 인물이다. 사람은 오만을 늘 경계해야 한다.
신과 인간과의 차이는 죽느냐 안 죽냐이다.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 할 존재이고, 불완전한 존재이다. 언제까지 신처럼 영원히 살 줄 알고 목이 부러지도록 오만을 부리는 인간에게 신은 말한다. "너 자신을 알아라! 이 말은 너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아라는 말이다."
오만이 인간을 돌이 되게 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니오베의 눈물’ 이야기를 좀 하자.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조금만 더 많이 가지면 내세우고 싶어 안달이다. 어쩌면 도토리 키 재기 식인데 말이다. 그러한 말이나 태도가 좀 더 적게 가진 사람에게는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는 일이다. 물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즉 자긍심은 삶을 윤택하고 활기차게 하는 윤활유와 같다. 그러나 이 역시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 남들보다 좀 더 가졌다고 오만에 빠지는 것을 그리스인들은 경계했다. 그리스어로 ‘오만’을 ‘히브리스(Hybris)’라고 한다. 신화 속에서 이러한 오만은 인간을 돌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이런 사람이 있다. 그 이름은 니오베이다. 테바이의 왕비인 그녀는 7남 7녀를 둔 어머니로 그 14명의 자식이 최대의 자랑거리였다.
한번은 테바이의 백성들이 레토와 쌍둥이 남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는 의식을 성대히 치르고 있는데, 니오베는 화를 내며 자신에 비해 훨씬 적은 1남 1녀밖에 두지 못한 레토 여신을 향해 온갖 조롱과 멸시가 넘치는 폭언을 쏟아 붓고 백성들에게는 의식을 당장 걷어치우라고 호통 쳤다. 백성들은 왕비의 말을 좇아 의식을 그만두고 뿔뿔이 흩어졌다.
레토 여신은 화가 나,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남매를 불러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자 두 남매 신은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활을 챙겨들고 나갔다. 먼저 아폴론의 화살을 맞고 니오베의 아들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아폴론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아이들의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7명의 아들을 남김없이 쏴 죽여 버렸다. 자식들의 죽음에 슬픔을 이기지 못한 니오베의 남편 암피온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도도한 니오베는 레토를 저주하며 자신에게 아직도 여신보다 훨씬 많은 딸이 있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르테미스의 화살에 그녀의 딸들이 차례대로 쓰러져갔다. 이제 남은 것은 막내딸 하나뿐이었다. 니오베는 옷자락으로 딸을 감추면서 제발 하나만이라도 남겨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아르테미스의 무정하고 잔혹한 화살은 어머니 품에 매달려 있는 막내딸마저 꿰뚫어버렸다. 니오베는 너무도 참담한 현실 앞에 온몸이 굳어 돌이 되었다. 돌이 된 니오베가 있는 곳은 산꼭대기이다. 오늘날까지도 거기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자식 자랑하다가 겪게 되는 니오베의 고난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산에서 니오베의 돌을 만나면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그러나 오만을 경계하자는 이야기로 읽는다. 올림포스 신들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신들은 당대를 살던 사람들의 보편적인 꿈과 진실이었다. 그래서 신들에 대한 경건함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경건함, 그 시대 도덕률에 대한 경건함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신화에는 이 경건함을 한 결 같이 지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바로 이들이 ‘신들이 좋아하는 사람들(호모 테오필로스)’이다. 그들은 상승한다. 하지만 신화에는 이 상승의 정점에서 갑자기 오만해지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입에서 불을 뿜는 괴물 키마이라를 퇴치하고 승승장구하던 영웅 벨레로폰은 오만에 빠져 날개 달린 말, 천마 페가소스를 타고 올림포스까지 날아가려는 만용을 부린다. 신들의 분노를 산 그는 결국 제우스가 보낸 쇠파리에 찔려 낙마하여 절름발이에다 장님이 되어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외로이 방황하다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그런가 하면 공예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아라크네는 공예의 여신 아테나에게 도전하는 오만을 부리다가 여신에 의해 거미로 변하는 처벌을 받는다. 길쌈하는 재능을 좀 가졌다고 오만하게 굴다가 평생 허공에 매달려 온몸으로 길쌈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오만에 빠진 인간은 이처럼 예외 없이 신의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오만은 신화시대 영웅들이 잘 걸리는 난치병이었다. 이 난치병 환자들은 바로 ‘신들이 싫어하는 사람들(호모 테오미세토스)’이다. 그들은 정점으로 날아오르게 한 바로 그 날개 때문에 추락한다. 그리스인들은 그것을 신의 처벌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만에 대한 처벌은 부메랑과 같은 것이다. 재산이든, 재능이든, 권력과 명예든 간에 남들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오만에 빠져 추락하는 것은 그것 때문에 상처받은 주변 사람들의 질투와 원한이 복수의 화살로 뭉쳐 자신에게 다시 되돌아오는 것일 수도 있다. 니오베가 당하는 비극은 레토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데서 비롯된 것처럼. 오만의 반대는 겸손이다. 겸손은 비굴과는 구별해야 한다. 남 앞에서 자신감 없이 굽실거리는 것은 아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이 받을 상처를 미루어 짐작하고 오만을 떨지 않는 것이다. 잘났다고 우쭐대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화살을 떠올리면 겸손할 수 있을 것이다.
탐욕이나 오만과는 거리가 먼 이상형의 모습을 그려본다. 겉으로는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는데 왠지 모르게 고귀한 품격이 은근히 풍겨 나오는 사람. 누가 보더라도 큰 인물인데 떠들썩하게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머리를 숙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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