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로 공부를 하면서 내 생각들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아침에 글을 쓴다. 어제부터 좀 무겁고, 호흡을 길게 갖고 읽어야 할 내용은 블로그에 남기기로 했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몇일 전 부터 고민한 것이 우리 사회가 진영으로 나뉘어 치킨게임을 한다. 왜 그럴까? 중앙일보의 윤석만 기자의 글을 읽고, 그 이유를 좀 알아차렸다.
미국보다 더 미국다운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물결이 들어 온 이후, 끝없는 경쟁 속에서 '인문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트럼프 식 가짜 민주주의가, 소위 '포퓰리즘' 정치가 이루어지면서 이다. 윤석만 기자는 트럼프 식 가짜 민주주의를 3A로 요약하였다.
- 반-자유주의(Anti-liberalism)
-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 '대체 가능한' 가짜뉴스)
이 세 가지는 인문정신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인문정신은 자유주의, 지성주의 그리고 사실주의이다. 우리 사회도 이러한 거대 담론이 실종되어, '이상한' 말 장난만 난무하고, 언론은 선정적인 그 내용을 퍼 나르기만 한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노무현)
서울대 정치학과의 박원호 교수는 자신의 한 칼럼에서 "트럼프는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정치적 리더십은 선동보다 모범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의 길은 그 노정에서 구성원들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책무를 고민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이를 정치학에서는 '포퓰리즘'이라 부른다고 했다. 경계할 일이다.
미국 대선이 보여주었던 지지층의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았다)' 현상이 우리 사회에도 존재한다. 맹신적 팬덤 정치이다. 미국에서의 책임은 도널드 트럼프이다. 그가 민주주의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윤기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본다. "트럼프 식 가짜 민주주의는 3A로 요약 된다. 반-자유주의(Anti-liberalism)반-지성주의(Anti intellectualism),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 가짜뉴스). 지난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는 러시아 댓글부대(IRA)의 가짜 뉴스 덕을 보았고, 당선 뒤에도 그는 비판을 가짜뉴스로 치부하고 '대안적 사실'이라며 거짓말도 서슴치 않았다. 그의 반-자유주의는 다양성과 관용, 소수 배려가 사라지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유세계의 동맹국보다 독재정권을 선호하고 헌법 같은 규범을 공개적으로 멸시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잘못된 코로나-19 대응처럼 전문가 의견과 과학적 사고를 무시하는 반-지성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3A, 즉 반-자유주의, 반-지성주의 그리고 대안적 사실(가짜 뉴스)이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곳에서는 패거리 정치가 일어난다. 증거에 기반한 이성적 논의, 이견을 받아들이는 다원성이 패거리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를 쓰러뜨려야 할 적으로 규정할 뿐이다. 우리의 정치 풍토도 그런 모습이다.
패거리의 다른 말이 '팬덤'이다. 정치가들이 문제이다. 그들은 다양한 이익과 갈등을 대의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략적 이슈를 내세워 갈등을 조장하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에만 열을 올린다. '팬덤'을 기초로 동원된 패거리들 사이엔 이성과 합리가 숨 쉬지 못한다. 합의와 토론보다는 '너 죽고 나 사는 '목숨 건' 투쟁만 존재한다.
해결책은 더 두고 보아야 하지만, 서로를 적으로 가르지 말고, 상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바이든의 말차럼. '통합과 치유'가 그 해결책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정치인 뿐만 아니라 3A를 극복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에 당선된 미국 부통령 카멀라 해커스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저절로 주어진 게 아니라 행동을 통해 얻어내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경쟁과 효율이라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소수의 자산가와 고소득자들이 1%대 초저금리 대출 기회를 독점하는 한편, 도덕적 해이라는 채찍으로 서민들에게는 초금리를 강요하고"(이재명) 있다. "강자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경제 특히 금융에서 맹위를 떨치며 공동체의 연대성과 발전 잠재력을 훼손하고 있다."(이재명) 나도 이 지사의 발언에 동의한다. 그는 세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1. 빈부 분리에 의한 신용 등급제를 인정하되 일정 부분은 부자 빈자 구분 없이 금융이익과 손실을 분담하는 것
2. 소수 유통대기업의 자유로운 영업을 허용하되 특정영역에선 중소상공인들에게 우선권을 보장하는 것
3. 위기 상황에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공평하게 손실을 부담하는 것
오늘 아침의 글이 일부가 불편해 하는 정치 이야기이지만, 목표는 공동체를 회복하자는 말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인간은 '도시 안에 거주하는 동물(zoon politikon)'이다. 인간은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집단주의적 유전자를 소유한다. 인간은 외딴 섬에서 홀로 살 수 없다.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 소통하고 도모하여 공동체를 만들어 문화를 공유하고 문명을 향유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민주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결코 안정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한다. 나부터 일상에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깨어 있는 개인이 많아지면, 분명 우리 사회는 성숙한 민주 사회로 세계에 우뚝 설 것이다. 우리는 식민 지배, 냉전과 내전, 군사독재라는 참혹한 역사의 질곡을 거치고도 이런 반듯한 나라를 만든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누리 교수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정치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민주주의자는 어디서나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강한 자아를 가진 자이다. 이런 강한 자아를 갖자는 것이 나의 인문 운동이다. 강한 자아는 공부하고 익혀야 한다. 자유주의 그리고 지성(합리, 과학) 주의 그리고 사실주의를 일상에서 실천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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