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1월 10일)
와인을 만나는 것은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낯설지만 신나는 삶으로의 여행을 감행하는 일이다. 이 여행은 편안하고 안전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낯설고 불편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보통 여행은 불편하고 힘들다. 그러나 거기서 어떤 즐거운 '엑스터시(ecstasy)'를 만난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와인의 세계에 들어가면, 나는 바로 '엑스터시'를 경험하곤 한다.
엑스터시란 현재 안주하고 있는 상태로부터 자신을 강제로 이탈시키는 행위이다. 입신하는 무당에게서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마약'의 이름으로도 쓰인다. 좀 먹물적으로 말해 볼까. 엑스터시란 '자신의 과거나 사회가 부여한 수동적인 상태(state)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투쟁'에서 얻게 된다. 불교에서는 '선정'이라고 하고, 일상의 언어로는 '몰입'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깨어 있음'이란 말로도 사용하고 싶다.
'몰라!'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이름까지도 잊는 것이다. 그러면서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무아지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장자가 말하는 '내가 나를 장례시킨다"는 '오상아', 즉 '자기 살해'를 감행하는 것이다. 그런 엑스터시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망각하고 몰입하는 순간에도 찾아온다. 그래서 '깨어 있으라!'는 말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라!'는 말이고, 그 몰입으로부터 우리는 엑스터시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늘 말하지만, 내가 와인을 마시는 이유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괴로움을 견디는 게 훨씬 수월하였기 때문이다. 와인을 많이 마시면 몸이 괴롭다. 그러나 괴로움보다 외로움이 더 힘들어 와인을 마신다. 외로움을 주고 괴로움을 받는 정직한 거래가 와인 마시기이다. 그리고 와인을 마시다 보니, 와인 맛의 10%는 와인을 빚은 사람이고, 나머지 90%는 마주 앉은 사람이다. 우리는 알코올에 취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 취한다. 내 입에서 나오는 아무 말에 과장된 반응을 보여주는 내 앞에 앉은 사람에게 우리는 취한다. 그는 내 외로움을 홀짝홀짝 다 받아 마시고 허허 웃으면, 우리는 그 맑은 표정에 취한다.
어쨌든 좋은 와인 한 모금은 우리의 몸과 마음 속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왜? 만족스러운 느낌이나 맛 그리고 즐거움과 재미를 주면서 새로운 감각의 지평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이런 감각은 지성이나 이성을 굳고, 경직되게 하는 일을 막아준다. 이런 여가와 놀이가 제공하는 즐거움과 재미가 인간 존재의 더 깊은 중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중심은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하려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까지도 부단히 들락거리는 중심이어야 한다. 여가나 놀이마저 중심으로 건축되어 도달해야 할 것, 발견되어야 할 것, 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으로 남는다면 이것도 삶의 재앙이다. 고전을 읽으며, 철학적 시선, 지성적인 힘을 키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 난 딸의 와인 숍 & 바에서 즐겁고 재미 있는 생활을 한다. 그 일이 나의 밥줄이다. 그 일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중심과 주변의 끊임없는 들락거림을 위해, 아침마다 글쓰기와 공부 그리고 와인을 마시며 장사하기의 들락거림을 한다.
『보물섬』을 쓴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그래서 “와인은 병에 담긴 시(Wine is bottled poetry)”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와인을 우리의 인생과 비교할 수 있다. 첫째, 와인은 살아 있는 생물이다. 사람처럼 나고 자라고 또 병 속에서 숨을 쉬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다 마신 와인 한 병을 ‘시체(Un Cadavre)’라고 부른다. 둘째로는 와인에도 인생의 역경이 있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뒤 달콤한 열매를 맺는 것이 인생에서 승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와인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있다. 실제로 와인은 절정의 순간을 위하여 숙성을 통해 감질나게 기다리는 설렘이 있다. 와인은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하여 인내하는 과정이 우리의 인생과 너무 닮았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깊은 맛"이 나려면, 좋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숙성 시켜야 한다. 삶도 마찬가지일 게다. 음식은 한문으로 쓰면 이렇다. 飮食, 즉 음(飮, 마시는 것)이 먼저이다.
깊은 맛 /김종제
모름지기 배추는
다섯 번은 죽어야
깊은 맛을 얻을 수 있다는데
밭에서 잘 자란 놈을
모가지 잡아채서 쑤욱 뽑아내니
그 첫 번째요
도마 위에 올려놓고
번득이는 칼로 몸통을 동강내니
그 두 번째요
커다란 고무다라에
소금물 뒤집어쓰고 누웠으니
그 세 번째요
고춧가루에 마늘에 생강에
온몸이 붉은 피로 뒤범벅이 되었으니
그 네 번째요
마지막으로 독이란 관에 묻혀
흙 속으로 다시 돌아가니
그 다섯 번째라
푸르뎅뎅한 겉절이 같은 것이 아니라
시큼털털한 묵은지 같은 것이 아니라
쓴맛에 매운 맛에 단맛까지
몇 번은 죽어
깊은 맛을 내는 김치처럼
우리네도
몇 번은 죽었다가
몇 번은 살았다가
곰삭은 인생이야말로
깊은 맛을 지니는 것 아닌가
잘 익은 저 주검을
손으로 집어
한 입 먹어주는 것도
生에 한 발 더 깊이 빠지는 일이겠다
세상의 귀한 것이 다 그렇듯이, 음식은 절제할 때 빛난다. 술은 수와 불의 합성어로 술 속에는 불이 들어 있다. 적당한 불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지만, 지나친 불은 우리를 다 태워 버린다. 음식의 식(食)도 마찬가지이다. 내게 어울리는, 적당한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몸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오늘 내가 먹고 마신 것이 '나'라는 말이 있다. 그래 절제된 식생활은 자신을 수련하고 건강하고 이상적인 인간으로 훈련시키는 필수 조건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자신이 배가 부르면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어도 먹지 않는다는데…
그렇다고 금식(禁食)도 건강을 해치고, 우리에게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앗아간다. 한 번 아파 본 사람은 중용이라는 정교한 지점을 안다. 금식이나 폭식이 아니라, 적당한 식습관이 중요하다. 음주도 마찬가지이다. 석가모니가 말하는 중도(中道)는 오랫동안 인내의 수련을 거친 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고, 자기 관리의 영역이라는 배교수의 말은 귀담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건강한 음식을 적당히 먹으려고 애를 써야 한다. 그 이유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건강은 왜 필요한가? 금방 사라져 버리는 인생을 가치 있게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건강을 잃으면,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없고, 우리가 열망하는 고유한 임무에 몰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지난 월요일부터 와인에 푹 빠져 있다. 하루 약 60여 병의 와인을 평가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만찬마다 와인을 실컷 즐긴다. 어제는 프랑스 국적을 가진 심사위원들과 저녁을 즐겼다. 나는 평소 내가 자주 가던 막걸리집 <대전 부르스>에 가서 대전 방식의 바를 보여주었다. 다들 너무 즐거워 했다. 그 집에 있는 5 종류의 막걸리와 10여 종의 안주를 즐겼다. 특히 홍어찜이 나왔을 때 암모니아 향으로 기겁을 했다.
그리고 복합와인문화공방 <뱅샾62>에 와서 샴페인(프랑스어로는 샹빠뉴)의 밤 세미나를 하였다. 초대 강사는 토마 킴 데뤼에(Thomas Kim Desruets)였다. 그리고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프랑스 신부님 그리고 프랑스 심사위원 3 명 그리고 참가 신청자 들 10 명이 넘었다.
우리는 초대강사의 이름이 라벨인 <토마 킴 데뤼에(Thomas Kim Desruets)> 샴페인을 다른 샴페인들과 비교하며 마셨다. 이 샴페인은 1888년부터 가업을 이어온 포도 농가, 데뤼에(Desruets) 가문의 와인이다. 현재 이 샴페인 하우스의 주인이 5번째 후계자로 한국계 프랑스인이다. 두 형제로 토마 데뤼에와 마티아스 데뤼에이다. 이들의 한국 이름은 김영현과 김은석이다. 이 두형제는 한국적인 뿌리와 프랑스 문화를 담은 샴페인 <토마 킴 데뤼에(Thomas Kim Desruets)>을 만들고 있다. 현재 토마가 경리단 길에서 와인 바를 하며 이 샴페인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대전아시아와인트로피>에서 함께 심사위원을 하면서 이다. 작년에는 명함을 주고 받았을 하다가, 이번 2021년 심사로 대전에 왔기에 모실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우리는 올해부터 대전에 있는 와인 레스토랑과 바를 중심으로 이벤트를 계획했었다. 그러나 광고 부족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내년에는 와인 품평회를 전후로 풍성하게 준비할 생각이다. 한국에 소개된 토마에 대한 영상 하나를 공유한다.(양해를 구하지 안 했지만, 이미 유튜브에 올라 와 있는 거다.)
프랑스 샹파뉴 오빌레 마을, 1888년부터 이어온 포도 농가 데뤼에家의 후계자 두 형제
글을 마치며, 다시 한 번 더 샴페인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지 정리를 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다시 공유한다. 뀌베에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당분과 효모의 혼합액을 첨가해 병에 넣어 밀봉 시킨 각각의 와인은 샹빠뉴 지방의 백악질 토양을 파서 만든 어둡고 서늘한 지하 저장고에 보관된다. 이 지하 저장고들은 샹빠뉴 지방의 관광코스에 들어가 있을 만큼 그 규모가 크다. 가장 유명한 샴페인 제조사인 모에 앤드 샹동 사의 경우 지하 저장고의 길이가 28㎞에 이르며 1억 병 정도가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각 와인은 이 저장고에서 9~12개월 동안 보관된다. 이 기간 동안 병 속에 첨가된 당분과 효모에 의해 발효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탄산가스가 발생한다. 이때부터 질 좋은 샴페인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시작된다.
① 병 속에 발생된 탄산가스를 잃지 않으면서 효모 찌꺼기 같은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우선 각 와인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쀠삐트르(Pupitre)라고 부르는 45도 정도 경사진 선반에 병목을 밑으로 향하게 한 채 꽂아 놓는다.
② 병 속의 찌꺼기들이 병목 부분으로 잘 모이게 하도록 각 병을 규칙적으로 진동 및 회전시켜야 한다. 이를 '르 르뮈아쥐(le remuage)'라고 한다.
③ 그런 다음 병목 부분을 찬 소금물에 담갔다가 급속하게 순간 냉각 시켜 얼리고 침전물을 그림같이 빼낸다. 이를 '르 데고르주멍(le dégorgement)'이라고 한다.
④ 르 도자쥐(le dosage): 탄산가스 압력으로 침전물이 빠지는 과정에서 와인도 어느 정도 유실되는데, 이를 샴페인과 설탕을 섞은 혼합액으로 보충하는 것을 이렇게 말한다. 이 때 혼합액의 당분 함량에 따라 샴페인의 스타일이 결정된다.
샴페인 제조 과정에서 가장 많은 질문이 뀌베(cuvée)라는 말이다. 뀌베라는 말은 샴페인을 만들기 위한 기본 와인이다. 특히 첫 번째 압착에서 얻어진 포도즙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최고급 샴페인이라는 뜻이다. 샴페인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우선 수확한 포도는 품종별로 압착한 후 바로 발효에 들어간다. 포도껍질에 함유되어 있는 색소가 포도즙을 물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압착과정은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며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적 포도도 사용하기 때문이다. 발효를 통해 알코올과 탄산가스가 생성된다. 탄산가스를 모두 제거한 각각의 와인을 여러 비율로 혼합해 샴페인을 만들기 위한 뀌베를 만든다. 뀌베는 포도를 수확한 그 해에 만든 와인 뿐만 아니라 이전에 만들어 저장 중인 와인을 섞어 제조하기도 한다. 샴페인 제조업체들은 자신만의 혼합비율이 있는데, 이것이 개성 있는 샴페인을 만드는 비결이다. 그러니까 뀌베는 여러 와인을 블랜딩한 혼합와인인 셈이다. 그래서 샴페인의 라벨에는 빈티지를 표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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