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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건강하다는 말은?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이다. 내 마음이 가는 길이 나 자신으로 가는 길이어야 한다. 그렇게 나와 나 자신이 하나 될 때, 나는 내 삶을 살 수 있다. 지금 내 마음이 가는 곳이 어디인가 묻는다. 왜? 마음이 가면, 그 곳에 기운(氣運)이 모이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그 기운이 가는 길에 혈(穴)이 따라 가기 때문이다.  혈이라는 말은 풍수지리설에서 쓰인다. "'정기(精氣)"가 모인 자리"라 한다.  한의학에서는 "침을 놓는 올바른 자리"로 쓰인다.

흔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림프 순환이 저하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림프구 수를 감소 시켜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파괴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혈자리를 자극하면 주변 조직의 피의 순환이 원활해 진다. 그러니까 흐름이 좋아지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자리를 눌러 호흡을 조정하고 긴장을 완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사람은 정(精), 기(氣) 신(神)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가지가 비슷비슷한 말로 정신(精神), 정기(精氣)라는 말처럼 서로 어울려 인간의 정신 작용을 뜻한다. 그러나 약간의 뉘앙스(미묘한 차이)는 있다.
▪ 정(精)이 '정력(精力)'이라고 할 때처럼 성인(成人)의 활동력을 지탱해 주는 기본적인 요인으로 몸이고,
▪ 기(氣)가 '기운(氣運)'이나 '원기(元氣)'라고 할 때처럼 사람을 건강하고 힘차게 살아가게 하는 힘, 에너지라면,
▪ 신(神)은 '신난다'고 할 때처럼 사람에게 활기와 흥을 돋워 주는 힘으로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가 '기'이고, 그 에너지의 활동은 '정'이고, 그 결과로써 '신'을 얻는 데, 그 때 우리는 '신바람이 난다'고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신'이란 그리스어의 '프시케(psyche)'나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다이몬(daemon)'이나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Henri Bergson)이 말하는 '엘랑 비탈(elan vital)'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좀 더 부연 설명을 한다. 정(精)은 몸을 말하며, 정력이란 말처럼, 우리의 활동력을 말한다. 신(神)은 마음으로 우리가 말하는 정신이다. 정신력이란 말할 때 신이다. 이 '정'과 '신'에 기(氣)가 들어갈 때 우리는 생명체가 된다. 정리하면, 사람은 '마음이 가면 기운이 모이고, 기운이 가는 곳으로 혈이 따라 가며 서로 다 소통하게 한다. 한 마디로 막히지 않고 흐름이 좋게 한다. 기(氣)는 어디서 오는가?  호흡, 즉 '숨 쉬기'이다. 들숨과 날숨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숨을 잘 쉬는 것이다. 기가 막히면 병이고, 나가버리면 몸은 시체가 되고, 정신은 귀신이 된다. '기통 차다'는 말도 기가 소통이 잘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들숨과 날숨을 잘 조절해야 한다. 사람이라는 생명체는 기의 작용이 매우 중요하다.

그럼 건강하다는 말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숨을 잘 쉬는가? 단전의 힘을 키워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며 조화를 꾀한다.
• 밥을 잘 먹는가? 이 문제는 먹고 마시는 것까지 따지는 것이다. 그리고 음식을 먹은 만큼 잘 배설해야 한다.
• 마음이 편안한가? 스트레스 문제이다. 살면서 스트레스를 안 가질 수 없다. 그러니 문제는 마음이 긴장한 만큼 다시 이완 되어야 한다. 그러니 긴장의 양만큼 이완의 양도 많아야 한다. 우리가 살면서 긴장 없이 살 수 없다. 그러나 과도한 경쟁, 지나친 욕심, 과한 피로 등이 스트레스를 만든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심해지며 계속 이어지면 병이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 이완 하는 다양한 방법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운동이나 취미 생활 그리고 음주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이나 명상이나 참선을 통해 이완 할 수 도 있다. 가끔싹 여행하는 것과 인문학 공부를 통해 구분하고 분류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도 권유한다.

이완은 익숙한 일상으로 벗어나 낯설지만 신나는 삶으로 옮기는 감행을 통해 엑스터시(ecstasy)를 만나야 한다. 엑스터시란 현재 안주하고 있는 상태로부터 자신을 강제로 이탈시키는 행위이다. 입신하는 무당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좀 어렵게 말하면 엑스터시란 과거나 사회가 자신에게 부여한 수동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마음에서 얻게 된다. 실제 방법론으로는 '몰라'하면서 자신의 이름까지도 잊는 것이다. 그러면서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무아지경'으로 들어가는 감행이다. 아마도 장자가 말하는 오상아(吾喪我), 자신을 장례시키는 자기 살해 행위이다. 이를 통해 긴장을 해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