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1월 6일)
오늘은 토요일로 와인 이야기를 하는 날이다. 이젠 소위 '신세계 와인"이라 부르는 지역으로 와인 여행을 떠난다. 현재 세계 와인 생산은 편의상 ‘구세계(Old World)’와 ‘신세계(New World)’, 북반구의 전통적인 와인 생산국가와 남반구의 신흥 생산 국가들로 양분되어 있다. 신세계에 해당하는 남반구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 국가는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칠레, 아르헨티나, 뉴질랜드 등이 있다. 포도는 위도 상으로 북반구의 지중해 연안에서 북위 50도까지와 이와 비슷한 기후를 가진 남위 30도~50도 사이에 있는 남반구에서 재배되고 있다. 세계 와인 시장에서 신세계 와인 생산업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빠른 속도로 구세계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신세계 와인 생산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포도 재배에 이상적인 기후와 토양을 가지고 있으며, 유럽의 자본과 기술이 일찍부터 진출해 구세계의 전통적인 와인 생산 국가들에 비해 품질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대신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와인 소비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아시아 시장에서 저변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전통적 생산 방식을 고수해온 프랑스는 최고급 와인에서는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중저가 와인에서는 균일한 품질과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신세계 와인에 밀리고 있다. 유럽 와인업계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내수 위축이다. 젊은 층에 점점 술을 덜 마시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세계 1위의 와인 소비국이던 프랑스가 미국에 1위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부터 우리는 현대와인의 선구자인 미국 와인에 대해 살펴 본다.
미국의 와인 생산 역사는 짧다. 프랑스의 1855년도 그랑 크뤼 끌라세(Grand Cru Classé)와 같은 사건도, 이탈리아의 독특한 품종과 개성도, 독일의 QmP 등급의 최고봉인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와 같은 엄격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미국은 현재 세계 와인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에 이어 세계 네 번째의 와인 생산 국가가 되었다. 와인 소비는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3위 국가이며, 와인 수출은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에 이어 세계 5위 국가이다.
전통이나 명성은 유럽 산 와인들에 뒤지지만 가격이 싸면서도 상대적으로 품질이 좋은 와인들로 점차 명성을 얻어 가고 있다. 1920년에서 1933년 까지 금주 법 시행, 대공황과 제2차 세계 대전 등을 잇따라 겪으면서 침체를 거듭했던 미국의 와인 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초이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연중 온화한 날씨로 포도 재배에 이상적인 기후조건을 가진 캘리포니아 주에서 와인 생산이 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곳에서 와인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아울러 새로운 양조기술이 개발되면서 최근 30년 사이에 미국의 와인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미국은 이 때부터 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하고 유럽의 전통적인 와인 제조과정을 개선하면서 새로운 포도재배와 양조에 대한 학문을 정립하고 와인 산업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를 가장 잘 보여준 곳 중에 한 곳이 미국 캘리포니아의 데이비스(Davis)에 있는 UC Davis 대학이다. 이 대학에 있는 포도주학과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의 수많은 샤또(양조장)에서 일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 UC Davis의 이 학과에서 과학적인 와인 생산 법을 배워 가서 적용을 할 정도이다. 또한 미국의 학생들은 이 곳에서 공부를 한 후 유럽의 유명한 포도원에 취업을 하여 그곳의 전통적인 와인 생산법과의 접목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와인 콘테스트에서 유럽 산 와인들을 제치고 미국와인이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유럽은 전통적으로 포도밭에 등급이 있고 제조 방법 또한 법으로 규제하고 있어 새로운 시도가 불가능하지만, 미국은 현대적인 포도 재배 및 양조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며 다양한 실험을 통해 품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6년 5월 24일 파리의 한 호텔에서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은 프랑스-캘리포니아 와인을 놓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상표를 가리고 하는 시음)을 했다. “신대륙 와인, 특히 미국 와인은 와인의 지존인 프랑스 와인의 발꿈치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프랑스 측 의도가 다분히 풍기는 행사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레드와 화이트와인 둘 다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이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언론들은 이 행사를 ‘파리의 심판’이라 불렀다.
그리고 2006년 5월 24일 재대결을 벌였다. 와인 전문가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나파밸리와 영국 런던에서 동시에 30년 전과 똑같은 와인들을 놓고 브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맛을 감별 했다. “당시에는 숙성이 얼마 안 된 ‘어린 와인’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웠다.”는 게 이번 행사를 마련한 프랑스 측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캘리포니아 와인의 완승으로 끝났다. 고급 와인의 품질을 보증하는 ‘장기 숙성’ 분야에서도 캘리포니아 와인이 프랑스 와인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재대결에서 1위를 차지한 와인은 30년 전에는 5위를 했던 캘리포니아 <릿지 몬테 벨로 카베르네> 1971년산이었다. 릿지 와인의 산지는 나파밸리가 아닌 산타 크루즈이다. 30년 전에 1위였던 <스태그스 리프 와인 샐러스 카베르네> 1973년산은 이번에 2위에 오르며 30년 전의 명성을 그대로 유지했다. 보르도 와인 중에는 <샤또 무똥 로췰드>가 최고 평가를 받았으나 6위에 그쳤다. 캘리포니아 와인이 1~5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최고 수준의 심판진이(프랑스인도 포함) 눈을 가린채 ‘블라인드 테스트’로 맛과 품질을 감별하였기에 공정성 논란이 일 수 없다.
Tip: 2006년 와인 시음회 순위
1위: 리지 몬테 벨로 카베르네(Ridge Monte Bello Cabernet) 1971
2위: 스태그스 리프 셀러스 카베르네 1973
3위(공동 수상): 하이츠 마사스 빈야드 나파밸리 카베르네 1970
마야카마스 빈야드 카베르네 1971
5위 클로 뒤 발 나파밸리 카베르네 1972
6위 샤또 무똥 로췰드(Château Mouton Rothschild) 1970
7위: 샤또 몽로즈(Château Montrose) 1970
8위: 샤또 오브리옹(Château Haut-Brion) 1970
9위: 샤또 레오빌 라 카스 1971
10위: 프리마크 애비 나파밸리 카베르네 1969
그리고 오늘 아침도 칼릴 지브란의 세 번째 시를 함께 읽는다.
아이들에 대하여/칼릴 지브란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갈망하는 큰 생명의 아들딸이니
그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을 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또 그들이 그대와 함께 있을 지라도 그대의 소유가 아닌 것을
그대는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그대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아이들의 영혼은
그대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 조차 갈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가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고 애쓰지는 말라
큰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 결코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그대는 활, 그리고 그대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화살처럼
그대로부터 쏘아져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활 쏘는 자인 신은 무한의 길 위에 과녁을 겨누고
자신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온 힘을 다해
그대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그대는 활 쏘는 이의 손에 의해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만큼
흔들리지 않는 활 또한 사랑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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