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지난 주 계룡산에 내려오면서, 물이 고여 있는 연못을 찍은 것이다. 이상국의 <단풍>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단풍/이상국
나무는 할 말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잎잎이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다
봄에 겨우 만났는데
가을에 헤어져야 하다니
슬픔으로 몸이 뜨거운 것이다
그래서 물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계곡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나무는 (…) 가을에 헤어져야 하다니 슬픔으로 몸이 뜨거운 것이다/그래서 물감 같은 눈물을 흘리며/계곡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물감 같은"에서 물은 색(色)의 순수 우리 말이다. 마시는 물과 소리는 같지만, 뜻이 다른 말이다. 물은 순수한 우리 말이다. 우리는 미술시간에 ‘물감'으로 하얀 종이를 채웠고, 가을이면 뜰 안의 봉숭아로 손 톱에 ‘꽃 물'을 들였다. 젊은이는 검은 머리를 화려하게, 연세가 지긋한 분은 흰머리를 검게 ‘물’ 들이며 자신을 가꾼다. 간혹 ‘물’이 나쁜 느낌으로 쓰일 때도 있다. 빨래하다가 흰옷에 다른 ‘물'이 들었다거나, 순수하던 아이가 ‘물’ 들었다고 할 때는 오염의 뜻으로 쓰인다. 자신의 아이를 신뢰하는 부모님들이 ‘물들어서...’라고 할 때는 제 바탕을 지켜주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가 진하게 느껴진다. 봄이면 새로 돋는 꽃들에 땅이 물들고, 가을이면 선명한 하늘빛 아래 단풍이 물든다. 해가 솟아오르면 바다가 물들고, 해질녘엔 하늘이 붉게 물든다.
지난 11월 2일에 '착한 웃음'으로 기억하고 있는 희극인 박지선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여성 희극인 특유의 망가지는 외모 개그로 웃음을 주었다면, 박지선은 오히려 스스로 낮추고 희생하는 개그로 대중에게 웃음을 주는 '반전 매력'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보다도 더 그녀의 매력은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자신을 비하하지 않고도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착한 웃음'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항상 남보다 더 튀어야 살 수 있는 무한 경쟁 구도와 다양한 개성이 공존하는 방송 세계에서, 자신은 상처를 감수하면서도 타인을 자극하지 않고 웃음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하였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
배연국 칼럼니스트에 의하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단연 자살률 1위다. 자살자 수는 2000년 6437명에서 지난해 1만 3799명으로 두 배 넘게 불었다. 매일 38명이 목숨을 끊는 셈이다. 같은 기간 교통사고 사망자가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것과 대조적이다. 똑같은 목숨이지만 사회의 대응이 다른 탓이 주된 요인이다. 예방 대책을 강화하는 교통사고와는 달리 자살 예방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을 떠들썩하게 추앙하고 미화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사회 문법이 되면서, 심한 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면서 살아 가면서 숙고(熟考)하는 훈련을 잃었다. 다시 말하면 인문학의 부재 현상이다. 후마니타스(인간 다움)를 추구하는 인문학의 핵심 중의 하나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에서 잘 설명합니다.
"자기 자신을 제일 아끼는 사람을 필라우토스(philautos)라고 부르는데, 창피한 말로 낮춰 부르는 것이다. 열등한 사람은 늘 자기를 위해 행동하는 듯하며, 못된 인간일수록 이기적인 것 같다. 반대로 훌륭한 사람은 고귀함을 이유로 모든 것을 행하며, 친구를 위해 행하고, 자기 자신의 것은 미루어 놓는다. 따라서 일반적인 '자기애'는 열등한 것이다. (…)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언제나 올바른 일을 행하는 데에, 혹은 절제하는 일에, 혹은 탁월성을 따르는 것에 다른 누구보다 더 노력을 기울인다면, 누구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며 그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는 그가 고귀한 것을 행함으로써 자신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올바른 일을 행하는 것", "절제하는 일", "탁월성을 따르는 것"에서 남들보다 앞서는 것에서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이 참된 사람이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우선 자신을 기쁘게 하며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탁월함의 수준까지 내 자신을 사랑하되 올바른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 또 절제함에 있어서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또 잘 보여주는 이가 에덤 스미스이다. 그의 『도덕감정론』의 인간은 '호의를 베푸는 이기주의자'이고, 『국부론』의 시장은 이런 인간들이 뛰노는 곳으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곳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기심이라는 표현이 'selfishness(제멋대로임, 이기적임- 남의 이익을 침해해서라도 내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아니라, 'self-love(자기애, 자기에 대한 사랑)'라는 점이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은 self-love이다. 그 말은 내가 나를 사랑하듯이 남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한다면 남을 대할 때도 다르다. 남이 내게 손해를 입히면 싫은 것처럼, 나도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안 된다. 그건 양심이 충고를 하는 소리이다. 요약하면, 애덤 스미스가 전제한 것은 시장에 나온 인간이 selfishness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self-love를 가진 인간이라는 점이다.
애덤 스미스는 타인에게 호의를 가진 자기사랑의 인간들이 존재하는 시장이 속임수가 없는 공정한 가격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속에는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때문에 독점도 없고 착취도 없다. 임금이나 이윤이 특정한 사람에게 쏠리는 현상도 제한된다. 그리고 분업으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이것은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만들게 한다. 이것이 애덤 스미스가 찾은 신의 질서의 법칙이다. 이 때 국가는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리고 공공기관과 공공사업 운영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박지선의 자살 소식을 듣고, 물들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려다 여기까지 왔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이 있다. 너무 선정적으로 그녀의 소식을 이야기 하다가, 나도 이런 효과에 물들이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우리의 삶은 "자기 자신을 향해 쉼없이 걷는 일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와 하나가 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 베르테르 효과란 인기 연예인의 자살 소식을 접한 후, 이를 따라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1774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시작된 심리적 용어이다.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연인 로테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청색 코트와 노란 조끼를 입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소설이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주인공처럼 노란 조끼를 입고 권총으로 자살하는 이들이 즐비했다. 자기애, 자기-사랑의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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