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삶을 살고 싶으면, 항상 선한 말을 하고 선한 일을 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 속을 선한 것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방심放心하지 말고) 깨어있으면서, 남모르는 속마음을 조심하라.
악의 싹이 보이면, 바로바로 제거하라.
이것이 사물의 실상을 파악하는 격물치지 格物致知 다음 조목인 생각을 성실하게 하는 ‘성의 誠意’ 공부이다.
[생각이 말과 행동을 바꾸고, 그러면 태도가 바뀌고, 그러면 운명이 바뀐다.]
성의는 생각을 성실하게 바꾸어라. [아마 여기서 성실이란 유교의 성실지심이 말하는 것처럼 변덕을 부리지 말고, 일관되게 말하고 행동하려면 생각을 꾸준하게 잘 선한 생각으로 가득 채우라는 것일 것이다.]
1. 선은 진심으로 좋아하고, 악은 진심으로 미워하라. [호선오악 好善惡惡]
- 악은 악취(나쁜 냄새)를 미워하는 것처럼 미워하고, 선은 어여쁜 여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좋아하란다.
-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진심으로 선을 좋아하고 실천함)을 일러 ‘스스로 뿌듯함(자겸, 自謙, 겸손하여 자기를 낮춤이라고 해석되지만, 나출수록 스스로 뿌듯해진다)’이라 이른다.
-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음’을 삼가야 한다. (신독, 愼獨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감)
생각(意)이란 자신은 절실하게 알지만 남은 아직 모르는 자리이다. 그래서 ‘속임수’와 ‘사기’가 횡행할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격물치지의 공부를 한 후, 남모르는 곳에서도 “자신을 결코 속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자기기만(自欺, 자기의 양심을 속임)을 조심해야 한다. 성의(誠意, 생각이 성실하다)는 것은 좋고 나쁨(善惡)의 판단을 감정에 정직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너희는 그저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惡)에서 나오는 것이다. “ (마태오, 5:37)
속마음을 속이지 말고, 맞는 것은 맞았다, 틀린 것은 틀렸다고 분명히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상의 말‘은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의란 ”자신의 속마음에 싹튼 생각을 잘 살펴보아, 악한 생각은 제거하고 선한 생각은 실천하기를 ’진심‘으로 하는 것’이다. 신독(愼獨)이 여기서 나온다. 홀로 있을 때에도 어긋남이 없도록 언행을 삼간다. 항상 뿌듯하고 보람찰 것, 즉 자겸(自謙, 겸손하여 자기를 낮춤)의 상태로 산다. 간단하다 선인 줄 알면, 실천하고, 악인 줄 알면, 그것을 진심으로 제거해가는 것이다. ‘뿌듯한 마음’이 있어야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생긴다. 호연지기란 (1)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원기 ( 2) 도에 뿌리를 박고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울 바 없는 도덕적 용기 (3) 사물에 해방되어 자유스럽고 유쾌한 마음, 호기(浩氣)라고도 한다.
이 호연지기, 뿌듯한 마음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여 타인과 자신을 공정하게 판단하는 하늘이 부여한 양심과 만날 때 나온다.
양심이란 깊은 마음속에서 혈구지도(絜矩之道)를 실천하라고 명령(天命)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마음이며, 이 양심이 자신을 칭찬해주니 당연히 뿌듯한 것이다.
악한 생각을 제거하라는 <過去七佛通戒>를 소개한다.
제악막모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모든 악은 일체 짓지 말고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라
이렇게 하면 자신의 생각(意)이 청정해진다.
오직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악이란 나 하나 살자고 남들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고, 선이란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것이다.
진정한 성의는 격물치지를 통해 완성되게 된다. 사물을 정확히 파악하여 선과 악을 구분치 못하고서, 어찌 선을 실천하고 악을 제거하는 데 ‘진실’을 다하는 성의 행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듯 격물치지와 성의 공부는 표리를 이루며 함께 닦아져야 한다.
남모르는 은밀한 생각을 ‘얼마나 성실하게 하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사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읽어 내느냐? “와 함께 참다운 도덕을 실천하는 중요한 관건이 된다.
2.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편안해진다.
’속마음이 성실하면 외면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 부가 집안을 윤택(潤澤, 윤기 있는 광택)하게 하듯이,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생각을 성실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남을 나처럼 여기는 역지사지의 양심이 있는 바, 역으로 나를 남처럼 보는 개관적인 관점도 견지할 수 있다.
성실(誠, 言+成)이란 말(言)을 현실화하는(成)하는 것으로, 언행일치(言行一致)를 상징하는 덕목이다.
성자 물지종시 불성무물
誠者 物之終始 不誠無物
성실함은 만물의 시작과 끝이니, 성실하지 못하면 만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진실을 알고 있어도, 실천하지 않는 진실은 만물을 이루어낼 수 없다.
”좋은 열매를 얻으려거든 좋은 나무를 길러라. 나무가 나쁘면 열매도 나쁘다.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 수 있다.(...) 결국 마음에 가득 찬 것이 입으로 나오는 법이다.“(마태오 12:33)
”늘 깨어 있으라.“ (마르코 13:37)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면서, 남모르는 속마음을 조심하라.
어떻게? 악의 싹이 보이면 바로바로 제거하라. 이것이 사물의 실상을 파악하는 격물치지이고, 다음 조목인 생각을 성실하게 하는 성의 공부이다. 결국 신독(愼獨)이란 “항상 깨어 있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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