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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10월 (하늘연달 : October) 에는 내 마음이 은혜를 알게 하소서."

매일 아침마다 페이스북의 내 담벼락에는 <과거의 오늘>이라는 그룹에서 예전에 올린 글들이 다시 올라온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다시 <인문운동가 박한표>로 묶은 그룹에 쌓아놓는다. 2년 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시가, 오늘 아침 내 기분을 달래 준다. 안도현 시인의 <가을의 소원>이다. 이 시를 다시 읽고 가을이 가기 전에 이렇게 소원하기로 다짐했다. 시인이 바라는 가을의 소원은 다음과 같이 9개이다.
-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 햇볕이 슬어 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 혼자 우는 것
-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
-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시인 이해인 수녀님은 <새해의 기도>라는 시에서 10월에는 이런 기도를 하시고 싶다 하셨다.
"10월 (하늘연달 : October) 에는
내 마음이 은혜를 알게 하소서
나의 오늘이 있게 한 모든 이들의 은혜가
하나하나 생각나게 하소서"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책 읽고 건너가기" 이 달의 책 <데미안>을 다시 읽고 있다. 역시 좋은 책은 매번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최진석 교수는 책을 "놀 듯이 재미 삼아 한가롭게 읽으면" 안 되고, "온 마음을 집중하여 수고하면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래야 조금이라도 건너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독서는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아니라 수련"이라 주장한다. 나는 요즈음 그 수련하는 마음으로 <데미안>을 읽고 있다. 어제는 제5장을 읽었다. 그 곳에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민음사, p 124)라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문장이 나온다.

우리가 자신을 둘러싼 하나의 틀을 뜨리고 비로소 '참 나'에게로 나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다는 말로 나는 해석한다. 그리고 내 경계를 초월하려는 마음으로 경계 위에서 설 때 만나는 신이 압락사스라고 나는 보았다. 그래 압라사스라는 단어를 구글에 물었더니, '아브락사스'라고 한다. 화자 싱클레어는 이  압락사스를 찾아가다.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난다. 그가 신성과 마성, 남성과 여성, 인성(人性)과 수성(獸性), 선과 악을 다 갖추고 있는 신비로운 신에 대하여 이야기 해준다. "압락사스는 (…)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과제를 지닌 어떤 신성의 이름쯤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민음사 p.125) 이 말을 듣고 화자는 데미안과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한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존경하는 신 하나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는 함부로 갈라놓은 세계의 절반만 나타낸다고(그것은 공식적이고, 허용된 <환한> 세계였다. 그러나 세계 전체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화자가 그려내는 꿈의 영상, 문장(紋章)에 그려진 그림, 구름의 모습 등이 압락사스의 모습을 가진다. 화자가 하는 생각을 공유해 본다. "희열과 오싹함이 섞이고, 남자와 여자가 섞이고 지고와 추악이 뒤얽혔고, 깊은 죄에는 지극한 청순함을 통해 충격을 주며, 나의 사랑의 꿈의 영상은 그러했다. (…) 사랑은 천사상이며 사탄이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였고, 인간과 동물, 지고의 선이자 극단적인 악이었다.. 이 양극단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Ibid, p. 128) 책의 맨 처음에 적어 둔 문장,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화자는 압락사스라는 신을 찾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 그 꿈의 영상에 집착하다가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와 만나게 되고, 자신의 어두운 영혼에 대한 절실한 귀기울임과 배화(拜火)를 경험한다. 화자는 또 하나의 스승을 만난 것이다. "철학한다는 건 <아가리 닥치고 배 깔고 엎드려 생각하기>라고 하오." "배화는 인간이 창안해 맨 것 중 가장 멍청한 짓만은 아니었어."

배화(拜火)라는 단어에서 '배(拜)는 절할 배자이고, 화(火)는 불 화자이다. 그러니까 불에게 절을 하는 종교이다, 불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신앙이다. 조로아스터교가 그렇다. 그러니까  '배화교'는  조로아스터교이다. 조로아스터는 '낙타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유목민의 후손임을 짐작하게 하는 이름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아후라 마즈다를 최고의 권위의 신으로 세웠다. 아후라 마즈다는 그 시기 언어로 '지혜(마즈다)의 주인(아후라)'을 뜻한다. 이제까지 다신교 전통에서 신들의 세계에는 선신과 악신이 뒤섞여 있었고, 희생 제물을 드리기만 하면 무조건 복을 주는 신들을 따르는 숭배자들이 많았다. 인드라가 대표적이다. 이 신은 숭배자가 죄를 지었는지 올바르게 살았는지에는 신경 쓰지 않고 권력과 부를 베풀었다. 인간의 욕망에 봉사하는 비윤리적인 신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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