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람은 다 때가 있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산다는_것의_의미 #이시영 #다_때_가_있다. #관계 #활동 #접속 #선택 #책임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월 4일)

오늘의 화두는 '사람은 다 때가 있다'는 거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혹한 겨울도 지긋지긋한 어려움도 때가 되면 지나간다. 칠흑같은 어둔 밤도 먼동이 터온다.

1.
찌질, 비겁, 구차, 추악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윤 때문에 어제 저녁은 속상했다. 그래 와인을 과하게 마셨고, 연초부터 일상이 무너졌다. 그래 다시 어떻게 일상을 회복하여야 하는가와 왕관의 무게라는 책임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2.
생명은 근원적으로 '활동'과 '네트워크'를 좋아한다. '관계'와 '활동'이 생명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소유와 성공, 곧 돈과 물질에 관련된 것만 매달리면 꼭 막히게 되고, 끝에서는 허무할 뿐이다. 살맛이 나려면, 어떤 활동을 하고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 계속 어딘가로, 누군 가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길 위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난다고 할 때 그걸 연결해 주는 건 지성밖에 없다. 사업으로 사람을 만나는 건 교환관계에 들어가는 거다. 그런데 지성을 통해 누군가와 친해지면 그 공간이 바로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 온다. 그 일상 속에서 소유보다는 사람, 즉 존재로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서로의 생각이 접속을 한다. 이런 접속을 통해 가치가 생성된다.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것이지, 유에서 유가 나오는 것은 유통기한이 아주 짧다. 돈 놓고 돈 먹는 것은 굉장히 유용하고 효율적이지만, 그건 순식간에 다 거덜나는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무에서 유가 나와야 가치가 되는 거다. 원래 보이지 않는 지혜에서 물질이 나온다. 예를 들면 디지털 시대에는 보이지 않는 정보가 온갖 더 한다. 이 무형의 자산 없이는 물질만 갖고 돌려 막기를 할 수 없다. 정신적인 자산을 가지고 있을 때는 설령 망해도 그 다음에 이 실패에서 뭔가 배우고 도약할 수 있는 베이스를 갖게 된다. 그런 사람은 새로 시작할 수 있다.

3.
그러나 알면서도, 우리는 일상에서 활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고, 접속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폐를 늘려야 하기 때문에 관계가 단절된다는 말이다. 다른 것들과 접속할 시간이 없다. 그러니까 생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감각의 차이만 만들어 낸다. 차이의 생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삶의 큰 즐거움이고 의미가 된다. 반대로 감각만이 늘어나는 게 중독이다. 이를 피하고, 하루가 재미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생활의 규칙을 만들어 보는 거다. 고미숙의 주장이지만,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 목적론이 해체되어야 한다. 일상이 리듬을 타야 한다. 리듬을 잃는 이유는 목적에 도달한 다음에 살겠다는 목적론이 문제이다. 매일의 일상은 리듬을 타야 한다. 일상이 그 목적에 종속이 되면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의 무상함 앞에서 그냥 주저 앉게 된다. 매일 매일을 하는 과정으로 여겨야 한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자유, 행복을 오늘의 조건 안에서 어떻게든 구현해 내는 거다. 아프면 아픈 대로, 아픈 상태에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상태에서 지유와 행복을 위한 액션을 취하는 거다.
▪ 그리고 시간에 리듬을 탄다. 이 기술은 노년에 더욱 필요하다. 메 순간을 나 스스로 과정으로써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러다 보면 죽음도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다.
▪ 그리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산다. 그러는 가운데 인간, 자연 그리고 내가 늘 만나는 사물들과 우정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상품 소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작고 있는 물건을 깨끗하게 하고 변형시켜 나에게 맞는 물건을 고쳐 사용하면, 신상품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이를 프랑스에서 '브리콜라주'라 한다. 그러면 물건의 수를 줄일 수 있다. 이게 소박하고 단순하게 사는 거다.
▪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해야 할 친구를 만난다.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는 웃는다. 그리고 웃어야 한다. 왜냐하면 웃음은 생명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활동으로써 웃음과 이야기를 연마하고, 내면에서는 어제 몰랐던 것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이게 지성이다. 그 지성으로 내적인 충실함과 외적인 활동이 리듬을 타야 한다. 고미숙은 이런 일상을 줄여서 이렇게 말한다. "명랑하고, 지혜로워라!"

4.
오늘은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잘 말해주는 이시영 시인의 시를 공유한다. 다음은 오늘 시를 소개한 반칠환 시인의 덧붙임이다. 1976년의 일이다. 충청도 산골에서 어떤 소년이 다람쥐 한 마리를 사로잡아 체 속에 가두었다. 장차 쳇바퀴 돌리는 서커스 기예를 펼치게 할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체가 바람에 뒤집힐까 봐 주먹만 한 돌 몇 개를 얹어 놓았다. 소년이 마당에서 노는 동안 다람쥐 여러 마리가 체 감옥에 면회를 온 듯 북적거렸다. 별 일 있으랴 싶었다. 시간이 지나서 가보니 체 감옥이 뒤집혀 있었다. 다람쥐 동료들이 와서 돌들을 밀어내고 탈옥을 시킨 것이었다.

산다는 것의 의미/이시영

1964년 토오꾜오 올림픽을 앞두고 지은 지 삼 년 밖에 안 된 집을 부득이 헐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지붕을 들어내자 꼬리에 못이 박혀 꼼 짝도 할 수 없는 도마뱀 한 마리가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 동료 도마뱀이 그 긴 시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이를 날라다 주었기 때문이다.

5.
인생에서 단맛만 보는 삶은 극히 드물다. 10전 10승의 삶은 희귀하고, 대개의 승리란 골득실을 따지고 경우의 수를 계산해야 하는 복잡한 경우가 더 많다. 가령 어린 시절 환대만 받고 귀하게 자란 내 친구는 회사 낭인처럼 조직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과거를 기준 삼아 일상적인 일조차 상처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반면 청년기가 힘들었던 한 친구는 웬만한 일은 과거를 생각하면 참을 만하다고 말했다. 그녀가 겪은 초년의 쓴맛이 삶에 약이 된 경우였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이미 지나간 과거지만 한 사람에겐 불행의 이유로, 다른 한 사람에겐 행복의 이유로 다가온 건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가 고착되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과거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언제나 ‘현재, 여기, 나’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6.
2022년에 바이든이 윤에게 선물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말은 사실 트루먼 대통령의 책상 앞에 써 있던 것이다. '내게 모든 책임이 있으니, 최종적으로 내가 결정한다'라는 뜻이다. ‘해리 트루먼의 백악관 책상 위 명패에 새겨진 좌우명이었다. 왕이 되려는 자, 그 왕관의 무게를 견디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트루먼은 루스벨트 시절 극비리에 진행됐던 핵 개발(맨해튼 프로젝트)이라는 자신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온전히 책임져야 했다. 자신이 한 일은 물론이고, 자신이 하지 않은 일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것, 그것이 왕관의 무게다. 리더는 앞서가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지는 사람이다.

7.
'다모클레스의 칼' 이야기를 소환한다. 세상에는 영원한 부귀와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특정 이로움 이면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위기가 닥치기 마련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머리 위에서 정면으로 자신의 머리 위에 내리 꽂힐 칼은 알지 못한 채 현재의 번영에만 취하게 된다면, 반드시 그 화가 미치게 된다. 돌이키려 헤도 그때는 이미 늦는다.

8.
다모클레스(Damokles)는 시칠리아의 사라쿠사라는 도시를 다스리던 참주 디오니시우스 1세의 최측근이었다. 다모클레스는 늘 옥좌 위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왕을 질투하며 '나는 언제 저런 생활을 누려보나'하고 은밀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모클레스는 평소처럼 디오니시우스의 옆에 붙어서 왕에게 입에 발린 말을 떠벌리며, 자신의 욕심을 은근히 내비쳤다. 평소 다모클레스의 그러한 행각을 눈치채고 있던 디오니시우스는 이를 눈치채고 옥좌에서 일어나 다모클레스에게 한 번 앉아 보라고 권했다. 옥좌에 앉자마자 다모클레스는 어쩔 줄 몰라하며 행복해했다. 왕이 물었다. "그 자리에 앉은 기분이 어떠한 가?" 그러자 다모클레스가 말했다  "정말로 행복 하옵니다." 그 말을 들은 디오니시우스가 말했다. "머리를 들어 천장을 보라." 곧 천장을 쳐다본 다모클레스는 놀라 옥좌에서 스프링 튕기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머리 위에 말총 한 올에 칼을 매단 것이 보였다 왕이 말했다. "어떤 가? 이것이 권력자의 운명일세. 언제 내 머리 위에 칼이 떨어질지 모르는 것이야. 난 늘 이점을 잊지 않고 있네, 내가 누리는 행운과 권력에는 그에 따른 커다란 책임과 근심이 따른다 네."

9.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후회 막심의 순간도 있지만 나라는 존재는 이전에 선택한 모든 것의 총합이며, 어른은 자신의 선택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사람에게는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가 있다. 하지만 ‘때’를 안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좋은 때에 좋은 사람이 되긴 쉽다. 본성은 고난에 빠졌을 때, 고스란히 드러난다. 산다는 것은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선택한 일에 몰입하는 거다.

10.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을 견디고 감당하는 일이다.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선 갚아야 하는 카드 값이나 월세를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다니기 싫은 학교나 학원에 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령 좌골신경통, 손목터널증후군은 세상 많은 작가가 걸작을 얻는 대신 치른 선택의 대가다. 런웨이를 걷는 수퍼모델의 멋진 워킹 역시 가혹한 운동과 다이어트의 결과다. 선택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어느 하나를 원하면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선택을 싫어한다. “삶이 너무 안락하면 글을 쓸 이유가 없고, 너무 고단하면 여력이 없다”는 정희진의 말처럼 무엇 하나 녹록지 않은 복잡한 삶 속에서 선택은 점점 고달프고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좋은 선택을 하는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가령 운동할 것인가, 집에서 쉴 것인가라는 고민이 들기도 전에, 헬스장에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어떻겠는가. 이것이 바로 ‘습관의 힘’이다. 훌륭한 가수나 운동선수들은 휴식과 연습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위대한 작가들의 더 위대한 일은 노벨상이 아니라 그들이 매일 읽고 썼다는 사실이다.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하는 습관이, 결국 할 수 없던 것을 가능케 만든다. 매일 몇 시간이고 노래하고 춤출 수 있다면 그는 점점 그 일을 더 잘하게 된다. 그리고 신은 이런 사람들을 선택하고 힘껏 돕는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